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통영시 매물도 남쪽 먼바다에서 광케이블 해저 매설작업 중 불이 난 6000t급 대형 특수선이 잔불이 남은 상태로 하루 넘게 표류하다 바다속으로 가라앉았다. 다행히 선원들은 사고 직후 함께 작업 중이던 예인선으로 대피해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상당량의 유류가 침몰한 선체에 남아 있어 2차 해양 오염 우려가 커지고 있다.
통영해양경찰서에 따르면 지난 11일 오전 3시 50분께 통영시 매물도 남방 31해리(57.4km) 해상에서 KT서브마린 소속 특수목적선 리스폰드(Responde, 6293t)호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가 발생했다. KT서브마린은 KT 자회사로 해저통신케이블 건설을 전문으로 한다.
불이 나자 선장이 통영 연안해상교통관제센터(VTS)를 경유해 통영해양경찰서에 신고했다. 곧장 해경이 대응에 나섰고 이어 주변 지자체와 해군, 소방서 지원세력이 도착했다.
진화를 위해 방제정과 소방정, 군·경 함정 11척에 헬기까지 동원됐지만, 불길은 쉽게 잡히지 않았다. 기관실을 중심으로 시작된 불이 빠르게 번지면서 유독가스가 발생한 데다, 칸칸이 설치된 격벽 탓에 소화수가 잘 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형선박이라 현장 진입도 여의치 않았다. 결국, 화재 발생 12시간이 지나서야 큰불이 잡혔다.
그런데 진화를 위해 투입한 다량의 소화수가 선체에 누적되면서, 이로 인한 침몰 위험이 커졌다. 해경은 소화 작업을 일시 중단하고 경비함정과 예인선 등을 주변에 배치한 뒤 안전관리에 들어갔었다.
해경은 잔불 정리가 끝나는 대로 불에 탄 선박을 부산으로 가져와 자세한 사고 원인을 조사하기로 했다. 그러나 좀처럼 작업 재개 시점을 잡지 못했다. 불씨가 남은 상태로 바다를 떠다니던 리스폰드호는 사고 발생 37시간 만인 12일 오후 4시 50분께 가라앉기 시작했다. 시뻘건 불꽃이 다시 타오르고 시꺼먼 매연을 내뿜으며 선수부(선박 앞쪽)부터 침몰하더니, 5시 40분께 통영시 욕지도 남방 42해리(77.7km) 해상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리스폰드호는 바다 밑바닥에 광케이블을 매설하는 부설선이다. 보통 케이블운반선, 예인선과 선단을 이뤄 작업한다. 한국인 49명과 베트남인 10명, 이탈리아인 1명 등 총 60명의 선원과 작업자를 태우고 지난 8일 오전 선박 기지가 있는 거제시 장목항을 출항했다. 불길이 치솟자 주변에 있던 선단 예인선이 달려와 승선원을 구조했다. 이 중 7명이 유증기 흡입으로 매스꺼움을 호소해 4명은 헬기, 3명은 경비함정을 타고 여수와 통영의 병원으로 이송됐다. 이들도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문제는 침몰한 선체에 각종 기름 상당량이 남았다는 점이다. 출항 당시 리스폰드호에는 벙커C유 234t, 디젤발전기 연료(DO) 606t, 윤활유 2000L가 적재된 상태였다. 이들이 바닷속에서 유출될 경우, 심각한 해양 오염이 불가피하다. 반면, 침몰 전 탱크별 봉쇄작업을 마친 만큼 추가 유출 사고는 없을 것이라는 게 해경의 설명이다.
해경 관계자는 “당시 (기름을)다른 선박으로 옮길 여건도 아니었고, 섣불리 이적하려다 불을 키우거나 바다로 유출될 가능성이 있어 우서 막았다. (저장탱크)부식 방지 처리도 완벽히 돼 있어 유실될 가능성은 희박하다”면서 “현재까지 추가 오염 피해는 없다. 경비함정을 증가 배치해 2차 사고와 만일의 해양오염에 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