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미 기자 mia3@busan.com | 2025-06-05 11:21:18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광범위한 상호 관세 조치로 논란을 불러일으킨 데 이어, 이번에는 비자 문제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트럼프 1기 행정부에 이어 2기에서도 특정 국가 국민의 미국 입국을 금지하는 여행금지령을 시행한다. 또 이스라엘 인질 석방을 촉구하는 시위대에 화염병을 던진 불법 체류자 용의자 가족의 비자를 취소하고, 함께 추방하려다 법원의 판결로 제동이 걸렸다.
4일(현지 시간) 트럼프 대통령은 국가 안보 우려를 이유로 12개 국가 국민의 미국 입국을 전면적으로 제한하고 금지하는 포고문에 서명했다. 이번 포고문에 포함된 국가는 아프가니스탄, 미얀마, 차드, 콩고, 적도 기니, 에리트레아, 아이티, 이란, 리비아, 소말리아, 수단, 예멘이다.
이 외에도 부룬디, 쿠바, 라오스, 시에라리온, 토고, 투르크메니스탄, 베네수엘라 등 7개국 국민에 대해서는 미국 입국을 부분적으로 제한하기로 했다. 이 조치는 9일 오전 0시 1분부터 발효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과 미국 국민의 국가 안보와 국익을 보호하기 위해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밝혔다. 백악관은 “전면 입국 금지 대상 국가들은 신원 조회와 심사에서 기준에 미달했고 미국에 매우 높은 위험을 초래하는 것으로 판단했다”는 성명을 냈다.
AP·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이번 미국 입국 금지와 제한 대상인 19개국 중 10개국이 아프리카 국가다. 이 중 9개국은 흑인이 다수인 국가들이다. 시에라리온, 토고, 적도 기니 등 일부 국가는 서방을 위협하는 무장 단체가 활동하고 있지 않다.
이번 조치는 트럼프 대통령 2기 취임 직후인 지난 1월 20일 내린 행정명령의 결과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국무부와 국토안보부, 국가정보국장에게 미국에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는 국가와 그 국가 출신의 미국 입국이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되는지를 평가해 보고서를 제출하라고 지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1기 행정부 때도 이슬람교를 믿는 무슬림이 대다수인 7개국 여행자에 대한 입국 금지 조치를 발표한 적이 있다. 당시에도 미국 내 무슬림이 반발하는 등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는데, 이 정책은 여러 차례 수정된 끝에 2018년 미 연방 대법원이 합법이라고 인정했다. 하지만 조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 2021년 “국가 양심에 남은 오점”이라고 표현하면서 특정국 국민의 미국 입국 금지 조치를 철회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또 다른 비자 문제가 법원의 판결로 제동이 걸렸다. 지난 1일 미국 콜로라도주 볼더에서 가자 지구에 억류된 이스라엘 인질 석방을 촉구하던 시위대를 향해 화염병 2개를 던진 모하메드 사브리 솔리만(45)과 가족의 추방 문제다. 솔리만은 당시 “팔레스타인에 자유를”이라고 외치며 화염병을 던져 연방 증오범죄 및 살인미수 등 혐의로 기소됐다.
문제는 트럼프 행정부가 솔리만뿐만 아니라 그의 아내와 자녀 5명을 구금하고 함께 추방하기로 했다는 점이다. 조사 결과 솔리만의 단독 범행으로 밝혀졌다. 가족들은 아무런 관계가 없었고 심지어 솔리만을 체포하는 데 협조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당국은 형사 피의자인 솔리만과 함께 가족 모두의 비자를 취소하고 추방하기로 해 논란이 됐다. 일종의 ‘연좌제’라는 점에서다.
4일 미국 연방법원은 솔리만의 아내와 자녀 5명이 제기한 추방 중단 요청을 받아들였다. 고든 P. 갤러거 연방법원 판사는 “사전 절차 없이 추방이 진행될 경우 회복 불가능한 피해가 발생할 수 있고, 상황의 긴급성을 고려해 사전 통보 없이 명령을 내릴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앞서 가족 측 변호인단은 소장에서 “친족의 범죄를 이유로 개인을 처벌하는 것은 명백히 불법”이라고 주장했다.
이집트 국적의 솔리만은 2022년 8월 관광비자로 미국에 입국해 2023년 2월에 비자가 만료됐다. 2022년 9월 망명을 신청했고 2023년 3월 취업 허가를 받았지만, 지금은 만료된 상태다. 그의 아내 하얌 엘 가말 역시 이집트 국적으로, 네트워크 엔지니어로 일하며 고학력 전문가를 대상으로 하는 EB-2 비자를 신청한 상태였다.
한편, 미국 국무부는 SNS 확인 절차 강화를 위해 F(유학)·M(직업 훈련)·J(방문 교환 학자) 비자 발급을 중단하는 등 비자 발급 절차 전면을 들여다보고 있다. 이번에는 관광 비자를 포함한 비이민 비자 신청자를 상대로 돈을 더 내면 인터뷰 순서를 앞당길 수 있는 급행료를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현재 비이민 목적의 비자 발급 비용은 185달러(약 25만 원)인데, 트럼프 행정부는 1000달러(약 136만 원)를 내면 더 빠르게 비자 인터뷰를 할 수 있는 프리미엄 서비스 도입을 고려하고 있다. 국무부 내부 문건에 따르면 오는 12월부터 시범 사업으로 도입될 예정이다. 하지만 정부가 비자 업무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필요한 비용보다 더 많은 수수료를 받으면 안 된다는 대법원 판례가 있어 사법부로부터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