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 2025-06-27 07:00:00
지난 1일 SNS에는 부산 수영구에서 '포씨블 홈(pawssible_home)'이란 이름의 모임이 열린다는 공지가 올라왔다. 유기 동물의 '임보'나 입양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이야기와 정보를 나누자는 내용이었다. '포(paw)'는 동물의 발로, '포씨블 홈'은 사람과 반려동물이 같이 들어가는 집을 꿈꾸며 만든 단어였다.
우선 낯선 단어 '임보'가 뭔지 궁금해졌다. 현재 국내 반려동물 양육 가구 비율은 28.6%, 반려견 수는 500만 마리에 육박하고 있다. 이번 기회에 기본적인 반려동물 관련 용어는 알아둘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려동물과 함께 살기 위해서는 분양, 입양, 임시 보호라는 셋 중 하나의 결정이 필요하다. 가장 흔한 '분양'은 반려동물 판매업체에서 돈을 내고 구입하는 행위다. 반면에 '입양'은 유기동물 보호소나 동물단체 등에서 유기동물을 새로운 가족으로 맞이하는 것을 의미한다. 입양 자격이 맞아야 하고, 교육 등 입양 절차를 따라야 한다. 흔히 줄여서 '임보'로 표현하는 '임시 보호'는 입양자가 나타날 때까지 일시적으로 기본적인 돌봄을 제공하는 것이다. 임보를 하다 입양으로 넘어가는 경우도 적지 않아 보인다.
임보는 사람과 동물 간 궁합을 맞춰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동물에게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시간을 주고, 임시보호자는 동물의 성격이나 건강 상태를 파악해 신중하게 입양 결정을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사지 않고, 함께 살아가기 위한 작은 첫걸음'이란 문구가 마음을 움직여 기자도 이날 행사에 참여했다.
■유기된 아이가 운명처럼 다가와
행사를 기획한 최윤형 씨부터 이야기를 시작했다. 최 씨는 고향인 부산을 떠나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면서 죽을 만큼 힘든 시기에 유기견을 처음 만났다고 했다. 둘의 처지가 똑같이 여겨졌고, 데려다 키우면서 자신이 살아나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최 씨는 2014년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20마리가량 임보를 하면서 입양도 보내고 자신도 살고 있단다. 그는 “입양이 거창하게 느껴진다면 임보라도 해보는 쪽으로 문화가 확산하길 희망하며 이날 자리를 마련했다”라고 밝혔다.
송민재 씨는 혼자 지내는 엄마한테 친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유기견 쿠키와 레아를 입양했다. 그런데 송 씨가 “중성화 수술 예약을 해 놓고 출장 간 사이에 둘이 일을 치러 똘이가 태어났다”라고 말해 웃음이 터졌다. 현재 송 씨의 어머니가 이들의 주 양육자다. 번갈아 반려견 산책을 시키다 보면 어머니가 하루 평균 1만 2000보를 걷게 된다고 했다. 반려견들은 어머니의 건강을 지키고, 주변에 친구도 만들어 준 너무나 소중한 존재라고 했다. 송 씨는 “지방 출장이 잦아 예전에는 혼자 있는 엄마가 걱정이 되었지만, 이제는 든든하고 행복하다. 우리 가족은 반려동물을 통해 치유를 받고 있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곽우림 씨는 강아지를 길러보고 싶었지만, 펫샵에서 사기가 싫어서 2년 정도나 기다렸다고 했다. 2019년 여름 지인의 SNS에 유기견 ‘춘식이’가 뜨는 순간 ‘우리 집 아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바로 연락했고, 일주일 만에 데려왔다. 박 씨는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들이 공부와의 전쟁을 치르며 사이가 조금 벌어졌는데 춘식이가 오면서 집안 분위기가 달라졌다. 사실은 지금 제가 조금 아픈데 춘식이한테 정말 많이 위로받고 있다”라고 말했다.
김유진 씨도 임보로 시작했다가 입양한 경우였다. ‘수술 후에 퇴원을 못하고 있는데 방 한 켠 내줄 수 있는 사람을 구한다’라는 한 동물보호소 공지 글을 본 게 인연의 시작이었다. 김 씨의 반려견 ‘열무’는 늪지대에서 발견됐다. 번식견으로 일 년에도 몇 번씩 강제 임신과 출산을 반복하다가 학대를 받고 유기당한 것으로 보인다. 김 씨는 “처음에는 내가 돌봐주겠다고 생각하고 데려왔는데, 돌아오면 반갑다고 인사해 주고 또 점점 나아지는 모습이 지금은 오히려 나한테 너무 힘이 된다”라고 말했다.
