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혜규 기자 iwill@busan.com | 2026-08-04 19:47:00
리노공업과 태웅의 노사 갈등이 길어지고 있다. 지난달 14일 리노공업 노조가 부산 강서구 본사 앞에서 개최한 파업 출정식(위)과 같은 달 10일 태웅 노조가 부산시청 앞에서 연 결의대회 현장. 리노공업 노조 제공·부산일보 DB
부산 지역의 중견 상장사 리노공업과 태웅에서 노사 갈등이 장기화되고 있다. 두 곳 모두 창업 반세기 만에 처음 노동조합이 설립되며 노동환경과 처우 개선 요구가 터져 나왔지만, 노사 입장 차가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다. 각각 반도체와 에너지 업황이 호조를 맞은 상황에서 협력적 노사 관계를 정립하지 못한다면 생산 차질에 더해 글로벌 시장의 기회를 놓칠 수도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4일 리노공업 노사에 따르면 전국금속노동조합 리노공업지회는 5일 부산시청 후문에서 결의대회를 연다. 지난달 23일 총파업 돌입 이후 지난달 30일 진행된 9차 교섭은 빈손으로 끝났다. 노조는 성과급 비중이 과도하게 높은 임금 구조 개선을 요구하며 사측의 성실한 교섭을 촉구한다. 사측은 “세 번째 회사안 제시에도 노조가 불법적이고 회사의 존립을 위협하는 과도한 요구를 고수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태웅 노사도 지난달 23일 33차 교섭을 마지막으로 교섭이 중단됐다. 전국금속노동조합연맹(금속노련) 태웅노조는 지난 5월 시작한 점심시간 준법투쟁에 더해 5일부터 저녁시간 준법투쟁도 시작한다. 금속 가열로를 24시간 가동하는 공장 특성상 30분 만에 끝내던 식사 시간을 1시간 동안 지키는 방식이다. 노사는 임금 인상율과 노조 활동 인정(전임자 유급근로시간면제제도)을 두고 맞서고 있다.
두 기업의 노사갈등은 닮은 듯 다른 꼴이다. 리노공업은 1978년, 태웅은 1981년 창업했지만, 노조는 각각 지난 올해 3월, 지난해 7월에 처음 설립됐다. 70대 후반에 접어든 창립자 겸 오너가 여전히 경영 일선에서 압도적인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는 점도 공통점이다. 양사 노조는 모두 열악한 노동환경을 노조 설립 배경으로 든다.
속사정은 차이가 있다. 리노공업은 반도체 부품 기업으로, 지난해 매출 3725억 원, 영업이익 1770억 원으로 역대 최대 기록을 경신했다. 인공지능(AI) 반도체 수요 증가로 반도체 테스트용 소켓 수주가 폭증했다. 이 과정에서 반복된 특별연장근로와 업황에 따라 널뛰는 임금 구조, 통제적인 조직 문화가 노사 갈등의 발단이 됐다.
태웅은 부산 대표 단조 업체로, 풍력발전에 이어 최근 AI발 전력 수요 확대에 힘입어 원자력과 소형모듈원전(SMR)으로 시장을 확장하고 있다. 미국 첫 상업용 SMR에 핵심 부품 납품 계약도 따냈다. 태웅노조 관계자는 “동종 업계와 비교해 낮은 임금에 12시간 맞교대로 힘들게 일하는데도 인력 충원은 없고, 회장은 반노조적인 언행을 계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회사 측은 첫 노사 교섭에 당혹스러워하면서도 노조안을 무조건 수용할 수는 없다는 분위기다. 리노공업 측은 “회사도 성과급 보상 집중안과 고정급 임금 인상 병행안 중 선택할 수 있는 회사안을 제시했다”며 답답해한다. 태웅 측은 “노조의 임금 10% 인상안에 회사는 7% 인상안을 제시했고, 전임자 활동 인정은 추후 협의할 문제”라는 입장이다.
업계에서는 오너십이 강력한 지역 기업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노동환경과 조직문화의 변화 속도가 그에 미치지 못해 노사 갈등이 불거졌다고 본다. 일과 생활의 균형(워라밸)과 노동자의 기여에 대한 보상 요구는 높아진 반면, 노조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여전한 상황에서 노사 관계의 신뢰가 형성되지 않다 보니 갈등이 길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부산의 한 상공계 관계자는 "지역의 유망한 중견기업에서 노사 갈등으로 생산 차질이 심화되고 있어 우려가 크다"며 "노사가 한발짝씩 양보해 글로벌 시장에서 도약할 수 있는 골든타임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지역의 한 노동계 관계자는 "노동자들도 누구보다 회사의 발전을 바라는 만큼 회사가 노조를 먼저 동등한 파트너로 인정하고 대화에 나선다면 접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