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부터 많은 사람이 일명 '오픈런'을 위해 줄을 서 있다.
한정 세일을 하는 명품관이나 인기 팝업스토어 이야기가 아니다. 지난달 개관한 부산 연제만화도서관에서 매일 벌어지는 진풍경이다. ‘도서관 오픈런’이라는 기현상을 만들어내는 이곳의 매력을 찾아 지난 23일 직접 방문해 봤다.
부산도시철도 3호선 배산역 인근에 있는 연제만화도서관은 전국 최초의 만화 전문 공공도서관이다. 교육용 만화는 물론이고 웹툰 단행본과 마블·DC코믹스까지 만화책 약 3만 권을 보유했다.
도서관 1층은 어린 아이들과 부모가 함께 만화를 보기 좋은 공간이다. 신발을 벗고 들어갈 수 있는 구역인 ‘어린이실: 키득키득’에는 낮은 테이블과 푹신한 매트가 있어 편하게 가부좌를 틀고 앉아 독서에 빠질 수 있다. 어린이실에는 또 VR(가상현실)체험관과 EX존(실감형 만화체험 공간), 디지털 미디어북(반응형 도서 체험 장비) 등 아이들이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체험형 공간이 있다.
1층이 어린이 전용 공간인 것은 아니다. ‘만화 라운지’에는 마블·DC코믹스 만화책이 잔뜩 놓인 책장이 있어 팬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마블과 DC 코믹스 작품은 전자책으로만 대출할 수 있다. 유명 애니메이션 피규어와 함께 책을 볼 수 있는 디오라마 테이블도 이색적이다. 이 밖에도 1층 곳곳엔 유명 작가가 추천하는 만화책을 모아둔 책장과 안락하게 책을 볼 수 있는 소파 등이 놓여 있어 만화 감상에 제격이다.
이날 도서관 1층은 오전부터 자리를 찾기 힘들 정도로 방문객이 많았는데, 2층도 마찬가지였다. ‘만화의 숲’이라는 테마를 차용한 2층에 오자 천장에 매달린 풀숲 장식이 눈길을 끈다. 그 아래엔 포켓몬스터, 원피스, 나루토 등 인기 만화 캐릭터 피규어들이 전시돼 있어 발랄하고 유쾌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2층의 베드 열람석은 ‘오픈런’을 유발하는 명당이다. 누워서 만화를 볼 수 있는 좌석에서 만화 삼매경에 빠진 사람들은 마치 피서를 온 듯 여유로워 보인다.
‘만화의 숲’에 걸맞은 다양한 만화책을 구비한 것도 2층의 특징이다. 한국·일본·서양 만화 등 인기 만화를 열람할 수 있다. 또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인 ‘웨이브’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미디어 감상존, 고전·부산 만화를 대형 화면으로 체험할 수 있는 ‘실감서재’ 등 즐길거리가 마련돼 있다.
△꾸준히 사랑 받는 만화 △요즘 많이 보는 만화 △이 만화가 원작입니다 등 다양한 기준으로 도서를 분류한 점도 인상적이다. 애초 2층에는 빈백 소파도 다수 놓여 있었는데, 워낙 방문객이 많아 부피가 비교적 작은 방석과 등받이 의자만 남겨둔 상태다. 도서관 직원에 따르면 이날은 평소보다 방문객이 적은 편이었다. 개관 직후부터 한동안은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뤄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
도서관 3층은 프로그램실과 웹툰창작실, 사무실로 사용한다. 웹툰창작실에선 강의가 없는 시간에 와콤 태블릿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4층에는 작가 초청 강연을 비롯한 행사를 진행하는 다목적 홀과 도서관 이용객들을 위한 휴게 공간이 있다.
만화도서관에선 태블릿 PC, 안경, 보청기기 등을 대여할 수도 있다. 이처럼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니 방문객 반응이 좋을 수밖에 없다. 요즘처럼 더운 날씨에도 여전히 오픈런이 이어질 정도다. 직원들의 눈에 띄는 ‘찐단골’도 많다. 다만 인기가 많기 때문에 앉아서 책을 볼 수 있는 자리를 찾기 힘든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도서관 1, 2층에 마련된 좌석은 각각 70석인데, 몰려드는 방문객에 비하면 부족한 편이다. 또 건물 내에 식당이 없어 식사를 하려면 야외로 나가야 한다.
밖에서 점심을 먹고 오후에 다시 도서관을 찾았다. 여전히 사람이 많았지만, 오전보다는 비교적 한산했다. 1시 이후로는 앉을 자리를 찾을 수 있을 정도가 됐다. 음료는 도서관에 반입할 수 없으니 입구의 음료 보관대에 놓고 입장하도록 하자.
도서관 기본 매너도 잊지 말아야 한다. 읽은 책은 제자리에 꽂아둬야 한다. 매주 월요일과 공휴일은 휴관이며, 일요일은 다른 날보다 1시간 이른 오후 5시에 문을 닫는다. 한 번에 5권, 대출일 포함 15일까지 대출이 가능하고 반납 기한 경과 시 연체일 만큼 대출이 정지된다. 과도한 애정 행각 등 공공 도서관에 맞지 않는 행위는 당연히 금물이다.
‘정주행 욕심’도 과하면 독이다. 도서관 직원은 “여러 권의 책을 옆에 쌓아두고 보는 분이 가끔 있다. 시리즈를 ‘정주행’ 하고 싶은 마음은 십분 이해하지만, 그 만화를 찾는 다른 사람이 책을 못 볼 수 있으니 배려해주시면 좋겠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