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우 기자 friend@busan.com , 박혜랑 기자 rang@busan.com | 2025-01-18 15:10:53
[편집자주]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2위 항만을 가지고 있는 동시에 한국전쟁 시기 피란민들의 아픈 역사가 남아있는 산복도로까지. 부산은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다양한 얼굴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이내믹 한 풍경이 있는 만큼 부산에서는 다른 지역에서는 볼 수 없는 직업들도 많습니다. 이외에도 부산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환경에서 일하는 분들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부산일보는 이러한 분들을 '기자니아' 영상 콘텐츠에 담고 있습니다. ‘기자니아’는 ‘키자니아(어린이 직업체험 시설)’와 ‘기자’의 합성어로, 기자들이 직접 직업을 체험해 본다는 콘셉트입니다. 체험과 동시에 직업에 얽힌 부산만의 스토리를 발굴하고 이곳에서 일하는 분들의 노고를 담고자 합니다. 영상들은 '부산일보 유튜브' 채널 혹은 유튜브에 '기자니아'를 검색하면 보실 수 있습니다.
부산 동구 범일동, 엄광산 기슭에 자리한 안창마을은 대표적인 산복마을입니다. 예로부터 호랑이가 많이 나타났다고 해서 ‘호랭이마을’로도 불리는 이곳은 현재 700여 가구가 살고 있습니다. 부산의 최대 번화가 서면에서 차량으로 10여 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곳이지만, 지난달 들어서야 도시가스 공급을 위한 공사가 시작될 정도로 개발과 정비가 더딥니다.
안창마을 입구에 자리한 범일동 마을지기사무소는 2015년 7월 문을 열었습니다. 홀로 사는 노인, 기초생활수급자 등 취약 계층이 많은 이 지역에 생활 밀착형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입니다. 사무소에는 구청이 채용한 마을지기 3명이 상주하며 주민들에게 간단한 집수리와 '행복콜'이라고 불리는 노인 차량 이동 지원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이불, 커튼 등 집에서 하기 힘든 크고 무거운 빨래도 대신 합니다. 안창마을은 물론, 범일동 주민이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습니다.
■마을지기 없이는 계절나기 어려운 산복마을
한 해를 마치는 지난달 31일 오전 9시, 기자가 들어선 사무소에서는 아침부터 전화벨이 쉼 없이 울렸습니다. 집 수리 의뢰를 접수하던 마을지기 마석오(부산 동구·58) 씨가 바쁘게 주소를 받아 적고 있었습니다.
기자는 사무소에 도착하자마자 세탁 업무를 담당하는 장현익(부산 동구·49) 씨와 함께 주말 사이 밀린 빨래부터 처리해야 했습니다. 기자가 두툼한 이불을 세탁기에 넣고, 세탁이 끝난 빨래를 건조기로 옮기는 와중에도 주민들이 빨랫감을 맡기고 찾아갔습니다. 세탁부터 건조까지 요금은 단돈 1000원. 기초생활수급자 등은 한 달에 5번까지 무료로 이용할 수 있고, 거동이 불편한 독거노인 세대 등에게는 수거와 배달까지 지원합니다.
높은 경사가 많은 안창마을에 거주하는 고령의 주민들은 특히 이불 빨래를 하는 데 어려움을 겪습니다. 이불 빨래가 가능한 세탁기가 집에 없는 경우도 많고, 잔뜩 물을 머금은 대형 이불을 세탁기에서 빼는 것도 상당한 힘이 요구되기 때문입니다.
