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돈 기자 happyi@busan.com | 2026-01-19 11:02:48
무크지 쨉 10호 발간 두 달 만에 마지막 회의를 연 편집위원들. 왼쪽부터 이기록 시인, 이정임 소설가, 김수원(편집장) 시인, 우은진 평론가, 서유 시인, 정재운 소설가. 김희돈 기자
지난해 11월이었다. 부산 청년 작가들의 시와 소설, 평론 작품을 묶은 <무크지 쨉 vol. 10>(네시오십분)이 발간됐다. 2012년 말 1호가 나온 이후 13년이 걸린 '쨉 10호'이다. 2호(불온)부터 매번 주제를 정해 작품을 게재하는 앤솔로지 형식을 취하고 있다.
10호의 키워드는 ‘퍼펙트 스톰’이다. 여러 악재가 동시다발로 발생해 큰 위협을 초래하는 상황. 느닷없는 비상계엄과 탄핵, 권력 교체, 트럼프의 일방주의와 전쟁, 일상이 된 이상 기후 등 2025년 한 해를 살아낸 이라면 어렵지 않게 공감할 내용이다.
10호에는 시인(10명)과 소설가(6명), 평론가(2명) 등 18명의 작품이 실렸다. 부산 대표 문학단체인 부산작가회의 작가들과 두 명의 제주 작가가 참여했다. 작가들은 위기로 인한 불안과 무기력감을 살피고 삶과 존재에 대한 근원적 의미를 질문했다. 나아가 치유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작품을 선보였다.
표지 제목은 오윤경 시인의 수록작 ‘206호’의 시구 ‘간신히 존재하지 말아요’로 정했다. 퍼펙트 스톰의 한가운데서 하루하루 간신히 버티는 누군가에게 위로와 공감을 전하는 메시지로 읽히는 표현이라고 생각해서다.
무크지 쨉 10호 표지.
‘쨉 10호’를 만든 작가는 이들 말고도 여섯이 더 있다. 주제와 집필자를 정하고, 원고 청탁과 교열, 편집까지 도맡은 이들이다. 책 맨 뒷장에 작은 활자로 여섯 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편집장 김수원, 편집위원 서유 우은진 이기록 이정임 정재운.’ 책 발간 두 달 만에 열린 ‘마지막 편집회의’에 함께하며 후기를 들었다.
“작품을 발표할 수 있는 지면, 플랫폼으로서 의미가 큽니다.” 등단 5년 차 정재운 소설가는 문예지 투고와 반려(거절) 메일 수신이 거듭되는 일상을 되뇌며 ‘쨉’의 의미를 설명했다. 등단 후에도 크게 바뀌지 않았다는 그의 일상엔 지역 신진 작가의 녹록지 않은 현실이 묻어났다. 그는 8호(맨홀의 아우라)에 단편 소설을 게재한 뒤 다음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2017년 등단한 서유 시인은 6호(역습)에 첫 작품을 실었다. 7호(탈진)와 9호(지속)까지 더하면 세 차례. ‘쨉’은 시인에게도 문단에 자신을 알리는 통로였다. 그는 2년의 편집위원을 끝으로 ‘쨉’과 인연을 끝낸다. 더 이상 ‘청년’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쨉’ 발행은 부산작가회의 청년문학위원회에서 도맡는다. 젊은 작가들이 줄어들수록 청년 기준은 고무줄 늘이듯 늘어났다. 30~40대로 두루뭉술하게 통용되던 기준은 50세를 거쳐 4년 전부터 55세로 고정돼 있다.
1호부터 ‘쨉’과 함께 해왔다는 이정임 소설가는 처음 시작할 때의 절실함이 여전한지 자문하며 혁신을 화두로 던졌다. 이 소설가는 “정말 팔리는 책을 만드는지, 읽히는 작품을 싣는지, 나이에 안주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볼 때”라고 말했다.
편집위원들은 이 소설가의 얘기에 수긍하면서도 지속성이 중요하다는 데 뜻을 같이했다. 시대와 역사에 던지는 질문이 멈춰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지속이 있어야 혁신과 확산도 가능하다.”(우은진 평론가) “현재를 기억하는 방법으로서의 문학은 학문의 영역과는 다른 의미가 있다.”(이기록 시인)
2년에 걸쳐 9~10호 편집장을 맡았던 김수원 시인은 “열 번째 ‘쨉’이 탄생한 건 누군가의 소중한 노력과 시간과 품이 들어간 결과”라며 편집위원들에게 감사를 전했다. 위원들은 무보수로 일했다. 김 시인은 덧붙였다. “특정 주제에 맞춤한 작품을 창작하는 건 작가로서 그리 달갑지 않은 일이잖아요. 작품이 실린 작가들이 자부심을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쨉 10호' 마지막 편집회의는 장소를 옮겨가며 늦도록 이어졌다. 열 번째 날린 지역 청년 작가들의 쨉! 쨉! 쨉! 링의 승패가 강력한 한방으로만 결정되는 건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