이상훈·배재원 씨 부부는 버려진 반려견이 인연처럼 다가왔다고 했다. 이 씨 부부는 식당에서 나오다 뼈밖에 남지 않았다고 할 정도로 불쌍한 개가 차도에서 헤매는 모습을 목격했다. 그 개는 사람들이 차에 치일까 싶어서 잡으려고 하면 도망가고 해서 위태롭기 짝이 없었다. 이 씨 역시 계속 쫓다 힘이 들어 바닥에 주저앉았는데, 신기하게도 그 개가 자신의 앞에 와서 앉더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처음으로 유기견을 입양한 뒤 부부는 지금 그전까지는 생각지도 않았던 반려견 유치원을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이들 부부는 지난해 반려견 유치원에서 입양제를 처음으로 열었는데 기대보다 반응이 약해 아쉬웠다고 털어놓았다.
김남희 씨는 경남의 한 동물보호소가 올린 43마리의 안락사 명단을 본 게 임보를 시작하게된 계기가 되었다고 했다. 김 씨는 안락사 3일 전에 보호소로 달려가 임보를 시작했고, 지금까지도 그 개를 입양 보내지 못해 첫째가 되었다. 이날 데리고 나온 ‘옥순이’가 36마리째 임보하는 아이였다(옥순이는 그 뒤 서울로 입양됐다). 그는 “매번 보낼 때마다 항상 마음이 아프다. 그래도 얘가 가야 위험에 처한 다른 애를 또 구조할 수 있으니 보낼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이들은 반려동물이 옆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된다고 했다. 반려동물과 함께 산책하다 보면 다른 반려동물 보호자들과 교류할 기회도 많아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세상에는 별별 사람들이 다 살기에 때로는 상처받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김유진 씨가 겪은 일들이 그랬다. 김 씨의 반려견 ‘열무’는 다리 수술을 받았지만, 아직도 앙상한 한 쪽 다리를 절고 있다. ‘수술 후 재활 산책 중입니다’라는 표식을 붙이고 다니지만, 무조건 보호자 욕을 해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여성 혼자 반려견을 산책시키다 언어폭력에 노출되는 경우도 있다. “강아지를 키우니까 결혼을 안 하지, 애를 안 낳지”부터 시작해 “대한민국이 개들로 개판이 되어 가고 있는데, 모두 안락사시켜야 한다”라고 극언을 퍼붓는 사람들이 지금도 있단다.
■믹스견이 키우기에 훨씬 편해
‘포씨블 홈’에 모인 이들은 서로의 사정에 공감하다 앞으로도 정보를 나누고 교류하기로 했다. 반려동물을 키워보지 않아 문외한인 기자는 이날 이들의 대화를 통해 새로운 사실을 여럿 발견했다. 첫째, 나이가 좀 든 개가 키우기 쉽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1년 미만의 강아지를 선호한다. 그런데 이런 애들은 이갈이하며 가려움증 때문에 이것저것 물고 뜯고 난리를 부리기 일쑤다. 이들은 에너지가 넘치고 호기심이 왕성해 끊임없이 뛰어놀고 싶어 한다. 그러다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힘들다면서 파양하는 경우가 많다. 반려견은 나이가 있을수록 키우기가 쉽다며 5살 이상을 추천했다.
둘째, 품종견보다 믹스견이 낫다. 개 세상은 품종견과 믹스견으로 나뉜다. 품종견은 특정 외형적 특징이나 성격적 특성을 갖도록 인위적으로 개량된 개로 말티즈, 푸들, 골든 리트리버, 시바견이 대표적이다. 계속 같은 종끼리, 심지어 근친 교배까지 하다 보니 유전병이 있는 경우가 많다. 믹스견은 서로 다른 품종의 개들을 교배해 태어난 소위 잡종이나 똥개를 의미한다.
대개 품종견을 선호해 보호소에서도 이들은 쉽게 입양되지만, 믹스견은 거들떠보지 않는다. 하지만 품종견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사람 손길이 닿아야 한다. 유전 질환에 강한 믹스견은 기특하게도 자기가 알아서 잘 살아남는다. 그래서 여러 번 키워본 사람은 믹스견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찾는 이가 드물기에 중형견 이상의 믹스견들은 해외 입양을 많이 간다. 외국에서는 오히려 건강하고, 세상에 한 마리밖에 없어 스페셜한 믹스견을 더 좋아한단다. 한 쪽 눈이 없는 상태에서 외국으로 입양간 개 이야기도 전해 들었다. 한국에서는 장애견이라고 아무도 입양하지 않았지만, 외국에서는 눈 하나 없는 건 장애도 아니라면서 입양해 가서 지금껏 잘 살고 있단다.
부산시는 최근 반려동물 친화 도시로 거듭나기 위한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올해초 조직개편을 통해 반려동물과를 신설한 부산시는 대학 동물병원 건립, 반려동물 특화 거리 조성, 반려동물 동반 결혼식장 조성 등 인프라 확충을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다 좋지만 유기 동물 문제에도 관심을 기울여 귀중한 생명이 제대로 살지도 못하고 세상을 떠나는 일이 줄어들었으면 좋겠다. ‘포씨블 홈’은 8월 말쯤 반려동물 영화제와 함께 입양제를 열기로 했다. 글·사진=박종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