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APEC 앞두고 미중 무역 전쟁 격화 왜?

중, 희토류 기술 수출 통제 강화
한화오션 미국 내 자회사 제재도
미, 관세 100% 추가하며 ‘맞불’
유리한 협상 고지 선점 ‘기싸움’
한국, 양국 과도한 의존 벗어나야

김상훈 논설위원 neato@busan.com 2025-10-18 09:00:00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2019년 6월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G20(주요 20개국) 국가 정상회담에서 양자 회담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다. 두 정상은 이달 말 경북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6년 만에 대면 회담을 가질 것으로 예상된다. 부산일보DB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2019년 6월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G20(주요 20개국) 국가 정상회담에서 양자 회담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다. 두 정상은 이달 말 경북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6년 만에 대면 회담을 가질 것으로 예상된다. 부산일보DB

이달 31일과 11월 1일 경북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미국과 중국의 무역 전쟁이 다시 불붙고 있다. 중국은 미국을 겨냥해 희토류 통제를 대폭 강화했고, 미국은 대(對)중국 100% 추가 관세로 맞불을 놓았다. 중국의 희토류 수출 통제 강화 선언으로 붙은 불은 해운·조선과 대두(콩) 등으로 번지며 양국 간 전선은 점점 확대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6년 만에 가질 것으로 예상되는 대면 회담을 앞두고 ‘강 대 강’ 대치 상황으로 흐르는 것이다. 서로에 대한 양국의 압박은 협상에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한 ‘기싸움’으로 해석되지만, 만일 물밑 조율에 실패해 ‘전면전’으로 비화할 경우 세계 경제에 큰 격랑이 예상된다.


중국은 지난 9일 희토류의 채굴·제련·분리 등 생산 기술까지 당국 허가 없이 수출할 수 없도록 통제를 강화했다. 중국의 희토류 생산지 모습. 부산일보DB 중국은 지난 9일 희토류의 채굴·제련·분리 등 생산 기술까지 당국 허가 없이 수출할 수 없도록 통제를 강화했다. 중국의 희토류 생산지 모습. 부산일보DB

■ 미중 치열해지는 ‘샅바싸움’

미중 무역 전쟁은 올 1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하며 본격화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4월 중국 등을 포함해 각국에 상호관세 조치를 발표하자 중국은 바로 희토류 7종 등 핵심 광물에 대한 수출 통제에 나서며 보복했다. 두 나라는 5월에는 서로 관세를 낮추기로 하며 휴전에 들어갔지만, 미국은 8월 ‘위구르족 강제노동 금지법(UFLPA)’에 따라 중국산 철강·구리·리튬 등에 대한 단속 강화를 발표하는 등 공세를 재개했다. 미국은 이후 중동 정세를 이유로 군용 드론 부품 조달에 관여한 중국 기업들을 제재 대상에 포함시키거나, 반도체 설계 소프트웨어의 중국 수출을 제한했다가 해제하는 등 중국 기업에 대한 공세를 멈추지 않았다.

이달 들어 중국의 대반격이 시작됐다. 수세적 방어에서 벗어나 미국의 약한 고리를 정확하게 파악해 정교한 공세에 나선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희토류 무기화’다. 희토류는 반도체, 전기차, 전투기 등의 부품에 핵심 소재로 쓰이는 전략 광물이다. 세계 희토류 공급망을 장악한 중국은 희토류를 대미 무역 협상에서 요긴한 무기로 사용하고 있다. 중국은 세계 희토류 채굴의 70%와 희토류 가공 능력의 90%를 점유하고 있다.

중국은 지난 9일 희토류의 채굴·제련·분리 등 생산 기술까지 당국 허가 없이 수출할 수 없도록 통제를 강화했다. 미국이 자체 희토류 개발을 시도하자 제조 기술까지 틀어쥔 것이다. 중국이 희토류 채굴·가공 기술 통제에 나서면 미국은 희토류 자체 개발과 생산은 어려워진다. 미국은 첨단 무기와 전기차, 반도체 생산 등 핵심 산업에 필수적인 희토류를 안정적으로 조달할 방안이 거의 없는 상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문제 삼아 지난 10일(현지시간) 기존 관세에 100%를 추가하는 초고율 관세와 핵심 소프트웨어 수출 통제 조치를 발표하며 중국을 압박했다.

