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핫플] 백 년 된 목조 가옥 ‘오!초량’이 전하는 ‘작은 틈’

2023년 복합교육문화공간 재탄생
1925년 건립해 올해로 꼭 100년
삼면의 고층 아파트와 ‘이색 공존’
“방문자들 여유 있게 쉬다 갔으면”
기획전 ‘흙의 시간’ 7월 20일까지

김은영 기자 key66@busan.com 2025-05-24 15:00:00

오!초량. 김종진 기자 kjj1761@ 오!초량. 김종진 기자 kjj17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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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때마다 참 정갈하다는 인상과 함께, 특별한 공간이 품은 전시나 행사에 정성이 느껴졌다. 그리고 관람객으로 환대받는 것 같아서 시간이 있다면 아주 오래도록, 아무 생각 없이, 느긋하게 머물고 싶었다. 혹자는, 그곳에 대해 “부산스럽지만, 부산스럽지 않은 고요가 지배하는 곳”, “시간의 흐름을 잠시 멈추는 도시의 작은 틈”이라고 표현했다.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349호인 부산 초량동 목조 가옥 ‘오!초량’ 이야기다. 이곳은 1층 일식 목조주택 1동, 2층 일식 목조주택 1동, 2층 RC조 양옥 등 3동의 건물이 연결된 구성으로 2007년 9월 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일식 목조건물의 경우 일식 평기와 지붕과 목조외관 구성과 창문, 디테일한 다다미 등 일식 주거 양식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오! 초량. 김종진 기자 kjj1761@ 오! 초량. 김종진 기자 kjj1761@

최근 ‘오!초량’이 걸어온 길

초량(草梁)은 ‘풀밭의 길목’이란 뜻으로, ‘오!초량’은 ‘초량'이라는 지명에 감탄사 오!를 붙인 것이다. 그곳이 올해로 지은 지 꼭 백 년이 되었다. “이 가옥이 1925년 처음 지어졌으니까, 올해로 100년 맞습니다. 처음 20년은 일본인이 살았지만, 해방 이후 80년은 한국 사람이 살며 돌보았습니다. 100주년 기념행사는 100년을 다 지내고, 내년 101주년 때 크게 하려고요. 한·일 교류 프로그램을 포함해서요.” 복합교육문화공간 ‘오!초량’을 운영·관리하는 (재)일맥문화재단 최성우 이사장의 말이다.

지금은 2025 봄 기획전 ‘흙의 시간 The Time of Soil’ 전시가 지난 8일부터 열리고 있다. 전시는 비영리 임의단체인 ‘초량1925’에서 주최·주관한다. 2023년 재개관 이후 기획 전시 △오!분더카머(2023년 5월 13일~7월 16일)를 비롯해, △수로다화전(2024년 2월 28일~3월 1일) △매화바보(2024년 3월 13일~4월 28일) △에디터갑의집(2024년 5월 9일~7월 7일) △레터하우스(2024년 10월 2일~11월 17일)를 선보였다. 또 오!초량 여름학교, 2024 오!초량 가을인문학교, 오!초량 찻자리 등을 개최했다.

오!초량. 김종진 기자 kjj1761@ 오!초량. 김종진 기자 kjj17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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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의 시간 The Time of Soil

이번 전시는 흙을 다루는 작가 다섯 명이 함께한다. 이은정 작가는 프랑스 피레네산맥과 태국 치앙다오, 야마시타 키미토시 작가는 일본 히로시마현, 조아라 작가는 제주 조천, 은성민 작가는 경남 양산 통도사, 김혜정 작가는 서울 북한산 자락에서 작업한 작품을 선보인다. 참여 작가들은 각자 작업지에서 흙을 채집하고, 그 흙이 어떻게 변주되는지를 조명한다. 백 년의 세월을 품은 ‘오!초량’이라는 공간에 너무나 어울리는 전시가 아닐 수 없다.

전시장에서 만난 김혜정 작가는 거의 청동에 가까운 느낌의, 청록빛 도자기로 눈길을 끌었다. 일본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성장한 경험은 작가의 정체성과 작업 세계에도 깊은 영향을 미쳤다. 김 작가는 “고려청자 이조백자 등 한국 전통 도자의 흐름이 분명히 있지만, 저는 백자를 만든다 청자도 만든다 이런 유형으로 한국 도예가의 정체성을 찾는 것에서 벗어나고 싶었다”고 밝혔다.

은성민 작가는 “저는 그릇쟁이다 보니 (도자는) 무조건 쓰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도 “그 쓰임이 뭘 꼭 담아야 하는 건 아니고, 보는 것도 쓰임이고, 이번처럼 대규모로 설치하는 것도 쓰임이듯, 우리가 쓰임을 어떻게 단정하는가에 달렸다”고 말했다. 그는 전국에서 채집한 7가지 흙을 조합해서 만든 분청, 흑유, 백자 등의 접시를 선보였다. 전시는 7월 20일까지 총 11주간 이어진다. 월·화요일은 휴무이고, 오전 10시 30분~낮 12시, 오후 2시~3시 30분 운영한다. 유료이다.

