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 2025-08-01 09:00:00
‘물 들어올 때 노 저어라.’ 요즘 부산 지역 F&B(식음료) 업체들이 해외 시장을 바라보는 분위기가 이렇다. K-컬처와 K-푸드의 인기에 힘입어 해외 진출이 부쩍 활발해지고 있다. ‘낙지볶음 안경희 개미집(이하 개미집)’은 지난 4월 일본 교토를 시작으로 오사카 난바 센니차마에점과 오사카 츠루하시 본점을 열었다. 개미집은 올해 내에 일본 매장을 8곳으로 늘릴 예정이다.
부산의 돼지고기 전문점 ‘미진축산’은 지난해 홍콩 샤틴에 연 해외 1호점이 핫플레이스로 떠오르자 자신감을 가지고, 일본·중국 등 아시아 국가로 해외 매장을 확대할 계획이다. ‘텐퍼센트커피’는 지난해 태국 방콕 1호점을 시작으로 해외 진출을 본격화하고 있다. 싱가포르, 베트남,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K-커피 문화를 알리고 선도하겠다는 당찬 포부를 밝힌 상태다. 부산의 디저트샵 ‘아틀리에 스미다’는 최근 동남아는 물론 유럽에서까지 적극적인 문의가 들어오자 2호점을 해외에 내는 문제를 고민하고 있다.
한국프랜차이즈산업협회 부울경지회 오몽석 회장(‘불막열삼’ 대표)은 “외식업체도 이제는 해외 시장을 뚫어야 하는 시대이다. 우리 협회 내에서도 해외 진출을 원하는 회원사가 늘어나, 협회 안에 글로벌 분과를 만들었다. 얼마 전에도 부산경제진흥원의 지원으로 전시회와 가맹점 모집을 위해 협회 차원에서 태국과 필리핀에 다녀왔다”라고 말했다. 적극적으로 해외 진출에 나서서 성공 신화를 만들어 가고 있는 부산 업체 3곳의 생생한 이야기를 전한다.
■뉴욕에 우뚝 선 ‘윤해운대갈비’
1964년 해운대에서 시작한 60년 전통의 ‘해운대암소갈비’는 2018년 뉴욕 분점인 ‘윤해운대갈비’를 열었다. 윤해운대갈비는 2021년에는 뉴욕 10대 레스토랑에 선정되고, 2022년 농림축산부가 선정한 해외 우수 한식당 8곳에 포함되면서 새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다. 뉴욕의 윤해운대갈비는 연간 매출액도 70억 원에 달한다. 윤해운대갈비는 지난해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에도 입점했다.
해운대암소갈비의 새로운 도전은 3대째 가업을 잇는 윤주성 대표가 책임지고 있다. 미국에서 대학을 나온 윤 대표는 뉴욕에 있는 회사에 다니다 그만두고 요리학교 ICE(Institute of Culinary Education)에 들어가 요리와 함께 레스토랑 경영학을 배웠다. 뉴욕 분점도 사실은 그때 만났던 지인의 소개로 열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이 생각처럼 순조롭지는 않았다.
윤 대표는 “내가 너무 몰라서 뉴욕에서 가게를 열었다. 뉴욕에 가게를 열어 경험했던 일들을 미리 알았더라면 윤해운대갈비는 절대 안 했을 거다. 한국 법과 미국 뉴욕 법은 완전히 달랐고, 모든 뉴욕 법이 적대적으로 느껴졌다. 생각대로 흘러간 게 하나도 없는 무모한 도전이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 덕분에 뉴욕의 윤해운대갈비를 찾았던 손님이 부산의 해운대암소갈비 앞에 줄을 서게 되었으니 큰 보람이 아닐 수 없다. 해운대암소갈비의 브랜드 가치는 이전보다 훨씬 높아졌다.
윤 대표는 ‘갈비를 하려면 갈비를 알아야 한다’라는 집안 가르침에 따라 육부실(肉部室)에서 고기 정육부터 시작해 특유의 ‘다이아먼드 커팅’, 양념 만들기까지 기초를 익혔고, 외국 레스토랑에서도 일을 배웠다. 그러니 자신 있게 해운대암소갈비에 대해 이야기할 수가 있다. 그는 “브랜드의 가치와 지속성이 중요하다. 해운대암소갈비는 세계에서 오직 한 곳 부산에만 있고, 윤해운대갈비는 글로벌브랜드로 키우겠다”라고 말한다. 탄탄하게 기초를 다지고 가는 스타일이다. 윤 대표는 “서두르지는 않겠지만 도쿄, 파리를 비롯해 세계 주요 도시에 윤해운대갈비를 하나씩 입점시켜 세계에 부산의 맛을 알리겠다”라고 말했다.
■‘이하정’, 니들이 간장게장 맛을 알아?
