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은샘 기자 iamsam@busan.com | 2025-07-31 17:04:20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러트닉 상무장관의 스코틀랜드를 따라간 게 협상의 전기를 마련했다.”
한미 무역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된 30일(현지 시간), 산업통상자원부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은 백브리핑에서 이같은 협상 뒷이야기를 전했다. 미국에서 마스가(MASGA) 제안에 관심을 보이자 기세를 몰아 하워드 러트닉 장관의 스코틀랜드 방문을 따라갔던 ‘뉴욕-스코틀랜드’ 연쇄 회담이 협상의 기류를 바꾸는 변곡점이 됐다는 것이다.
지난 22일 여 본부장의 방미로 개시된 이번 협상은 당초 상호관세 유예 마감일인 31일까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됐으나 하루 일찍 종료됐다. 이 과정에는 협상의 키맨 역할을 한 러트닉 장관과 한국의 마스가 프로젝트가 주효했다는 평가다.
러트닉 장관의 뉴욕 사저에 이어 장관의 스코틀랜드 출장에 따라간 ‘밀착마크’도 노력의 일환이었다. 협상단은 첫 만남에서 가로·세로 길이 1m 정도의 대형 판넬을 들고가 한미 조선협력이 가져올 효과를 구체적으로 제시했고, 러트닉 장관과 다음번 만남을 약속했다.
이후 뉴욕과 스코트랜드에서 러트닉 장관과의 연이은 협상을 거쳐 이번 협상의 핵심 카드가 된 마스가 프로젝트가 구체화됐다. 마스가 프로젝트는 미국 내 신규 조선소 건설, 조선인력 양성 등의 내용을 담은 조선협력 패키지다. 대미투자 규모 총 3500억 달러 중 1500억 달러가 조선 협력 관련 내용이다. 여 본부장은 “조선협력 관련 펀드는 한미 관세협상에서 ‘게임체인저’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담판을 앞두고 서로 ‘트럼프 역할’을 맡는 모의연습도 진행했다. “복잡하게 설명하지 말고, 이해하기 쉽고 단순하게 말하라”는 러트닉 장관의 조언을 참고했다. 산업부 김정관 장관은 “일종의 모의고사 비슷하게 서로 트럼프 대통령 역할을 맡는 ‘롤 플레이’를 했다”며 “트럼프 대통령 스타일로 질문해 보고, 어떻게 답변할지 연습하는 등 굉장히 많은 시나리오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미국이 협상 과정에서 한국을 가장 압박했던 부분은 농축산물 시장 개방 요구였다. 여 본부장은 설득을 위해 2008년 광우병 사태 당시 집회 사진을 직접 제시하며 정치적 민감성을 설명하기도 했다.
이번 합의에 자동차, 철강 관세 인하는 담기지 않았다. 여 본부장은 자동차 관세에 대해 “일본과 EU가 15% 관세 적용받기로 협상을 타결했는데, 우리는 FTA가 있어 다른 나라와 달리 12.5%를 적용받아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지만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철강 관세에 대해서도 “트럼프 대통령에게 직접 철강 관세 인하를 요청했지만 철강에 대해서는 미국의 굉장히 강한 입장이 있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