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돈 기자 happyi@busan.com | 2025-06-19 09:21:38
이케아, 일렉트로룩스, H&M, 볼보…. 스웨덴이라는 나라에 대해 알고 있는 게 뭘까 생각해 보니 우선 유명 브랜드들이 떠올랐다. 스포츠 스타로 얀 발트너(탁구)나 안니카 소렌스탐(골프),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와 손흥민 동료 데얀 쿨루세브스키(이상 축구)도 생각났다. 글로벌 이슈나 외국 문화에 꽤 관심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스웨덴을 콕 찍어 생각해 보니 더 이상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북유럽 스칸디나비아반도에 위치한 스웨덴은 지리적으로 한국에서 너무 멀리 있다. 미국이나 독일, 프랑스, 영국처럼 거리가 멀어도 국제뉴스에 단골로 등장하는 강대국도 아니다. 그러니 직접 가보지 않고서야 머릿속으로 그려지는 그림이 있을 리 만무하다. 그런데 부산의 기자 부부가 딸 둘, 아들 하나 삼 남매와 함께 그 먼 곳에서 1년간 살다 온 이야기를 책으로 펴냈다. 스쳐 지나가듯 들른 여행자라면 결코 경험할 수 없었을 생활 밀착형 분투기가 묵직하다.
부부의 스웨덴행은 아내(부산일보 이현정 기자)의 한국언론진흥재단 해외연수생 선발과 남편(연합뉴스 김선호 기자)의 육아휴직으로 가능했다. 가족이 스웨덴에 도착한 건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2년 여름이었지만, 현지 임시 거처 구하기와 아이들 학교 입학허가 받기 등 만만치 않은 도전은 출국 전부터 시작됐다. ‘슈퍼 갑’ 집주인의 소득증명 요구에 부랴부랴 월급명세서까지 보내고도 집 구경 기회조차 얻지 못하거나, 현지에 도착한 후에도 학교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애태웠던 순간들은 떠올리면 스웨덴 사회로부터 거부당한다는 느낌에 좌절감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아이 셋 키우며 취재 현장을 누빈 ‘억척 기자 부부’의 역량은 이국에서도 오래 숨기기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영어는 좀 서툴러도 특유의 친화력만큼은 글로벌 스탠더드로 무장한 아이들 역시 초반 적응기를 마치자마자 또래 인싸가 됐다. 어느새 가족은 스톡홀름국제영화제 티켓을 예매하고, 골프장에서 눈썰매와 스키를 즐기고, 노벨상 시상식장을 찾고, 오로라 여행을 떠나고, 한정판 쟁반을 구하려 오픈 런에 참전하거나 아비치(Avicii)의 웨이크 미 업(Wake Me Up)에 남다른 감정을 느끼는 ‘반현지인’이 돼 있었다.
<비공식 스웨덴 특파원입니다>가 여느 해외 여행기나 생활기와 확연히 구분되는 면은 부부가 언론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내려놓지 않고 스웨덴의 구석구석을 살폈고, 그 내용을 고스란히 책에 담았다는 점이다. 비록 ‘비공식’이라고 스스로 격을 낮췄지만, 책 제목에 당당히 ‘특파원’이라고 밝힐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부부는 버스를 타거나 자전거 문화를 경험하고 도서관을 이용하며 부산의 대중교통 시스템과 박형준 시장의 ‘15분 도시’를 떠올렸다. 총리가 연사로 등장한 거리 집회와 노동절 행사를 보며 시위 문화에 대해 생각하고, 세컨핸즈숍(중고품 가게)에서 대물림 옷을 득템하며 순환 경제 실천을 다짐했다.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를 만나러 집회에 참가하고,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를 인터뷰하기 위해 영국의 서남부 데번주까지 렌터카를 몰았다.
부산으로 돌아온 부부는 여전히 기자로서 일하고 있다. 아이들도 변함없이 학교와 학원을 오간다. 스웨덴에서의 1년이 가족의 삶을 극적으로 바꾸지는 못한 모양이다. 하지만 이들은 한 번씩 들여다보고 힘을 얻는 ‘가슴 속 우물’을 만들었다고 말한다. 김선호·이현정 지음/빨간집/412쪽/2만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