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나의 몸도 사랑… 타고난 수명 우리도 누렸으면”

트랜스젠더 소설가 김비
몸 이야기 <혼란 기쁨> 출간
“인간에 대한 시야 넓혔으면”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2025-02-24 14:01:17

50대 트랜스젠더 소설가 김비가 몸에 대한 이야기 <혼란 기쁨>을 내놨다. 50대 트랜스젠더 소설가 김비가 몸에 대한 이야기 <혼란 기쁨>을 내놨다.

소설가 김비가 최근 몸에 대한 이야기 <혼란 기쁨>(곳간)을 내놨다. 김비는 트랜스젠더다. 그는 서른 살이던 2000년 여자로 다시 태어났다. 노동자이자 드로잉작가 박조건형과 만나 2009년부터 경남 양산에서 살고 있다. 2007년 <플라스틱 여인>으로 여성동아 장편소설상을 받은 뒤 여러 편의 소설과 에세이 책을 냈다. 영화 ‘천하장사 마돈나’의 시나리오 자문을 맡았고, 서울국제연극제에 초청받은 ‘물고기로 죽기’ 연극 대본도 썼다. 다채로운 경력의 소설가 김비를 부산에서 만났다.


-트랜스젠더 작가이기에 몸에 대해 더 쓰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몸에 너무 오래 붙들려 있었다. 나의 10대와 20대 시절은 성별에 가로막혀 잃어버린 느낌이 든다. 폭력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어떻게든 좀 더 충만한 나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서 여성을 선택했다. 그렇게 원하던 사회적으로 여성이 되었지만 여전히 불화하는 몸을 가지고 있는 게 사실이고, 나이가 들며 더 심해졌다. 그러면서 몸이란 무엇인가 생각하게 됐다.”

-폭력의 대상이 되었던 일화를 들려줄 수 있나.

“맨 처음, 여성 호르몬제를 사기 위해 약국에 들어서던 순간이었다. 내가 여성 호르몬제를 달라고 하자, 약사는 누가 투약할 거냐고 물었다. 나를 위한 약이라고 대답했다. 약사는 그렇다면 판매는 불가능하고, 대신 남성 호르몬제는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여성 호르몬제가 필요한 사람에게 남성 호르몬제를 권하는 태도는 나에게는 끔찍한 폭력이었다.”

김비 소설가를 그린 드로잉 작품. 박조건형 제공 김비 소설가를 그린 드로잉 작품. 박조건형 제공

-우리 사회가 남성과 여성으로 구분하는 게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나.

“하루 스물네 시간 중 반드시 여성이거나 남성이어야 하는 시간이 얼마나 되나. 눈앞에 고양이 두 마리가 가릉가릉하며 지나갈 때 어떤 게 수컷이고 암컷인지 가려낼 수 있는가. 병아리도 까 봐야 성별을 알 수 있다. 인간만 남녀 구분이 기본값이라는 인식에는 불순하고 불평등한 의도가 있지 않았을까. 남녀 구분이 과표지(過標識)되었다는 이야기다.”

-‘천수(天壽)를 누린 트랜스젠더가 되는 게 최종 목표’라고 농담처럼 이야기하는 대목이 눈에 들어온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성소수자들의 숫자가 내가 아는 것만 해도 양손으로 꼽아야 한다. 이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기보다는 떠밀렸다고 생각한다. 사회에는 바깥에 내몰린 사람들이 항상 있다. 그들을 안으로 끌어들이는 게 이 사회의 역할이어야 하는데, 계속 밖으로 떠미는 것이 우리 사회의 모습이었다. 성소수자에 대한 역사는 당사자의 잘못이나 오류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왜곡되는 것이 너무 많다. 삶이 끝났다고 생각하지 않기 위해 더 외치고, 기록하고, 손잡고 매달릴 곳을 찾는 게 당연하다.”


김비 소설가를 그린 드로잉 작품. 박조건형 제공 김비 소설가를 그린 드로잉 작품. 박조건형 제공

-문학은 왜 필요하고, 이 책은 누가 읽으면 좋겠는가.

“문학 책을 읽으면 자신이 작은 존재라는 걸 인정하고, 어디로든 열릴 수 있게 된다. 인간은 너무 몸에만 집중하다 보니 인생의 전반부는 아름답고 찬란하게 묘사하지만 후반부는 너무 형편없이 폄훼되는 측면이 크다. 인간은 몸에 붙들린 삶에서 살다가 몸이 시들어가면서 오히려 정신적 사유의 삶으로 만들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몸을 근육질로 만드는 것처럼 사유를 열심히 한 사람만이 삶을 끝낼 때 충만하게 죽을 수 있다. 이 책은 인간에 대한 시야를 넓히고 싶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2009년부터 양산에서 사는데 서울에 비해 불편하지 않은가.

“전혀 그렇지 않다. 성소수자에게 대도시는 거대한 억압체이고 누릴 수 있는 어떤 것도 존재하지는 않았다. 양산은 따뜻하고 조용해서 너무 좋다. 지역 활성화 논의도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걱정하면서 지켜보고 있다. 부산·경남에 뭔가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이 없을까 해서 소설의 배경으로 이 주변에 대한 이야기를 쓰기도 한다. 최근에는 성소수자끼리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이야기를 쓰고 있다. 나한테는 소설이 아이를 낳아 키우는 일이다.”


김비 소설가는 끝없이 홀로 되물어야 하는 외로움과 고독을 알게 됐고, 몸이 아니더라도 가능한 사랑을 알게 됐고, 혐오라는 옷을 입고 있다 해도 여유로울 수 있는 마음도 알게 됐다고 했다. 그래서 다음 생에 다시 태어나도, 또 한 번 이런 몸이어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다. 자기들(성소수자)은 무해하고 평범한 사람이란 이야기가 인터뷰를 마친 뒤 지금까지도 귓가에 맴돈다. 글·사진=박종호 기자


<혼란 기쁨> 표지. <혼란 기쁨>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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