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배 기자 sangbae@busan.com | 2025-09-11 15:13:34
11일 오전 10시 30분 부산 영도구 부산체육중·고등학교 급식 조리실. 분홍색 방수 앞치마를 두른 조리실무사들이 400여 명의 식사를 준비하느라 쉴새 없이 움직였다. 바쁜 건 사람만이 아니었다. 한 실무사가 고기 쟁반이 쌓인 카트를 ‘로봇 팔’ 앞에 가져다 놓고 버튼을 누르자, 긴 팔이 각 쟁반을 정확히 집어든 뒤 커다란 솥에 부었다. 냄비 안의 회전 날개가 고기를 저어가며 익히자, 뜨거운 김이 피어오르고 기름방울이 튀었다. 하지만 그 앞에 서 있는 사람은 없었다. 가까이서 지켜보던 취재진이 무심코 바닥의 노란 안전선을 넘자 ‘삐삐삐’ 경고음과 함께 로봇 팔이 즉시 멈춰 섰다.
부산체육고 엄민지 영양교사는 “조리 로봇 덕분에 조리사가 직접 불 앞에서 음식을 젓지 않아도 돼 다른 작업에 집중할 수 있고, 유해한 연기나 기름 튀김으로부터 안전도 확보됐다”고 말했다.
부산 지역 학교 급식실에 튀김·볶음·국 조리가 모두 가능한 ‘다기능 조리로봇’이 부산·경남권 최초로 도입돼 본격 가동에 들어갔다. 고온과 유해물질에 노출되던 급식노동자의 근무 환경 개선이 기대되지만, 인력 감축 등 업무 여건이 오히려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공존한다.
부산시교육청은 최근 부산 금정초등학교, 남일고등학교, 부산체육고등학교 등 3개 학교에 전기솥과 로봇팔이 결합한 다기능 조리로봇을 설치해 운영에 들어갔다고 11일 밝혔다. 앞서 시교육청은 한국로봇산업진흥원이 주관하는 ‘2025년도 서비스로봇 실증사업’에 선정돼, 국비 2억 5000만 원을 지원 받아 총 사업비 6억 7000만 원을 투입했다.
시교육청은 이번 조리로봇이 조리 과정에서 발생하는 유해물질 노출을 줄여 종사자의 건강을 보호하고, 일부 업무를 로봇팔이 대신해 노동 강도 완화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학교 급식실은 그동안 열악한 노동 환경의 대표 현장으로 지적돼 왔다. 조리종사자들은 단시간에 대량 조리를 요구받으며 근골격계 질환과 산업재해 위험에 시달려 왔고, 튀김·볶음 과정에서 발생하는 발암물질 ‘조리흄’에 상시 노출됐다.
다만 조리로봇 도입을 둘러싸고 현장에서는 우려도 적지 않다. 로봇이 국을 젓는 등 단순 작업에는 도움이 되지만 한 명의 몫을 온전히 대신하기는 어렵고, 자칫 이를 근거로 인력 배치가 줄어들면 노동 강도가 오히려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부산교육공무직노조 관계자는 “학교 급식실은 다른 공공기관보다 조리노동자 1인당 급식 인원이 많아 업무 강도가 높다”며 “환기시설 개선이나 1인당 급식 인원 축소 같은 근본적 대책이 함께 마련돼야 노동자들의 건강권을 지킬 수 있다”고 말했다.
글·사진=이상배 기자 sangbae@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