희토류뿐만 아니라 대두(콩)도 미중 무역 전쟁의 뇌관으로 떠올랐다. 미국산 대두 최대 수입국이었던 중국은 무역 전쟁이 격화되면서 5월 미국으로부터 주문을 아예 끊었다. 중국은 전 세계 돼지고기 생산·소비의 절반 이상을 담당하는데, 돼지 사료의 핵심이 대두다. 자체 생산량이 턱없이 부족해 80%를 수입에 의존한다. 중국은 대두의 전략적 활용을 치밀하게 준비해 왔다. 대미 수입 의존도를 낮추고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 남미 국가에서 수입량을 늘렸다. 중국 판로가 막히면서 미국의 올해 대두 수출은 23%가량 급감하고, 대두 가격은 폭락했다. 미국 농가들의 피해와 불만도 커지고 있다. 대두는 미국의 최대 농산물 수출 품목이자 가장 돈이 되는 작물이다. 대두의 단위 면적당 순이익은 밀의 5배에 달한다. 게다가 미국의 주요 대두 생산지는 트럼프의 강력한 지지 기반 지역인 중서부의 일리노이, 아이오와, 미네소타, 네브래스카, 인디애나주 등이라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내년 11월 중간선거의 승리를 위해서라도 중국을 압박해야 하는 상황이다.


중국은 지난 14일 한화쉬핑(한화해운), 한화필리조선소, 한화쉬핑홀딩스, 한화오션USA인터내셔널, HS USA홀딩스 등 한화오션의 미국 내 자회사 5곳을 겨냥한 제재를 발표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한화필리조선소에서 한화필리십야드 골리앗크레인이 블록을 인양하는 모습. 연합뉴스 중국은 지난 14일 한화쉬핑(한화해운), 한화필리조선소, 한화쉬핑홀딩스, 한화오션USA인터내셔널, HS USA홀딩스 등 한화오션의 미국 내 자회사 5곳을 겨냥한 제재를 발표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한화필리조선소에서 한화필리십야드 골리앗크레인이 블록을 인양하는 모습. 연합뉴스

■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한국

미중 통상 갈등이 다시 커지면서 한국의 성장 동력인 조선, 반도체, 배터리 분야도 큰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당장 국내 조선업 분야에 불똥이 튀었다. 미중 간 고래 싸움에 한국 기업의 피해가 발생하는 것이다. 중국은 지난 14일 한화쉬핑(한화해운), 한화필리조선소, 한화쉬핑홀딩스, 한화오션USA인터내셔널, HS USA홀딩스 등 한화오션의 미국 내 자회사 5곳을 겨냥한 제재를 발표했다. 미중 무역 전쟁 여파로 한국 기업이 중국의 제재 대상이 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들 기업은 앞으로 중국 조직·개인과의 협력·거래가 전면 금지된다. 중국 정부는 제재 이유로 이들 회사가 미국 정부의 해사·물류·조선업(무역법) 301조 조사 활동을 협조, 지지한 것을 들었다.

이번 조치는 ‘강 대 강’으로 치닫던 미중 해운·조선 갈등의 연장선상에서 나왔다. 앞서 미국은 4월 발표한 무역법 301조 조사 최종 조치를 적용해 14일부터 중국 해운사가 소유 및 운용하는 선박에 대해 t당 50달러(약 7만 2000원), 중국산 선박에 대해 t당 18달러(약 2만 5000원)의 수수료를 부과하고 있다. 외국산 자동차 운반선에 대해서도 t당 46달러(약 6만 6000원)의 입항 수수료를 물리기 시작했다. 이에 맞서 중국도 미국 기업이 소유했거나 건조한 선박에 t당 400위안(약 8만 원)의 입항 수수료 부과에 나섰다.

