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 2025-01-16 12:42:16
■큰 나라 중국, 쩨쩨한 중국인/김영수
중국인들 사이에서는 지난해 초부터 한국에 곧 전쟁이 날 것 같으니 유학은 물론 여행도 위험하다는 말이 나돌았다고 한다. 중국의 한반도 전문가들은 전쟁이 일어난다면 우발적 충돌이나 윤석열 정부의 고의적인 도발 때문이지, 북한 김정은의 도발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말했다. 비상계엄을 선포한 윤석열 대통령이 ‘중국 간첩’과 ‘중국 태양광’을 쿠데타의 이유로 거론하는 어이없는 모습을 보니, 중국은 우리를 아는데 우리는 중국을 잘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판다고 상대를 알 필요성은 답답한 쪽에 있다. 중국은 남한의 95배 크기다. 우리의 도(道)에 해당하는 중국의 성(省) 하나가 우리나라 크기와 맞먹거나 훨씬 크다. 중국에서 가장 큰 성인 신장 위구르 자치구 면적은 독일, 프랑스, 영국, 스페인을 합한 면적과 맞먹는다. 동서의 길이는 시간, 남북의 길이는 기후 차이를 만들어 낸다. 크기에서 오는 다양성과 차이를 인식하지 않고는 중국을 이해할 수 없다. <큰 나라 중국, 쩨쩨한 중국인>에 따르면 중국인의 ‘만만디’는 게으름의 표현이 아니다. 공간과 시간의 절대 크기와 차이가 만들어 내는 다양한 환경에 따른 생존 방식이자 생활 습관으로 이해해야 한다. 중국에서는 공간적으로 우리처럼 ‘빨리빨리’가 안 된다는 것이다.
사드 문제가 불거지고 중국의 각종 치사한 보복이 전방위로 진행되고 있을 때였다. 중국 전문가인 저자가 기업인들로부터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저렇게 ‘큰 나라’가 왜 이렇게 ‘쩨쩨하게 보복’하느냐는 것이었다. 사실 그 반대의 경우는 보기가 힘들고, 덩치 큰 놈들이 작은 애들 괴롭히는 일은 흔하다. 약자 입장에서야 억울하지만 누군가가 배신하면 쩨쩨하게 보복해야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쩨쩨함은 디테일하다는 뜻의 다른 말이다. 중국은 큰 것이 많은 나라인 동시에 작은 것도 많아 디테일에도 강하다.
저자는 ‘큰 나라 중국의 쩨쩨한 보복’에서 핵심은 ‘보복’에 있다고 본다. 은혜와 원수로 이루어진 ‘은원관(恩怨觀)’은 중국인의 DNA에 새겨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은 제왕을 정점으로 하는 수천 년간의 신분 관료 체계를 둘러싼 권력투쟁에 뿌리를 두고 있다. <사기>를 쓴 사마천은 반역죄에 몰려 성기가 잘리는 수치스러운 궁형을 받고도 붓으로 원한을 갚는 ‘문화복수(文化復讐)’를 했다. 하긴 ‘영웅본색’ 같은 중국 영화나 드라마, 사극이나 무협 영화의 주제는 대부분 배신과 원한, 은혜와 복수로 점철되어 있지 않았던가. 은혜를 잊지 말고 보답하는 사례도 역사에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다만 보답의 기한을 정해두지는 않는다니, 이건 좀 난감하다.
이 책은 중국 음식과 술에 대한 이야기도 풍성하다. 중국인들은 “선물은 마오타이(茅台酒)지만 마시기로는 우량예(五粮液)다” 또는 “말로는 마오타이지만 마시는 술은 우량예다”라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 국주(國酒) 마오타이는 선물과 뇌물의 상징이자, 가짜의 대명사였기 때문인 것 같다. 공부가주(孔府家酒)는 중국에서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술인데 공자라는 이름 덕에 한국에서 인기가 많다. 옌타이(烟台)는 상대적으로 낮은 도수와 가격 때문에 급부상했다.
‘중국인으로 태어나 죽을 때까지 다 경험하지 못하는 세 가지가 있다’는 이야기는 참으로 중국답다고 하겠다. ‘나라 안을 다 다녀보지 못하고, 글자를 다 익히지 못하고, 요리를 다 먹어보지 못하고 죽는다’는 것이다. 특히 중국과 사업을 하는 비즈니스맨이 이 책을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가 중국인과의 비즈니스에서 “절반만 말하고, 1절만 부르라”고 충고하는 이유가 다 있다.
누가 차기 한국 대통령이 되더라도 윤석열 시절에 비하면 대중관계는 나아질 것이다. 중국이 전격적으로 한국에 대한 비자 면제 조치를 취한 것도 이 정권 다음을 염두에 둔 전략이라는 분석에 뜨끔해진다. 저자 역시 중국을 제대로 알고 이해하자면서도 마음이 편치 않아 보인다.
사드에 대한 보복이 아직도 끝나지 않았고,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소프트파워 전략의 창끝이 우리를 겨냥하고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김영수 지음/바틀비/312쪽/1만 98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