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진 기자 onlypen@busan.com | 2025-07-22 07:00:00
노년의 삶에서 치매는 피할 수 없는 이슈다. 하지만 모든 인지 장애가 치매는 아니다. 치매로 오진되는 대표적인 질환이 바로 ‘수두증’이다. 고신대병원 심용우 신경외과 교수는 “수두증은 인지 장애 가운데 치료 가능한 질병”이라며 “적절한 검사와 수술 치료가 뒷받침되면 증상이 현저히 호전될 수 있다”고 밝혔다.
■퇴행성 치매와 증상 유사
두개골 내 뇌압을 구성하는 요소로 뇌, 뇌혈류, 뇌척수액이 있다. 나이가 들수록 뇌 부피는 감소하고 심장 기능이 저하되거나 혈관 탄력이 감소하면서 뇌혈류는 줄어든다. 수두증은 뇌척수액이 비정상적으로 증가하면서 뇌실이 확장되고, 이로 인해 뇌를 압박해 보행장애, 배뇨장애, 인지장애 등의 증상을 유발한다.
특히 보행장애의 경우 종종걸음, 허리 굽힘, 불균형 등이 관찰된다. 무게 중심이 앞으로 치우쳐 허리를 굽혀서 걷지 않으면 불안정하고 넘어지려 하는 모습을 보인다. 조금 빨리 걷는 경우 중심을 잃고 넘어지기도 하며, 걸을 때 한쪽으로 쏠리기도 한다. 소변을 참지 못하거나 인지 기능 저하가 동반되기도 하는데, 이 세 가지 증상이 모두 있지 않더라도 한 가지 증상만으로 내원하는 경우도 많다. 인지 장애가 있으면서 허리 구부려 종종걸음 걸으면 치매보다는 수두증일 가능성이 더 높다.
신생아나 영유아의 경우엔 말을 하지 못해도 머리둘레가 지나치게 커지고 안구가 안쪽으로 몰리는 등의 증상을 동반하면서 수두증 판별이 성인에 비해서는 수월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성인의 수두증은 판별하기 쉽지 않다. 특히 고령 환자에서 이러한 증상이 나타나면 가족은 치매로 단정 짓고 병원에 데려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
진단 기준이 너무 까다로운 것도 문제다. 대부분 영상에서 뇌실이 눈에 띄게 커져 있어야 수두증을 의심하지만, 일부 환자는 뇌실 크기가 정상이거나 증상이 전형적이지 않더라도 수두증일 수 있다. 침상 생활만 가능했던 중증 치매 환자들이 수두증 치료 후 일상생활이 가능한 인지 상태로 보호자와 함께 외래 진료를 받기도 한다. 심 교수는 “환자가 노년층일 경우 보호자들 상당수가 치매라고 생각한다”며 “치매가 아닌 수두증으로 진단받을 경우 치료만 제때 받으면 증상들이 크게 개선될 수 있기 때문에 무조건 치매라고 단정지어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치료 늦어지면 2차 문제 우려
수두증 진단은 영상검사와 더불어 뇌척수액 배액검사로 이뤄진다. 뇌척수액 배액검사는 허리에서 뇌척수액 약 30cc를 배출하는 방식으로 이뤄지는데, 수두증 환자의 경우 검사 직후 머리가 맑아지고 걷는 모습이 달라진다. 검사 후 주변이 밝아졌다고 하거나 걷는 모습이 갑자기 안정적으로 변한다면 수두증을 의심해볼 만하다. 기준에 부합하지 않아도 의심이 되면 배액검사를 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수두증은 진행 속도가 환자마다 다르지만, 시기와 관계없이 치료 효과는 기대할 수 있다. 다만 치료가 늦어질 경우 활동 제한으로 인해 근력 저하, 심부전 악화, 우울 증상 등 2차 문제가 동반될 수 있어 조기 치료가 권장된다.
수술은 ‘션트수술’이라고 알려진 뇌실복강우회술이 대표적이다. 피부 아래 관을 삽입해 과도한 뇌척수액을 복강으로 배출시키는 방식이며, 수술시간은 50분 정도 소요된다. 출혈이 적고 회복도 빨라 고령이더라도 별다른 지병이 없다면 수술이 가능하다. 실제 평균 수술 연령은 75세 전후다.
심 교수는 “치매 진단을 확정하기 전 인지장애를 유발할 수 있는 질환은 모두 감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치매 진단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인지장애 유발 원인을 찾으려는 노력을 해야 하고 그에 맞는 적극적인 치료가 뒤따를 필요성이 있다. 대표적인 오진 질환 중 하나로 인지장애를 유발할 수 있지만 치료 가능한 질환인 수두증을 놓치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하지만 의료계 전반에서 수두증에 주목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2023년 7월에서야 처음으로 수두증 관련 학회가 창립된 것이다. 그만큼 수두증 진단이 흔치 않기도 하다. “고령자의 삶의 질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심 교수는 “모든 인지장애가 치매는 아니며, 치료 가능한 질병부터 의심하고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수두증이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며, 조기 진단과 치료를 통해 노년의 삶이 다시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