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 2025-01-15 10:46:17
2018년 부산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시인으로 등단한 이소희 시인이 6년 만에 첫 시집 <오오>를 냈다. 동아대 기초교양대학에 재직 중인 이 시인은 공부를 계속하다 보니 등단도, 첫 시집도 늦었다고 겸연쩍어했다.
이 시인의 등단작이 이번 시집에도 실린 ‘율가(栗家)’다. 이 시는 ‘…단단한 씨방 덜컹덜컹 뜨거워지는데/온 집을 두드려도 출구가 없네/달콤한 나의 집, 차오른 허공이 다시 밥으로 채워질 때,/혹은 연탄가스로 뭉실뭉실 채워질 때/죽음은 알밤처럼 완성된다//죽음은 원래가 씨앗이기 때문이다’로 끝난다. 당시 강은교, 강영환 심사위원은 “주제의식이 선명하고 사물에 대한 접근 방식이 섬세하다”는 심사평을 했다.
그런 성향이 그동안 더욱 갈고 닦아진 모양이다. ‘눈뜬 돌’에서는 소원탑 위에 방금 새로 놓인 돌이 꼭대기에서 ‘까닥, 까닥’ 균형을 잡는 찰나가 시인의 눈에 딱새의 모습으로 비추어진다. ‘잡식성 식물’에서는 ‘길에서 주운 새를 나무 아래 묻어 준 적 있다/이듬해 가지마다 날개가 돋고/너무 많은 새가 열려 나무가 떠오르는 날도 있었다’라고 이야기한다. “어떻게 하면 그런 상상을 할 수 있느냐”고 물으니, 시인은 “가끔 나무가 그렇게 보일 때가 있잖아요. 이렇게 날아오를 것처럼…”이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답한다.
사물에 대한 섬세한 접근 방식은 양배추를 노래한 ‘저녁이 멀다’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이 시는 “양배추 시든 껍질을 벗기니, 속잎에 검은 반점들이 있어서, 칼로 도려내고 한 겹 또 벗겼는데, 또 검은 점들이 있어서, 그걸 반복하다 보니, 둥근 모양은 사라지고 대체 뭐가 양배추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오늘 저녁은 글렀다”는 그런 이야기다. 차성언 문학평론가는 “양배추를 벗기며 본질에 다가가는 과정을 시 쓰기에 비유했다”라고 말했지만, 정작 이 시인은 “실제로 보는 것에서 벗어나 다른 것들을 보게 되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라고 밝혔다.
<오오>에 실린 47편의 시는 ‘토끼가 사라진 정원’으로 마침표를 찍는다. 중정(中庭)에 토끼가 산다는 말에 '토끼단' 동호회가 만들어지고, 토끼 사료를 정원에 두고 관리하자, 누군가는 토끼 귀인지 꼬리인지를 본 것 같다고 말하는데, 며칠이 지나도 토끼를 본 사람이 없어지자, 토끼수색단으로 이름을 바꿔 구멍마다 수색하게 되고, 그것도 시들해지자 결국 ‘고양이단’으로 바뀌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이 시인은 “우리 사회에는 제대로 보지 않고 말하고, 그 말이 번져 나가기 때문에 생기는 일들이 많다.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한 편의 우화 같은 시였다. 이 시인은 올해의 계획을 묻는 질문에 “그림책을 풀어서 이야기하는 에세이를 수십 편 써 둔 게 있어서 책으로 엮어볼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글·사진=박종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