팔레스타인 출신 미국 학자인 에드워드 사이드는 아랍-이스라엘 전쟁 때마다 미국에서 비참한 상황을 겪어야 했다. 사진은 1967년 아랍-이스라엘 전쟁으로 사망한 요르단 군인 시신을 1998년 예루살렘에서 이장하는 모습. 부산일보DB일제 강점기가 한민족의 근대화를 가져왔다는 주장을 담은 <반일 종족주의>가 논란이다. 위안부의 성 노예화, 강제징용의 역사적 ‘팩트’조차도 얼마든지 조롱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안타깝고 부끄럽다. 역사학자 임지현은 식민지 근대화론의 문제점이 서구의 역사를 기준으로 삼는 오리엔탈리즘에서 나왔다고 진단한다. 제국주의 침략이 부도덕하지만, 사회경제사적 진보를 가져온다는 서구의 역사관을 받아들이면, 일제의 조선 강점도 자본주의로 나아가는 역사적 전진이며 이 과정에서 일어난 반(反)문명적, 반(反)인권적 사안들은 부수적이다. 물질적 발전을 이룩한 제국이 열등한 식민지를 지배한 것은 기본적으로 ‘진보와 시혜’이기 때문이다. 유럽 역사를 기준으로 삼는 오리엔탈리즘적 시각과 논리에 집착한 식민지 근대화론은 결과적으로(!) 친일의 집결지이자 양산처가 되고 있다.
서구 역사관 관점에선 식민지 역사도 진보
카를 마르크스·벤저민 디즈레일리 등
동양 사회 멸시엔 ‘좌우’가 한목소리
오리엔탈리즘은 동양 지배 위한 포석
자(自)문화 중심 아닌 세계시민이 해답

출간 직후 美 대학 학과명 바꿔
이념보다 동서양의 구분이 인간과 사회에 대한 우열과 차별을 정당화하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면 무엇보다 그 현상과 실체를 규명하는 작업이 필수적이다. 첫 번째 봉화에 해당하는 책이 팔레스타인 출신의 에드워드 사이드가 쓴 <오리엔탈리즘>이다. 흔히 동양주의, 동양 연구로 번역되는 ‘오리엔탈리즘’은 서양이 동양을 침략하면서 조작(操作)한 모든 편견과 관념 등이 체계화되면서 만들어진 지식과 허구라는 것이 저자가 채택한 정의다.
1978년에 출간되자마자 동서양을 바라보는 인식과 시각에 파문을 일으켰으며, 실제 미국 대학들은 오리엔탈 연구학과라는 명칭을 동아시아 학과, 중동학과 등으로 부랴부랴 바꾸었다. 저자 에드워드 사이드(1935-2003)는 예루살렘에서 태어났지만, 이스라엘 건국 후 집을 빼앗기고 이집트로 쫓겨났다가 미국 대학에서 공부하고 일하다 죽었다. 그는 아랍-이스라엘 전쟁 때마다 미국에서 비참한 상황을 겪으면서, 지식과 권력의 관계에 관한 근본적인 사색과 탐구를 했으며 <오리엔탈리즘>으로 결실을 맺었다.
책의 첫머리엔 ‘좌우’를 대표하는 두 위인의 글귀가 배치됐는데 동양에 대해서는 차이가 없다. 카를 마르크스는 동양이 자신을 대변할 수 없으니 누군가가 대변해줘야 한다며 마치 선생님 같은 교화(敎化)의 자세다. 제국의 수상을 지낸 벤저민 디즈레일리는 평생을 바쳐야 하는 사업으로서 동양을 거론하면서 지배의 대상임을 명확히 한다. 이런 고질적인 우월감은 어떻게 형성된 것일까.
식민 관료 출신인 아서 밸푸어는 이집트 문명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영국이야말로 이집트를 지배하고 권위를 행사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인도와 이집트에서 총영사를 지낸 이브린 크로머는 동양인을 순종하게 만드는 힘은 군인이나 세무관리가 아니라 세련된 지식이 더욱더 효과적이라고 지적한다. 동양의 역사에서 자치의 경험이 없고 정확함을 기피하는 동양인의 심성은 명석하고 솔직한 앵글로 색슨 인종과 대조적이라고 둘은 입을 모은다. 1970년대 미국 국무장관을 지낸 헨리 키신저도 뉴턴의 학설 세례를 받지 못한 신생국은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전근대적 세계관에 함몰되어 있다고 폄하한다.
동서양 구분은 차별과 불평등 심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서양, 미개하고 충동적인 동양이라는 오리엔탈리즘의 담론과 이미지는 텍스트에 의해 형성되어 왔다. 사이드는 인간과 장소, 경험이 한 권의 책에 의해 묘사될 수 있다는 사고방식의 단순함을 탄식하지만 어떻게 하랴.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복잡다단한 현실보다는 도식적인 텍스트의 권위에 더 의존하려는 인간적 약점을 갖고 있지 않은가. 동양을 다녀온 여행기, 학문적 저술, 문학 작품 등이 쌓이고 쌓여 지식 그리고 현실 자체도 창조하고 나아가 일종의 전통까지 빚게 된다.
19세기에 중점적으로 형성된 오리엔탈리즘은 지표의 84%를 차지한 유럽의 세계 지배를 가능하게 한 이데올로기다. 동양에 대한 지식과 진리를 독점적으로 소유하면서 가지게 된 우월감과 사명감이 지배와 교화를 당연시하게 했기 때문이다. 즉, 오리엔탈리즘은 서구 제국주의를 사후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침략의 근거와 명분을 사전에 준비한 포석이다.
어둠을 밝히는 문명의 횃불을 들었다는 독선과 허위의식의 집결체인 서구의 오리엔탈리즘은 다른 인종과 민족의 이질성을 묵살하는 인종차별과 서구중심주의의 동의어다. 무엇보다 우리와 그들을 가르는 오리엔탈리즘 적 이분법은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강자와 약자 등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서구 제국주의의 유산인 오리엔탈리즘 탓에 갈등과 충돌이 끊이지 않는 현실을 타개하는 해법은 무엇인가. 영원한 망명객 에드워드 사이드가 가장 좋아한 짧은 글이 단서가 될 듯하다. “자신의 고국에만 애정을 느끼는 사람은 아직 어린아이와 같다. 세계 모든 곳을 다 자기 고국처럼 느끼는 사람은 강한 사람이다. 그러나 세계 어디를 가도 타국처럼 느끼는 사람이야말로 성숙한 사람이다.”

정승민
교양 팟캐스트 ‘일당백’ 운영자
※이번 기획은 부산시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의 도움을 받아 연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