기자가 이날 오전 사무소에서 세탁된 이불을 배달하기 위해 길을 나섰습니다. '마을지기' 안내문이 붙은 경차에 보자기로 싸인 이불 2채를 싣고 받아 든 주소 근처에 도착했습니다. 기자 앞에 놓인 건 급경사로. 도저히 경차로는 이 길을 올라갈 자신이 없어 대형 이불을 양쪽 손에 들었습니다. 이날은 영하에 가까운 날씨였는데, 무거운 이불을 들고 경사를 오르기 시작하자 땀이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분명히 이 주소가 맞는데 아무리 봐도 구불구불한 골목엔 종이에 적힌 지번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6.25 전쟁당시 피란민이 몰려들어 만들어진 특성 탓인지, 집을 찾기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습니다. 마을지기 김진두(부산 동구·57) 씨는 "자주 다니다 보면 주소를 정확히 알지만, 처음 집을 찾아가려면 어렵다"며 "정확한 주소를 물어봐도 고령 어르신들을 잘 설명을 못하셔서 나도 처음에 주소 찾는 게 가장 어려웠다"라고 전했습니다.
가까스로 빨래를 의뢰한 주민과 연락이 닿아 계단 밑에 숨어있는 집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집에 들어서자 고령의 어르신이 기자를 반겼습니다. 이 어르신은 "계절이 바뀔 때마다 이불 빨래를 해야 하는데 도저히 혼자 할 힘이 없다. 아유 고맙고 예쁘다"라며 기자의 손을 꼭 잡으셨습니다. 불편한 몸으로 현관까지 나와 자양강장제를 쥐어주셨습니다.
■ 병원 한번 가기도 버거운 경사
여기저기 아픈 것도 서러운데, 산복마을에서는 병원 한 번 가는 것도 일입니다. 경사를 오르고 내려 버스정류장에 도착하는 것도 거동이 불편하신 어르신들에겐 부담스럽습니다. 이때 주민들의 발이 되어주는 '행복콜'이 있습니다. 주민들의 사정을 속속들이 아는 마을지기들은 주소도 보지 않고 집과 병원을 단번에 찾아갑니다. 이날 기자는 빨래 배달에 이어 행복콜 서비스에서도 헤매었습니다. 동구 범일동의 한 주택을 찾아가야했으나, 주소를 제대로 알지못해 지나치던 저를 어르신이 불러 세웠습니다. 어르신들은 항상 약속시간보다 먼저 나와계신데, 추운 날 기다리시게 한 것 같아 마음이 쓰였습니다. 거동이 어렵다 보니 승차하시기 편하도록 기자는 인도까지 차를 몰아 현관문 앞에 바짝 차를 댔습니다. 기자 생활을 하면서 익힌 운전실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습니다. 한 손은 지팡이에, 다른 한 손은 기자 손을 잡고 간신히 조수석에 몸을 실었습니다. 이 어르신은 "매주 병원에 갈 때 행복콜을 이용한다. 병원 근처에 편하게 간 김에 장도보고 은행도 가고 볼일을 한꺼번에 다 보고 온다"며 "행복콜 이용하는 날이 장날이다"라며 웃으셨습니다.
주로 행복콜은 단골손님이 많은데, 매번 같은 요일에 행복콜을 이용하던 어르신이 전화가 없으면 마을지기들은 안부차 전화를 드리기도 합니다. 마을지기 김진두 씨는 "행복콜이 어르신의 발이 되어드리기도 하지만, 안부 확인이 자연스럽게 되는 효과도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꺼진 불이 반짝, 막힌 물도 콸콸
건조까지 마친 이불을 정리한 뒤 잠시 숨을 돌리려는데 곧장 다음 업무가 시작됐습니다. 집 수리를 위해 마을지기 김진두씨와 함께 범곡사거리 인근의 주택가로 향했습니다. 동구 토박이면서 어지간한 길 찾기는 도가 트인 김 씨였지만, 워낙 골목이 많아 몇 번을 헤맨 끝에 의뢰인의 집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안방으로 향한 김 씨는 사다리를 펼친 뒤 능숙하게 고장 난 전등을 새것으로 갈아 끼웠습니다.
