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태우 기자 leo@busan.com | 2025-10-17 09:00:00
경남의 10월은 ‘꽃구경 다니는 계절’이다. 곳곳에서는 코스모스, 핑크뮬리, 아스타국화 등 다양한 종류의 꽃이 아름다움을 경쟁하고 있다. 당연히 각 시군에서는 꽃 축제가 열리기도 한다. 이미 끝난 축제도 있고 계속 진행 중인 곳도 있다. 꽃으로 화려하게 물든 경남의 가을로 들어가 본다.
■의령군 호국의병의숲
올가을 가장 눈길을 끄는 곳은 의령군 남강변 호국의병의숲 친수공원이다. 호국의병의숲은 임진왜란 때 곽재우 장군이 의병을 이끌고 나서 왜병과의 싸움에서 첫 승리를 거둔 기강 전투를 기리기 위해 꾸민 곳이다. 이곳에서는 지난 3~12일 ‘2025 의령 기강 리치꽃축제’가 열렸다. 지난해까지는 댑싸리 축제였지만 올해부터는 이름이 바뀌었다.
이곳에는 3만 평 규모 평지에 핑크뮬리를 필두로 아스타국화, 메밀꽃, 팜파스그라스, 맨드라미, 코스모스, 노랑코스모스, 댑싸리 등이 골고루 피어 있다. 남강을 따라 걸으면서 달콤한 꽃향기를 한 종류도 아니고 10종류 가까이 골고루 맡을 수 있으니 한마디로 ‘가을꽃 향수세트’라고 불러도 지나치지 않다.
친수공원에 들어서면 이곳이 현실세계에서 걷는 것인지, 수채화 속 환상세계에서 꿈을 꾸는 것인지 헷갈릴지도 모른다. 코스모스와 노랑코스모스가 섞여 자라는 코스모스 정원의 풍경은 실재가 아니라 그림 같기 때문이다. 직접 가서 보면 과장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는 핑크뮬리도 마찬가지다. 식물이 자라는 게 아니라 그야말로 ‘핑크핑크한’ 강물이 출렁이는 것으로 착각할 정도다. 이 꽃밭 사이를 지나가면 온 몸이 핑크빛으로 물들어 마치 핑크빛 인형으로 변신한 기분이 들지도 모른다.
코스모스 정원과 핑크뮬리 사이에는 갈대와 비슷한 모습을 가진 팜파스그라스 그리고 땅에 바짝 붙은 맨드라미가 자란다. 한 부부가 우산으로 햇살을 가린 채 팜파스그라스 사이로 걷는 모습을 보니 그야말로 몽환적이다. 맨 앞에는 가을 분위기를 잔뜩 풍기면서 바람에 흔들리는 팜파스, 그 너머로는 노란색과 분홍색, 하얀색이 골고루 섞인 코스모스 꽃밭. 그 사이로 느긋하게 웃으며 산책을 즐기는 검은 우산. 두 사람에게는 영원히 잊지 못할 ‘가을의 추억’이 될 정도로 아름다운 풍경이다.
바람개비가 흔들리는 남강변을 따라 핑크뮬리 꽃밭을 산책하다 보면 눈부실 정도로 매혹스러운 공간이 등장한다. 4가지 색의 꽃이 4개의 층을 이뤄 마치 파스텔 그림을 그린 것 같은 신비한 장면을 연출한다. 맨 앞에는 핑크뮬리가 바람과 어울려 덩실거리고 그 너머로는 보라색과 주홍색 아스타국화가 차분하게 앉았다. 가장 뒤에는 온갖 색이 섞인 코스모스 꽃밭이 신나게 어깨춤을 춘다. 오랫동안 여행을 다니면서 많은 꽃 풍경을 경험했지만 이곳처럼 눈부시고 신기루 같은 장면은 처음이다.
호국의병의숲 꽃 여행의 마지막은 댑싸리다. 원래 이곳은 가을이면 갈색으로 변하는 댑싸리로 유명해 많은 블로거, 유뷰버가 찾던 곳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른 꽃들에 밀려나 인기를 잃은 탓인지 약간 의기소침해 보인다.
■하동코스모스·메밀꽃축제
의령군에서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유명한 ‘의령 소바’로 배를 채운 뒤 이번에는 하동군으로 달려간다.
하동군 북천면 직전리에는 지역 주민들이 일군 꽃밭이 있다. 이곳에서 봄에는 꽃양귀비축제, 가을에는 코스모스·메밀꽃 축제가 열린다. 올해는 지난 2일 시작해 오는 19일 막을 내린다. 축제는 곧 마감되지만 아직 꽃 잔치는 끝난 게 아니다. 직전리 들판에는 여느 해보다 더 화사한 코스모스가 피어 축제 기간에 많은 관람객을 불러 모았고, 아직도 활짝 피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유혹의 미소를 보낸다.