오!초량. 김종진 기자 kjj1761@ 오!초량. 김종진 기자 kjj17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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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신 분 여유 있도록 문턱 높여”

유료 전시라는 말끝에 최 이사장은 뜻밖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사실, 여긴 조금 폐쇄적이어서 오해를 많이 받기도 하는데요. 재단 이사들과 직원은 반대했지만, 저는 제가 욕을 좀 듣더라도 이 공간은 약간 들어오기 어렵게 만들고 싶었어요. 다른 뜻이 아니라, 여기에 오신 분들이 조금 더 여유 있게 조용히 쉬고 가실 수 있도록 해 주고 싶었어요. 모두를 위한 민주주의는 아닌 거죠.”

그래서 오전, 오후로 나눠서 타임당 12명만 예약을 받는다. 비록 1시간 반이지만, 충분히 보내고 가라는 의미란다. 이번 전시의 경우, 성인 기준으로 1인 2만 8000원. 비싸다면 비싼 편이지만, 전시 관람 외에 차 바구니와 다식, 엽서 등이 제공된다. “돈을 벌 목적이었다면 입장객 숫자를 대폭 늘렸겠죠. 아무리 계산기를 두드려도 수익이 나오는 구조는 아닙니다. 이대로는 직원 3명 인건비도 나오지 않으니까요.” 공익재단이 왜 수익 사업을 하느냐는 지적에 대한 최 이사장의 항변이기도 하다. 그나마 전시가 없을 때는 한 달에 한 번 입장료 없이 무료로 오픈한다.

최 이사장의 이런 ‘고집’ 덕분에 ‘오!초량’이라는 공간이 고즈넉한 여유를 품게 된 건 사실이다. 그는 청소년 시절을 이 주택에서 살며 보냈다. 그래서 더 애착을 갖는지도 모르겠다.

오!초량. 김종진 기자 kjj1761@ 오!초량. 김종진 기자 kjj17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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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층 아파트에 싸인 것도 참모습

1층과 2층 집안 구석구석을 살폈다. 그러고 보니 일본 전통가옥의 핵심 공간인 ‘도코노마’(床の間)에도 변형이 가해졌다. 방의 한구석을 바닥보다 약간 높게 해서 화병(꽃꽂이)을 놓아두거나 족자(일본화나 붓글씨 등)를 걸어두는데, 최 이사장은 1, 2층 각각 있는 2개의 도코노마에 과감하게 1940년대산 JBL 스피커 2개를 배치했는가 하면 동래한량춤·동래학춤의 명인 문장원 선생의 사진 액자를 걸었다.

“이한구 작가가 찍은 사진인데, 문 선생님이 돌아가시기 전 10일 전 모습입니다. 설정 샷이 아니고 인터뷰를 다 마치고 집에 가면서 혼자서 덩실덩실 춤추는 모습을 멀리서 찍은 거예요. 동래한량춤과 동래학춤은 남자가 추는 춤 중에서도 정점에 있는 것이고, 부산 춤이잖아요. 부산과 조선의 문인적 전통 상징을 여기(일본 전통 공간 도코노마)에다 건 셈이죠.”

오!초량. 김종진 기자 kjj1761@ 오!초량. 김종진 기자 kjj17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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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으로 나갔다. 초고층 아파트가 ‘오!초량’ 삼면을 묘하게 감싸고 있다. 일대 재개발 공사로 건물이 기울고, 문틈이 벌어졌으며, 일부 마루가 내려앉았다. 그래도 팔지 않고 지켜냈다. 그 뒤 수년에 걸친 설계와 보수, 복원을 통해 복합교육문화공간, 전시관으로 재탄생했다. 그게 2023년이고, 5년 만의 재개관이었다.

“어쨌든 이젠, 이웃이잖아요. 고층 아파트가 삼면에 둘러싸고 있는 이 그림은 전 세계 어디서도 찾기 어려운 대비 구도다 싶어요. 정원만 하더라도 예전엔 일본식 느낌이 강했는데 지금은 아니고요. 한국 전통 정원도 아니고, 그저 ‘오!초량’이라고 해야 할까요? ‘청풍’이 콘셉트입니다. 겨울에도, 봄에도, 여름에도 일 년 내내 푸르름이 가득한 상록수를 주로 심었거든요. 서울에선 상상도 못 할 일이죠. 남부지방이라 가능한 겁니다.”

앞으로 최 이사장은 “‘오!초량’이 어느 정도 자리 잡고 나면 일맥이 갖고 있는 광복동 유휴공간까지 해서 부산의 젊은 작가를 위한 프로젝트나 팝업을 열지 생각 중”이라고 밝혔다. ‘오!초량’의 시간은 지금도 흐르고 있으며, 101주년을 위해 나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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