“화장실도 좀 봐주실 수 있습니까?” 작업을 마친 뒤 짐을 챙기는 김 씨에게 의뢰인이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낡은 수도관이 막혀 물이 나오지 않아, 교체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수도관을 한참 살펴본 김 씨는 차량에서 스패너를 꺼내 왔고, 녹슨 너트를 풀어 새로운 관으로 교체할 수 있었습니다. 수전에서 물이 콸콸 흐르는 것을 본 의뢰인은 “혼자서는 전등 하나 갈기도 힘든데, 덕분에 이제 손주들이 집에 와도 마음 편히 맞이할 수 있겠다”고 말했습니다.
출장 집수리는 저소득층을 제외하면 출장비 5000원과 재료비만 받습니다. 1건을 기준으로 접수하지만 실제로 방문하면 추가로 요청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김 씨는 “출장비를 아끼고 싶은 마음도 이해하기 때문에 현장에서 추가로 요청해도 최대한 처리하지만, 바쁜 날엔 그냥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마을을 지키는 다정한 이웃
오후 1시 30분, 점심을 먹은 뒤 다시 업무가 시작됐습니다. 관내 경로당 네 곳에 화재 예방용 연기감지기와 가스 밸브 차단기를 설치해야 합니다. 어르신들이 식사 준비나 물을 끓이기 위해 올려놓은 불을 깜빡하고 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처음 방문한 경로당은 한 아파트 단지 내부에 있었습니다. 마을지기 김진두 씨의 시범을 지켜본 뒤 기자가 직접 드릴을 잡고 사다리 위로 올랐습니다. 땅에서는 사다리가 그리 높지 않아 보였는데, 위에서 내려다보니 다리가 후들거렸습니다. 김 씨는 사다리를 잡은 채 기자에게 “떨어져도 다칠 높이는 아니니 겁낼 것 없다”고 웃으며 말했습니다. 작업을 마치자, 경로당 회장님께서 자양강장제를 건넸습니다. 김 씨는 “고맙다며 주전부리를 주는 분들이 많다”며 “일주일이면 한 박스는 모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다음 목적지는 물류 단지 인근의 주택가. 미로 같은 골목을 지나자 '경로당' 간판이 달린 낡은 건물이 나타났습니다. 할머니 세 분이 바닥이 미지근한 방안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었습니다. 작업을 마치자 한 할머니가 김 씨에게 자신의 집에 들러 벽에 못을 박아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달력을 걸기 위해서였습니다. 김 씨는 “콘크리트 벽에 구멍을 낼 수 있는 장비를 못 챙겨 왔네요”라며 “다음에 또 경로당으로 부를 때 미리 얘기해 주세요. 장비 꼭 챙겨 갈게요”라고 말했고, 할머니도 “참말로 고맙다”며 김 씨의 등을 두드렸습니다.
경로당에서 나와 기자와 차를 타러 이동하던 김 씨가 갑자기 길가의 어느 집으로 향했습니다. “별일 없으시죠? 불편한 건 없고요?” 김 씨는 안에 있던 어르신에게 안부를 묻고 나왔습니다. 김 씨는 “행복콜로 방문하니 혼자 지내시더라”며 “근처 지나갈 때 생각이 나 잘 계시는지 확인하고 온다”고 말했습니다.
나머지 경로당에 들러 업무를 마친 뒤 돌아온 사무소, 정수기 앞에 종류가 다른 커피믹스들이 섞여 있는 게 눈에 띄었습니다. 마을지기사무소를 이용한 주민들이 고맙다며 집에서 자신들이 마시는 제품을 가져오다 보니 생긴 일입니다. 하루 동안 곁에서 지켜본 마을지기는 단순히 생활 속 불편을 덜어주는 역할만이 아니었습니다. 오가며 홀로 사는 어르신의 집에 방문해 안부를 묻기도 하고, 길에서 마주친 주민들과 반갑게 인사하며 자연스럽게 정을 나눴습니다. 마을지기는 말 그대로 ‘마을을 지키는 사람’이었고, 다정한 이웃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