한국인의 밥도둑 일 순위로 꼽히는 간장게장 인기가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다. 특히 일본에서는 한류 열풍과 K-푸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떡볶이나 김밥 같은 분식류를 제치고, 간장게장 같은 깊이 있는 한식이 새로운 인기 메뉴로 부상하고 있다. 이 같은 바람을 타고 부산 수영구에 자리 잡은 ‘이하정 간장게장’(이하 이하정)은 지난해 10월 일본 후쿠오카 다이묘 직영점을 개설하고 본격적인 일본 진출을 선언했다.
이하정은 꽃게 철에 연평도를 비롯한 서해안 산지에서 꽃게를 엄선해 가져온 뒤 조선간장과 천연 식재료로 배합한 양념으로 숙성시킨다. 덕분에 이곳 간장게장은 염도와 당도가 낮다. 고소하면서도 비리지 않고 식감이 뛰어난 것이 특징이다. 간장게장은 잘못 먹으면 배탈이 나기 쉬운데, 이하정은 까다로운 FDA(미국 식품의약국) 승인을 받아 일찍부터 미국으로 수출하고 있다는 사실도 안심이 되는 대목이다.
이하정은 2013년 ‘먹거리 X파일’의 착한 식당으로 부산에서는 처음으로 선정되며 전국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황성규 대표는 “방송에 나온 뒤에도 변함없는 맛으로 계속 밀고 나가고 있다. 일본과 대만 등에서 기자들이 계속 찾아와 보도하면서 한국에 가면 꼭 가봐야 하는 집으로 소문이 났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본점에는 간장게장 맛을 잘 모를 것 같은 젊은 외국인 손님들이 유난히 많이 찾고 있었다.
일본에는 지역마다 고유의 간장이 있고 간장 아이스크림까지 만들어 팔지만, 간장으로 숙성시켜 만드는 간장게장 같은 음식은 없다고 한다. 황 대표는 “일본은 간장을 베이스로 하는 간장 문화이기에 간장게장과 친해지기 쉽다. 일본인들이 간장게장을 먹으면 전문적인 한국 음식을 경험해 봤다는 자부심을 가지게 되더라”라고 말했다. 그는 또 “일본은 전세나 권리금이 없고 보증금 조로 달세 3~6개월씩으로 받아서 오히려 진입하기가 한국보다 수월하다. 부산시에서도 유망한 지역 업체들을 해외에 데리고 나가서 선보이는 행사를 열면 좋겠다”라고 덧붙였다.
■산성식육점, 내가 간다 동남아!
프리미엄 숙성 돼지고기 전문점 산성식육점은 지난해 베트남 호찌민 타오디엔에 매장을 열고 본격적인 해외 진출을 알렸다. 이재형 대표는 식육점집 아들로 태어나 넥타이 맨 직장생활도 했지만,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와 자신의 자리를 잘 잡은 것 같다. 누룩과 막걸리로 이름난 산성마을은 이 대표 어머니의 고향이다. 산성식육점에서 맛볼 수 있는 누룩 소금과 누룩 장아찌가 태어난 배경도 그렇다.
이 대표는 친구들과 프랜차이즈 고깃집을 공동으로 운영하면서 이미 베트남 다낭에서 해외 매장을 열었던 경험이 있었다. 야심만만하게 시작한 다낭점은 코로나19 봉쇄로 오래 영업을 못 하다가 도둑이 들어 집기까지 몽땅 털리는 등 수난 끝에 결국 문을 닫는 아픔을 겪었다. 프랜차이즈와 결별해 자신의 브랜드 산성식육점을 열었지만, 베트남에서 7년이나 산전수전 겪은 경험이 아까워 재차 도전에 나선 것이다. 사실 한국의 고기 시장은 좁고 과부하가 된 상태라, 청년 사업가라면 외국으로 눈을 돌릴 법하다. 호찌민의 타오디엔 거리는 업자들끼리는 ‘마장동 골목’이라고 부를 정도로 한국의 고깃집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고 한다.
이 대표가 해외 진출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사람이다. 그는 “호찌민 매장에는 테이블이 20개가 채 되지 않지만 한국인 직원을 4명이나 두고 있다”며 “수익이 덜 남더라도 우리가 가진 매력을 제대로 전달하려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내린 결정이었고 다행히 문 열자마자 매출이 잘 나오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동안 동남아 시장의 매력은 임대료, 인건비, 식재료가 저렴하다는 점이었다. 이 대표는 “호찌민의 임대료는 많이 올랐지만 식재료비는 아직 저렴해 팍팍 퍼주고 있다”며 “베트남에 가게 하나 차리려고 시작한 게 아니다. 호찌민에 3개, 다른 지역까지 해서 7~8개 정도 매장 문을 열 생각이다”라고 밝혔다. 부산의 ‘산성’이 베트남에 빠르게 자리를 잡을 모양새다. 글·사진=박종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