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지컬 AI 춘추전국시대… 전 세계 ‘왕좌 전쟁’ [비즈앤피플]

美 빅테크 중심 두뇌 영역 압도적 우위
유럽·日 시뮬레이션·센서 분야서 강점
中 휴머노이드형 로봇 강자 고속 성장
한국은 하드웨어 역량 토대 1위 도전장
정부 ‘3대 메가 프로젝트’ 등 전폭 지원

박지훈 기자 lionking@busan.com 2026-09-13 08:00:00

피겨AI의 휴머노이드 로봇 피겨03이 택배 물품을 들고 이동하고 있다. 피겨AI 홈페이지 캡처 피겨AI의 휴머노이드 로봇 피겨03이 택배 물품을 들고 이동하고 있다. 피겨AI 홈페이지 캡처

지난 5월 미국의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 기업 피겨AI가 선보인 실험에 전 세계가 깜짝 놀랐다. 유튜브 채널을 통해 생중계한 자사 로봇 ‘피겨03’의 택배물품 분류 작업 실험이 200시간 동안 성공적으로 진행한 것이다.

키 173cm, 무게 61kg의 피겨03은 컨베이어벨트로 쏟아지는 택배상자를 집어 바코드를 읽고 다시 내려놓는 작업을 약 9일간 진행했다. 배터리 충전을 위해 로봇 5대가 교대로 작업을 이어간 실험은 인간의 별다른 조작과 오류 없이 이어졌다.

피겨03은 스스로 상황을 판단해 팔과 손, 다리를 움직여 행동했다. 사람 없이 피지컬AI 기반으로만 공장이 운영되는 ‘다크팩토리’의 실현 가능성을 증명한 것이다.

이처럼 피지컬 AI의 시대가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 최근 인공지능(AI)는 언어와 이미지를 이해하는 생성형 AI 단계를 넘어, 실제 환경을 이해하고 예측·추론을 통해 현실에서 능동적으로 행동하는 피지컬 AI로 진화하고 있다.

전 세계가 각축전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우리 정부는 국내 제조업 인프라의 강점을 살려 글로벌 관련 시장 선점을 위한 지원에 나섰다. 반면 피지컬 AI 시대를 위해 넘어야 할 기술적 한계가 여전하다는 지적과 함께 로봇이 대체할 일자리 소멸에 대한 우려도 커진다.

■잠재시장 8경 원, 피지컬 AI 신시장 열린다

흔히 떠올리는 휴머노이드가 사람을 닮은 하드웨어 형태라면 피지컬 AI는 그 기계가 현실을 이해하고 자율적으로 움직이게 하는 지능 체계다. 휴머노이드에 피지컬 AI를 탑재하면 사람의 생활 공간에서 여러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지능형 로봇이 되는 것이다. 휴머노이드 뿐만 아니라 완전 자율주행차와 드론, 배달로봇과 같은 무인 자율주행 로봇 역시 피지컬 AI에 해당한다.

업계에서는 ‘인지-판단-행동’의 기술적 순환구조로 피지컬 AI를 정의한다.‘우주소년 아톰’과 같은 휴머노이드부터 ‘아이언맨’ 슈트와 같은 ‘웨어러블’ 로봇까지 다양한 형태로 진화가 예상된다.

피지컬 AI는 물류경로·에너지 효율 등최적화를 통해 비용을 절감하고 위험한 현장에 사람 대신 투입돼 안전성을 확보할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고령화에 따른 인력난을 해결하고, 1인가구 시대에 노인 돌봄과 고독사 방지 등 의료·복지 문제 해결까지 지원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기대감에 전 세계 피지컬 AI 시장 규모는 폭발적으로 커지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스태티스타(statista)는 2020년 50억 달러 수준이던 전세계 피지컬 AI 시장 규모가 2025년 225억 달러로 커진데 이어 2030년 643억 달러로 성장을 전망했다. 지난해 모건스탠리는 ‘휴머노이드 100 보고서’에서 피지컬 AI의 잠재 시장 규모가 60조 달러(약 8경 2000조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피지컬 AI, 절대 강자 없는 ‘춘추전국시대’

세계는 피지컬 AI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소리없는 전쟁을 진행 중이다. ‘인지-판단-행동’의 기술적 순환구조에 따라 각국의 강점도 제각각이다. 미국은 빅테크 중심으로 AI 모델, 클라우드, 고성능 반도체 설계 등 ‘두뇌’ 영역에 압도적 우위를 점하고 있다. 유럽과 일본도 각각 시뮬레이션과 자동화, 정밀부품, 센서 분야에서 강점을 보이고, 한국은 반도체와 배터리에서 경쟁력을 가진 것으로 평가된다.

