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유정 기자 honeybee@busan.com | 2025-11-04 17:26:19
추창민 감독이 디즈니플러스 시리즈 ‘탁류’로 전세계 시청자를 만나고 있다.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선과 악으로 나눈 서사가 아닌,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민초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싶었습니다.”
추창민 감독이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이후 13년 만에 다시 사극으로 돌아왔다. 디즈니플러스 오리지널 시리즈 ‘탁류’는 그가 처음으로 연출한 시리즈물이다. 추 감독은 자신의 첫 시리즈물 이야기로 조선의 하층민, 이른바 ‘왈패’의 거친 생존기를 선택했다. 최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추 감독은 “몸으로 버텨야 하는 실제 민초의 삶에 관심이 갔다”고 밝혔다.
‘탁류’는 조선의 모든 돈과 물자가 모여드는 경강(지금의 한강 일대)을 배경으로, 사람답게 살기 위해 발버둥치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추 감독은 왕과 양반 중심으로 진행되는 일반 사극 장르와 달리 백성의 시선으로 시대를 풀어낸다. 감독은 “병자호란 직후 혼란한 상황 속 임진왜란을 앞둔 조선 중기 고난의 시대가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강자와 약자,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이 있지만, 악인을 그리려고 하지 않았다”며 “그때는 좋고 나쁨을 떠나 서민들은 쌀 한 톨로 싸워야 하는 생존이 전부인 시대였다”고 강조했다. “여전히 개선되지 않는 사회 문제를 직접적으로 말하려 한 건 아니었어요. 메시지를 드러낼수록 잔소리처럼 들릴 수 있거든요. 계급 이야기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메시지가 따라온 것뿐입니다.”
디즈니플러스 ‘탁류’ 스틸컷.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디즈니플러스 ‘탁류’ 스틸컷.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추 감독은 컴퓨터 그래픽(CG) 대신 실제 공간을 택해 현실성을 높였다. 이를 위해 경북 문경에 3만 평 규모의 대규모 세트장을 지었다. 어디 이뿐일까. 50m 인공 수로를 직접 만들었고, 낙동강 부근에 흙을 붓고 나무를 심어 옛 경강 지역의 풍경을 재현했다. 시장 골목, 포도청, 상단 창고, 나루터 등도 실제 크기로 재현해 눈길을 끈다. 추 감독은 강의 흐름과 햇빛의 각도까지 계산해 촬영 일정을 조정했다고 말했다. “자연광으로만 촬영하려다 보니 하루에 두 신 정도밖에 찍지 못한 날도 있었어요. 인공조명을 쓰면 이 세계의 진짜 공기가 사라질 것 같았어요.”
추 감독은 배우들의 외형에도 꾸밈을 두지 않았다. 로운은 얼굴에 흙먼지를 뒤집어쓴 채 등장했고, 신예은은 화장기 없는 얼굴로 카메라 앞에 섰다. 박서함은 냉철한 기운을 표현하기 위해 평소보다 어둡게 분장했다. 추 감독은 “세 배우 모두 감정의 결을 세밀하게 다뤘다”며 “로운은 감정의 깊이가 놀라웠고, 신예은은 발랄함과 단단함이 공존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특히 박지환이 연기한 무덕 캐릭터에 깊은 애정을 보였다. 감독은 “살기 위해 나쁜 짓을 하면서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인간적인 인물”이라며 “박지환 배우가 기존의 장이수 캐릭터 이미지를 버리고, 다른 결의 얼굴을 만들어줬다”고 했다.
추 감독은 이 작품으로 처음 시리즈 연출에 도전했다.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와 ‘7년의 밤’ 등을 만든 감독이지만, 9부작 시리즈 연출은 전혀 다른 차원의 작업이었다고 말했다. 추 감독은 “세 달에 두 시간짜리 영화를 찍던 사람이, 8~9개월 동안 9시간짜리 드라마를 만든다는 건 전혀 다른 싸움이었다”며 “매일이 새롭고, 늘 시간이 모자랐다”고 털어놨다. 감독은 “쉬운 도전은 아니었지만, 연출자로서 최선을 다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인다. “콘텐츠 소비가 빠른 시대지만, 한 장면 한 장면이 오래 남는 작품이었으면 좋겠어요. 당분간은 쉬면서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