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속으로] 인간의 날개는 어깨에만 있지 않다

∎부산국제연극제 문을 연 ‘폴로세움’

김희돈 기자 happyi@busan.com 2025-05-25 13:42:31

지난 23일 열린 제22회 부산국제연극제 개막식 식전 행사에서 현대 서커스 공연가 서남재가 폴대를 이용한 '폴로세움' 공연을 펼쳐 관객 시선을 사로잡았다. BIPAF 제공 지난 23일 열린 제22회 부산국제연극제 개막식 식전 행사에서 현대 서커스 공연가 서남재가 폴대를 이용한 '폴로세움' 공연을 펼쳐 관객 시선을 사로잡았다. BIPAF 제공

지난 23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 시네마운틴 로비. 부산국제연극제(BIPAF) 개막식이 열리는 하늘연극장 입장을 기다리던 관객들이 한 남자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콧수염과 턱수염을 기르고 머리카락을 뒤쪽으로 질끈 묶은 마른 체형의 남자는 2~3m 높이의 폴대 위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당신들은 이렇게 할 수 있어?”라고 묻는 듯 다소 거만한 표정이었지만 관객들은 되레 웃으며 박수를 보냈다. 처음엔 두세 개 연결한 폴대를 입으로 물고 균형을 잡는 등 서커스라고 하기에는 다소 싱거워 보이는 동작을 이어가던 그. 어느덧 구경꾼들의 목을 45도 이상 들어야 볼 수 있는 곳까지 올라가 탄성을 끌어냈다.

연극제 식전 공연으로 마련한 ‘폴로세움’을 선보인 주인공은 현대 서커스 공연가 서남재. 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했지만, 거리 공연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프랑스 스페인 등 유럽에서 유행하던 현대 서커스에 빠졌다. 전통적인 클래식 서커스가 묘기에 가까운 기예 위주의 쇼라면, 현대 서커스는 다양한 창작 오브제를 이용한 메시지 전달과 관객과의 소통에 큰 비중을 둔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고 한다.

'폴로세움' 공연을 마친 서남재가 기둥이 넘어지지 않도록 쇠줄을 붙잡아 준 도우미 관객 네 명을 불러내 감사 인사를 하고 있다. 독자 제공 '폴로세움' 공연을 마친 서남재가 기둥이 넘어지지 않도록 쇠줄을 붙잡아 준 도우미 관객 네 명을 불러내 감사 인사를 하고 있다. 독자 제공

사실 이날 서남재를 둘러싼 관객들의 고개를 치켜들게 만든 건 서남재 혼자가 아니었다. 그가 기둥을 오르내리며 ‘고공 쇼’를 하는 동안 바닥에서는 도우미 관객 네 명이 기둥에 연결된 쇠줄을 붙잡고 버티고 있었다. 서커스 도중 반강제로 나선 이들이지만, 4.5m 위에 올라선 공연자가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그의 날개가 되어 준 셈이다.

인간의 욕망은 높은 곳을 향한다지만, 발 디딜 곳이 좁은 상층부는 소수만 겨우 머무를 수 있는 게 현실이다. ‘폴로세움’은 그들의 아래에서 묵묵히 날개가 된 이들을 잊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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