축제단지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화사한 코스모스가 밝은 얼굴로 두 팔을 활짝 벌려 환영 인사를 전한다. 꽃 색깔이 촌스러워 보이면서도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 관람객의 마음과 발길을 잡아당긴다.
어릴 때에는 이렇게 꽃밭을 조성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코스모스가 지천으로 흔했다. 가을이면 시골길을 따라 학교까지 함께 걸어주던 꽃이다. 바람에 따라 몸을 한들거리면서 가끔 얼굴을 간질이기도 하고, 거꾸로 때로는 걸음을 방해하기도 했다.
알록달록한 코스모스 단지를 지나면 이번에는 단색 세상에 들어선 듯한 착각을 느끼게 된다. 바로 푸른 줄기와 하얀 꽃으로만 이뤄진 메밀꽃이다. 꽃밭 너머에 화사한 코스모스 단지가 없다면, 그리고 ‘플라워 뷰’라는 이름이 붙은 건물과 풍차가 없다면 이곳이 이승인지 천국인지 헷갈릴지도 모른다.
하얀 눈처럼 들판을 뒤덮은 메밀꽃밭 한가운데에는 꼬불꼬불한 소나무 두 그루가 떡하니 서 있다. 데이트를 즐기는 두 남녀가 너무 수줍어 손도 못 잡고 적당한 거리를 두고 걸어가는 모습처럼 보인다고 생각하니 절로 웃음이 난다.
코스모스·메밀밭 축제장에서는 어디에서 사진을 찍어도 훌륭한 샷을 건질 수 있지만, 특히 그림이 잘 나오는 곳은 ‘플라워 뷰’라는 글자가 적힌 하얀 건물로 걸어가는 흙길이다. 왼쪽에서는 코스모스가 하느작거리고, 오른쪽에서는 메밀꽃이 바람에 흔들린다.
며칠째 흐리던 하늘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 아주 맑게 개었다. 비어 있으면 허전할까 봐 하얀 뭉게구름이 하늘을 가득 메운다. 그 아래 하얀 건물과 그 뒤로 보이는 푸른 산은 알록달록한 색상의 코스모스, 하얀 메밀꽃과 멋진 조화를 이룬다.
꽃 단지에서 1.5km 떨어진 곳에는 북천역-하동레일파크가 있다. 예전에는 경전선이 달리던 곳이었지만 북천역에서 양보역까지 철로 구간을 레일파크로 바꿔 레일바이크를 타는 곳으로 바뀌었다. 북천역-하동레일바이크는 꽃 단지 바로 앞에 있는 북천역과는 다른 곳이다. 레일바이크를 타면서 즐기는 꽃구경이 또 별미라서 많은 관람객이 이용한다. 유의할 점은 운행시간이 고정돼 있으니 미리 잘 알고 가야 한다는 사실이다.
■경남 가을 꽃
호국의병의숲 인근인 함안군 악양생태공원에서도 활짝 핀 핑크뮬리를 즐길 수 있다. 생태공원에서 연결되는 악양 둑방길과 강변에서는 활짝 핀 코스모스 사이로 상큼한 산책을 만끽할 수 있다.
밀양시 초동면 반월리 연가길은 줄여서 초동연가길이라고 부른다. 이곳은 생긴 지 얼마 되지 않는 ‘코스모스, 억새 맛집’이다. 느긋하게 꽤 오랫동안 가을 햇살을 즐길 수 있는 산책로다. 총 길이가 무려 4km에 이른다.
거창군 감악산에서는 지난 12일까지 ‘제5회 감악산 아스타국화축제’가 열렸다. 축제가 끝났다고 해서 축제장이 문을 닫았거나 꽃이 모두 시든 것은 아니니 실망할 필요는 없다.
감악산 꼭대기 별바람언덕을 보라색으로 가득 메운 아스타국화의 색감은 이색적이고 환상적이다. 하얀색, 분홍색, 보라색 아스타국화 수만 송이가 끝없이 펼쳐져 있다. 산 정상에는 풍력 발전기 여러 대가 돌아가는데, 꽃밭에 들어가 발전기를 배경으로 찍는 사진이 그야말로 일품이다.
가을꽃이라면 함양군 상림공원도 빼놓을 수 없다. 백일홍, 안젤로니아, 숙근사루비아 등 다양한 꽃이 온 세상을 화려하게 꾸민다. 수백 년 묵은 나무들이 무성한 잎을 자랑하는 상림 숲을 따라 끝도 없이 꽃이 이어진다. 상림 공원과 꽃 정원 사이의 산책로를 걷거나 뛰는 지역 주민들이 적지 않다. 꽃 정원을 둘러보고 대봉스카이랜드에서 모노레일과 집라인을 즐겨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