중국은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전 분야에 걸쳐 경쟁력을 키우고 있다. 두뇌 기술에서 미국을 빠르게 추격하는 가운데 정부지원과 거대한 내수시장과 제조 기반을 바탕으로 자국 중심의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특히 중국은 휴머노이드형 로봇의 강자다. ‘로봇굴기’라 불리며 휴머노이드 로봇 산업을 무서운 속도로 성장시키고 있다. 그러나 상용화까지는 갈 길이 멀다는 평가다. 중국의 로봇이 탁구를 치고 무술 실력을 뽐내지만, 커피잔을 드는 등 섬세한 인간의 동작을 따라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는 것이다. 최근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중국이 하드웨어와 생산 능력에서는 앞서 있지만 로봇을 작업에 투입하는 데 필요한 소프트웨어는 아직 미흡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韓 제조업 기반 피지컬 AI ‘1강’ 도전장

한국은 반도체와 배터리, 정밀 제조 등 세계적 수준의 하드웨어 역량이 최대 강점이다. 지난해 모건스탠리가 선정한 ‘휴머노이드 관련 100대 상장기업’에 한국 기업 9곳이 뽑혔다. 메모리 반도체 부문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파운드리 반도체에 삼성전자가 선정됐다. 배터리는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이, 통합·완성품은 현대차, LG전자, 네이버, 레인보우로보틱스, 삼성전자가 이름을 올렸다.

특히 현대차의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는 최근 2026 북중미 월드컵에서 경기 공인구를 심판에게 전달하고 유명 축구선수들의 세레머니를 재현하는 등 기술력을 뽐냈다.

정부 역시 우리 기업의 경쟁력 지원사격을 위해 ‘3대 메가 프로젝트’ 등 전폭적인 관련 산업 육성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정부가 지난 6월 발표한 3대 메가프로젝트는 반도체·피지컬 AI·AI 데이터센터를 중심으로 총 4755조 원을 투입해 미래 성장축을 마련한다는 구상이다.

특히 피지컬 AI 분야는 앞으로 3년이 ‘세계 1강’에 오를 ‘골든타임’이라는 판단이다. 기존 생성형 AI와 달리 데이터 자체를 새로 만들어야 하는 피지컬 AI 영역은 아직 기회가 열려있다. 이를 위해 정부는 제조·돌봄·국방·물류·항만 등 현장에 AI와 로봇을 접목하는 피지컬 AI 예산을 올해 9000억 원에서 내년 3조 1000억 원으로 늘렸다.

다만 AI와 소프트웨어 등 두뇌기술과 데이터 플랫폼, 일부 핵심 구동부품, 통합 생태계 측면에서 보완이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이와 관련, 서지훈 미래전략연구소 연구위원은 “한국은 제조업 강점을 기반으로 선택과 집중 전략을 추진해야 한다”며 “산업별 제조 공정이 상이해 범용 지능 적용이 어렵다. ‘제조 지능 플랫폼’을 선점해 제조분야 피지컬 AI 글로벌 주도권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생산성 향상·일자리 소멸 불안감 교차

피지컬 AI 성장에 국내 제조기업들의 기대감도 크다. 그러나 기업들의 기대감 만큼 일자리 감소에 대한 우려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최근 한국경영자총협회가 500인 이상 제조기업 100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0곳 중 8곳은 피지컬 AI를 도입했거나 향후 도입 예정인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피지컬 AI를 도입한 기업의 주된 활용 분야(복수응답)는 조립·제작 공정(66.0%)과 물류·운송, 창고 관리(57.4%) 순으로 높았다. 기대되는 효과는 생산성·실적 향상(45.2%), 구인난 등 인력 운용 어려움 해소(26.2%), 산업 재해 예방 및 사고 위험 감소(22.6%) 등의 순이었다.

국회예산정책처 역시 6월 지난 대외경제동향 보고서에서 한국의 AI 도입률은 현재 약 6%에서 10년 후 50%로 상승할 것으로 추정했다. 비교 대상인 주요 7개국(미국·영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일본·한국)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이다.

다만 이러한 전방위적인 AI 도입 과정에서 가뜩이나 매서운 고용 한파가 더 거세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국가데이터처의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AI 활용이 활발한 전문·과학기술서비스업 취업자 수는 이미 전년 동기 대비 2025년 4분기부터 올 2분기까지 3분기 연속 감소했다. 올해 2분기에는 직전 분기에 이어 관련 통계 조사가 시작된 2013년 이후 가장 큰 폭인 8만 8000명 감소를 기록했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AI가 생산성을 높이는 과정에서 사람을 대체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만큼, 기업들이 신입 채용을 줄이면 경험이 없는 청년들의 노동시장 진입이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며 “청년들이 역량을 쌓을 수 있는 일자리 경험 기회를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지면보기링크

포토뉴스

가장 많이 본 뉴스

  • 사회
  • 스포츠
  • 연예
  • 정치
  • 경제
  • 문화·라이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