이어 중국은 이례적으로 개별 기업인 한화오션 미국 자회사들을 직접 겨냥한 제재를 내놓았다. 한국이 미국의 조선 협력 최대 파트너국으로 부상하고, 특히 한화오션이 이를 주도하면서 중국의 경계심을 자극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화오션은 한미 조선업 협력 사업인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프로젝트의 핵심 참여 업체다. 8월 이재명 대통령이 한화 필리조선소를 방문해 미국 정부 발주 선박 명명식에 참석하는 등 한미 조선 협력의 상징이 됐다. 이번 제재가 한미 조선협력이 강화되는 시점에 해운·조선 경쟁국인 한국을 견제하고, 한미 공급망 결속에 균열을 내기 위한 전략적 견제라는 분석이 나온다. 입항 수수료, 관세 등을 둘러싼 미국과의 기싸움 속에서 미국의 동맹국인 한국을 우회적으로 때렸다는 것이다.

특히 이번에 한국 조선업이 미중의 패권 경쟁 속에 ‘양자택일’을 강요받는 상황이 확인된 만큼 정교한 대응 전략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 조선업을 추격하며 조선업을 국가 전략산업으로 키운 중국이 미국의 해군력 재건을 견제하기 시작하면서 지정학적 리스크로 확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조선업은 이제 단순한 산업이 아니라 국제 안보와 외교 전략의 연장선에 있는 산업으로 떠오른 셈이다.

중국의 이번 제재는 한미 경제 협력에 경고 메시지를 보내는 상징적 의미가 크다. 하지만 산업계는 희토류를 고리로 반도체, 배터리, 이차전지 제품 등을 추가로 문제 삼을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반도체, 배터리, 철강, 기계 부품 분야는 현지 투자를 진행하는 등 미국과 관계가 깊으면서 중국과의 거래 규모도 큰 만큼 제재 범위에 들어가면 상당한 타격이 발생할 수 있다.


16일 서울 중구 한국산업기술기획평가원에서 열린 민관 합동 희토류 공급망 대응회의에서 문신학 산업통상부 차관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16일 서울 중구 한국산업기술기획평가원에서 열린 민관 합동 희토류 공급망 대응회의에서 문신학 산업통상부 차관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 미중 협공에서 살아남으려면

이번 미중 무역 전쟁이 단기 충돌에 그칠지, 장기 재격돌로 이어질지는 당분간 지켜봐야 한다. 미중 간 신경전은 APEC 정상회담과 다음 달 1일 종료되는 미중 관세 유예 등을 앞두고 힘겨루기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실제로 양국은 관세 부과나 희토류 수출 통제 등 주요 조치의 적용 시점을 모두 다음 달 1일 이후로 잡아놨다. 미중 무역 갈등이 파국으로 갈 경우 결국 막대한 경제적 손실로 이어지기 때문에 양국이 어떤 식으로든 돌파구를 찾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한 편이다. 만일 양국의 충돌이 현실화하면 단순한 무역 마찰을 넘어 글로벌 공급망과 무역 질서 근간을 뒤흔들 수 있다.

이럴 경우 두 나라에 대한 경제 의존도가 심한 우리나라로서는 실물 경제는 물론 금융·외환시장에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미국과 중국의 협공에서 질식하지 않으려면 양국에 대한 과도한 의존에서 벗어나야 한다. 올해 상반기 한국 수출에서 미국과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각각 36%에 이르고, 수출 품목도 자동차, 반도체 등에 몰려 있다. 한국은 세계 10대 수출국 중 수출 품목과 시장 편중이 가장 심하고, 중국에 대한 공급망 의존도가 높다. 미중 갈등 장기화에 대비하려면 이러한 구조부터 개선해야 할 것이다. 강대국 갈등의 샌드위치가 된 한국의 딜레마는 쉽게 해소되지 않을 것이다. 정부와 기업의 긴밀한 소통과 외교적 노력, 민첩한 대응을 통해 위기를 돌파하고 새로운 기회를 찾아야 한다. 이번 APEC 정상회의를 그 무대로 잘 활용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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