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후보 모두 ‘비트코인 ETF’ 약속했지만 제도는 미비

청년·중산층 자산 증식 공감대
미국도 전격 승인 시장 확대
한국, 시장 참여 법적 근거 없어
큰 변동성·통제력 한계도 부담

황석하 기자 hsh03@busan.com 2025-06-02 07:00:00

가상자산 비트코인이 역대 최고가인 11만 달러를 돌파한 다음 날인 지난달 23일 서울 서초구 빗썸라운지 강남본점 앞으로 시민이 지나고 있다. 연합뉴스 가상자산 비트코인이 역대 최고가인 11만 달러를 돌파한 다음 날인 지난달 23일 서울 서초구 빗썸라운지 강남본점 앞으로 시민이 지나고 있다. 연합뉴스

여야 대선 후보 모두 가상자산 현물 ETF(상장지수펀드) 도입을 주요 경제 공약으로 제시했다. 디지털 자산을 제도권으로 편입해 청년과 중산층의 자산 형성을 지원하겠다는 취지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청년 재테크 지원책으로,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중산층 자산 증식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올해 안 제도화를 약속했다. 정치권의 드문 정책 일치 사례로까지 평가받지만 실현 가능성은 여전히 의문이다.

■MTS로 비트코인 사고판다

비트코인 현물 ETF는 실물 비트코인을 직접 보유하지 않고도 그 가격에 연동된 수익을 추구할 수 있는 상품이다. 자산운용사가 실물 비트코인을 기초자산으로 매입해 ETF를 발행하고, 투자자는 주식처럼 증권사 계좌로 이를 거래한다. 디지털 지갑이나 거래소 가입 없이도 손쉽게 접근할 수 있다.

MTS(모바일 트레이딩 시스템)나 HTS(홈 트레이딩 시스템)를 통해 손쉽게 투자할 수 있는 구조는 투자자 기반 확대로 이어질 수 있다. 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주식 투자자는 지난해 말 기준 1423만 명에 이른다. 가상자산 투자자는 이미 지난해 연말에 1500만 명을 넘었다. 이들의 수요가 ETF로 집중될 가능성이 높다.

개인 투자자 입장에선 편의성과 안전성이 커지고, 자산이 제도권에서 관리되므로 보호 장치도 작동한다. 기관도 복잡한 거래소 가입 없이 코인에 투자할 수 있다. 한 금융업계 관계자는 “실제로 국내 기업들도 가상자산에 관심이 큰 만큼, 해당 ETF는 이런 수요를 충분히 흡수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비트코인의 제도권 편입 분기점

가상자산 현물 ETF의 출시는 비트코인을 자본시장법상 주식·채권과 같은 정식 자산군으로 편입시키는 계기가 된다. 단순 투기를 넘어 제도권 자산으로 인정받는 셈이다. 미국은 2024년 1월 증권거래위원회(SEC)가 그레이스케일을 포함한 11개 자산운용사의 비트코인 현물 ETF 상장을 전격 승인하며 시장 확대에 불을 지폈다.

신영증권이 이달 미국 SEC의 기관투자자 보유 주식 내역 보고서(F13)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4분기 비트코인 현물 ETF를 보유한 기관은 1576곳으로 전 분기보다 37% 증가했다. 전체 발행량 중 약 27%를 기관이 보유하고 있어 비중도 확대되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미국은 2024년 상반기 기준 글로벌 비트코인 ETF 시장의 80% 이상 점유율을 기록해 가상자산 현물 ETF를 세계 최초로 출시한 캐나다를 제쳤다. 홍콩은 2024년 4월 세계 최초로 이더리움 현물 ETF를 허용했고, 영국도 기관투자자 대상 비트코인 및 이더리움 현물 ETF를 승인했다.

자산관리 플랫폼 스태시어웨이의 지난달 8일 기준 자료를 보면 주요 비트코인 현물 ETF 상품 중 운용 규모 1위는 블랙록의 IBIT(586억 8000만 달러)였다. 이어 피델리티의 FBTC(191억 3000만 달러)와 그레이스케일의 GBTC(182억 1000만 달러) 순으로 운용 규모가 컸다.

한화자산운용 금정섭 ETF 본부장은 “가상자산 현물 ETF 시대가 열리면 코인이 주식이나 채권처럼 제도권 투자 자산으로 편입되는 것이기 때문에 신뢰도가 올라간다”며 “국내 금융업계에서도 제도가 정비되면 언제든 가상자산 현물 ETF 운용에 착수할 수 있도록 내부적으로 다양한 시뮬레이션과 아이디어를 검토 중이다”고 말했다.

■프라이팬 없이 스테이크 굽겠다?

하지만 비트코인의 큰 변동성과 실물 자산을 직접 보유하지 않는 구조로 인해 통제력이 떨어진다는 리스크가 있다. 괴리율과 추적 오차, 수수료 부담 같은 ETF 구조 자체의 위험도 함께 따른다.

전문가들은 국내 제도가 아직 이러한 ETF를 수용할 기반이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ETF 가격과 기초자산 가격 간 괴리를 조정하고 유동성을 유지하는 ‘지정참여자’(AP)가 핵심인데, 미국에서는 골드만삭스·JP모건 등이 이를 담당한다. 반면 한국은 증권사 등이 가상자산 시장에 참여할 법적 근거조차 없다.

괴리율은 ETF 가격과 실제 자산 가치의 차이로, 이 폭이 커지면 투자자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가격 변동이 큰 자산일수록 이를 조정할 AP의 역할이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ETF는 안정적인 간접투자 수단으로서 기능을 잃는다.

서울대 경영대학원 이종섭 교수는 “국내 증권사나 운용사조차 비트코인을 직접 살 수 없고, 가격 괴리를 좁혀줄 중개 역할도 수행할 수 없어 프라이팬도 없이 스테이크부터 굽겠다는 것이다”며 “ETF를 만든다 해도, 국내 운용사가 김치 프리미엄이 반영된 높은 가격에 비트코인을 사야 한다면 해외 ETF와 가격 경쟁을 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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