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견생이 인생보다 더 의미 있는 이유는…

■ 네 발의 철학자/마크 롤랜즈
순간의 기쁨 몰입하는 개의 삶
생각에 갇히는 인간보다 행복
소소함 속 즐거움 찾을 수 있어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 2025-05-11 09:00:00

매일 똑같은 일상이라도 순간의 기쁨에 몰입하는 개의 삶에서 행복의 의미를 깨닫는다. 책 속 삽화. 추수밭 제공 매일 똑같은 일상이라도 순간의 기쁨에 몰입하는 개의 삶에서 행복의 의미를 깨닫는다. 책 속 삽화. 추수밭 제공

한때 비참한 상태 혹은 행실이 바르지 않은 사람을 비난할 때 동물 ‘개’에 빗대어 표현하곤 했다. ‘개같은 인생’이라는 말도 있고 나쁜 사람을 뜻하는 가장 흔한 욕이 ‘개새끼’이지 않을까. 심지어 이름 앞에 ‘개’라는 단어를 바로 붙여 말하기도 한다. 정말 개의 인생과 태도가 그렇게 최악일까.

미국 마이애미대 철학과 교수(학과장)이자 철학 관련 저서를 여러 권 낸 작가이며 유명한 철학자인 마크 롤랜즈. 최근 출간한 <네 발의 철학자>에서 그는 견생이 인생보다 더 의미 있다고 단언한다. 개들의 삶은 그 자체로 우리가 추구하는 철학의 답이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철학자들이 삶의 의미에 관해 오래 고민했지만, 개의 삶을 관찰하며 단순명료하게 답을 얻을 수 있었다. 책은 반려견의 행동을 설명하며 자신이 찾은 행복의 비결을 소개한다. 유명한 철학자인 만큼 소크라테스부터 아리스토텔레스, 칸트, 흄, 스피노자, 사르트르, 알베르 카뮈까지 인간계를 대표하는 철학자들의 사상을 개의 삶과 견주어 풀어낸다.

그리스 신화에서 인간 시시포스는 신에게 벌을 받아 거대한 바위를 언덕 위로 밀어 올려야 한다. 고되고 기나긴 시간을 거쳐 정상에 다다를 때마다 바위는 언덕 아래로 다시 굴러 내려가고, 그때마다 시시포스는 언덕 아래로 내려와 바위를 다시 밀어 올린다. 신화 속 이야기지만, 특별한 몇몇 사람을 빼고 대다수 보통 사람은 시시포스처럼 쳇바퀴 도는 듯한 일상을 산다. ‘지겨운 일상을 언제쯤 벗어날까’ ‘내 삶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나는 어떻게 행복해질까’ 같은 고민이 따라붙는다.


매일 똑같은 일상이라도 순간의 기쁨에 몰입하는 개의 삶에서 행복의 의미를 깨닫는다. 책 속 삽화. 추수밭 제공 매일 똑같은 일상이라도 순간의 기쁨에 몰입하는 개의 삶에서 행복의 의미를 깨닫는다. 책 속 삽화. 추수밭 제공

반면 개는 매 순간이 행복 그 자체다. 후회도 걱정도 없이 오직 현재에 머물 뿐이다. 저자의 반려견 섀도는 매일 정해진 시간에 똑같은 장소로 산책가지만, 매번 “산책갈래”라는 한 마디에 뛸 듯이 기뻐한다. 반복되는 일상에도 변함없이 좋아하는 개를 보며 저자는 몰입하는 삶과 행복에 관해 살핀다. 거기에는 어떤 고민이나 의심, 자기 검열이 끼어들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인간이 다른 종보다 우월하다고 여기는 철학적 성찰 능력은 오히려 삶을 불행하게 하는 건 아닐까라고 지적한다. 삶에 대해 과도하게 생각하고 집중하기 때문에 본질적인 삶과 더 멀어진다는 것이다. 인간은 삶을 사는 주체이자 스스로를 관찰하는 객체로 분열되어 두 개의 삶을 산다. 삶의 배우이자 관객인 것이다. 배우로서 삶에 몰입하지만, 관객으로도 삶을 바라보고 평가하고 때론 캐묻고 의심한다. 그러며 결국 두 삶 중 어느 하나도 온전히 사랑하지 못하게 된다. 성찰하지 않는 개는 오직 주체로서 하나의 삶을 살며 매 순간 자신의 모든 일을 사랑할 수 있다.

매일 똑같은 일상이라도 순간의 기쁨에 몰입하는 개의 삶에서 행복의 의미를 깨닫는다. 책 속 삽화. 추수밭 제공 매일 똑같은 일상이라도 순간의 기쁨에 몰입하는 개의 삶에서 행복의 의미를 깨닫는다. 책 속 삽화. 추수밭 제공

물론 성찰은 인간의 핵심적인 특징일 수 있지만, 최고 경지의 인간적 성취는 성찰이 잠시 자리를 비웠을 때 이루어지기도 한다. 연주에 깊이 몰입한 피아니스트, 홀린 듯 흘러나오는 단어를 글로 옮기는 소설가, 그림에 빠져 다른 모든 것을 잊은 화가 등 몰입을 통해 시대를 아우르는 명작이 탄생한다.

과학자들은 실험을 통해 인간뿐만 아니라 동물도 자신을 인식하는 능력이 있다는 걸 증명했다. 다만 남들에게 자신이 어떻게 비치는지 관심이 없을 뿐이다. 책에선 인간만이 도덕적이라는 생각도 뒤집는다. 무리의 다른 개체를 구하거나 반려인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는 여러 사례를 통해 동물 역시 도덕적일 수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노화로 인해 관절염이 심했던 반려견의 일화도 언급한다. 더는 통증을 견딜 수 없어 결국 수의사의 충고를 받아들여 안락사를 준비한다. 수의사가 집에 도착하기 전 저자는 반려견과 매일 놀던 정원에 나갔고, 좋아하던 장난감을 던져주니 순간적으로 질주하며 장난감을 가져다주었다. 그렇게 몇 번을 놀다가 잠시 후 영원히 잠든다. 끔찍한 고통을 압도할 만큼 반려견이 끝까지 자신의 일상을 사랑하는 모습은 감동적이다.

저자는 주체로서의 삶, 순간에 몰입하며 행복한 개의 인생에서 에덴(천국)을 본다고 마무리한다. 마크 롤랜즈 지음/강수희 옮김/추수밭/296쪽/1만 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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