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하 기자 hsh03@busan.com | 2025-06-12 16:53:57
이재명 대통령이 공약한 ‘원화 스테이블코인’ 허용 법적 근거를 담은 법안도 최근 발의되면서 한국은행의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와 함께 새로운 ‘디지털 원화’ 시대를 열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CBDC를 실험 중인 한국은행은 비은행권이 발행하는 스테이블코인에 대해 다소 부정적인 입장을 내비쳐, 이 부분에 대한 정책 조율도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 민병덕 국회의원이 발의한 ‘디지털자산기본법’은 민간에서도 일정 요건을 충족할 경우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할 수 있도록 했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려면 대한민국 내 설립된 법인이어야 하며, 자기자본 5억 원 이상, 전문 인력과 전산 설비 확보, 재무건전성 기준 충족, 환불 준비금 마련 등 요건을 갖춰 금융위원회의 사전 인가를 받아야 한다.
블록체인 업계는 자기자본 5억 원 기준을 주목하고 있다. 당초 공개된 디지털자산기본법 초안의 자본금 기준이었던 50억 원이었기 때문에 일반 법인의 발행 요건이 까다로웠다. 이 같은 기준 완화는 핀테크 등 비은행권도 스테이블코인을 보다 쉽게 발행할 수 있도록 하려는 취지로 해석된다.
다만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위한 금융위원회의 인가 기준이 구체적이지 않아, 진입 장벽이 여전할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계획 중인 한 업체 관계자는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명문화 자체는 의미가 있지만, 금융위원회가 어떤 기준으로 인가할지 모호하다”며 “진입 규제가 인가, 등록, 신고로 나뉘어 있지만 업종이 지나치게 세분화된 측면도 있어 실효성 측면에서 다시 검토될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더라도 사용처가 마땅하지 않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가상자산 컨설팅 업체 원더프레임 김동환 대표는 “국내에서 결제나 송금 목적의 금융은 이미 잘 갖춰져 있어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대체재로서 실효성은 낮다”며 “미국 달러 기반 테더(USDT)처럼 파생상품 거래소 등 실제 사용처를 마련하지 않는다면 결국 발행만으로는 시장이 커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한국은행은 은행권부터 점진적으로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해야 하는 입장을 내세우고 있다. 특히 한국은행 이창용 총재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화폐의 대체제 기능을 수행할 스테이블코인에 대해 통화정책에 미칠 부정적 영향을 언급해왔다. 그는 이와 함께 한국은행이 진행 중인 CBDC 실험 ‘프로젝트 한강’에 힘을 실어주는 듯한 행보를 취하고 있다.
CBDC와 스테이블코인은 모두 블록체인을 활용한 디지털 화폐라는 점은 유사하다. 하지만 CBDC는 중앙은행이 직접 발행하는 법정통화인 반면, 스테이블코인은 민간이 자산을 담보로 발행하는 준화폐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 총재는 12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창립 제75주년 기념식에서 “국제결제은행(BIS)이 제시한 ‘핀터넷(금융 인터넷화)’은 단절된 금융 서비스를 하나의 통합 인터페이스로 연결해 실시간·맞춤형 금융이 가능한 환경을 지향한다”며 “CBDC와 예금토큰은 이 시스템의 신뢰 기반이자 기술 표준의 중심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