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영도의 공장엔 엄청난 비밀이…

이현주 박사, 20년간 ‘대한도기’ 추적
산업·예술,문화사 의미 담은 책 출간
미술사 최고 작가 품었던 특별 공간
숨겨진 문화자산 재조명 시급해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 2026-05-18 13:36:57

김은호 작가가 그린 대한도기 접시. 이현주 제공 김은호 작가가 그린 대한도기 접시. 이현주 제공

변관식 작가가 그린 대한도기 접시. 이현주 제공 변관식 작가가 그린 대한도기 접시. 이현주 제공

이규옥 작가가 그린 대한도기 접시. 이현주 제공 이규옥 작가가 그린 대한도기 접시. 이현주 제공

대한도기 작가는 별칭을 사용하기도 했다. 장미라는 인장이 찍힌 그림 접시. 이현주 제공 대한도기 작가는 별칭을 사용하기도 했다. 장미라는 인장이 찍힌 그림 접시. 이현주 제공

대한도기에 관한 20년의 연구를 총망라한 책 <대한도기:산업과 예술의 조우>를 출간한 이현주 박사. 본인 제공 대한도기에 관한 20년의 연구를 총망라한 책 <대한도기:산업과 예술의 조우>를 출간한 이현주 박사. 본인 제공

<대한도기:산업과 예술의 조우> 책 표지. 이현주 제공 <대한도기:산업과 예술의 조우> 책 표지. 이현주 제공

“벌써 스무해도 더 된 여름, 문화유산 조사를 위해 기장의 사찰을 지나쳤다. 사찰 입구 개 집 앞에 있던 개 밥그릇에 눈길이 갔다. 형태가 단정하면서도 미학적 완성도가 뛰어났고 문양도 좋은 사기 그릇이었다. 문화재 감정관의 촉이 발동했다. 그릇의 바닥을 보니 대한도기의 약칭인 ‘한도’라는 글자가 있었다.”

이현주 문학박사이자 미술사학자, 문화재 감정관과 대한도기의 운명같은 만남이었다. 일제시대부터 1970년대까지 한국에서 제일 큰 도자기 공장이 부산 영도에 있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접하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다. 그리고 얼마 후 동아대 석당박물관에서 한국 산수화의 대가 소정 변관식의 ‘영도교’라는 작품을 본다. 대부분의 그림, 사진은 중앙동이나 자갈치 방면에서 영도를 바라보는 구도인데, 특이하게도 변관식은 반대편 영도에서 다리를 보는 그림을 그렸다는 것이 의아하게 느껴졌다. 의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자료를 찾았고, 변관식이 피난시절 영도 대한도기 공장에서 그림을 그렸다는 사실을 찾아냈다. 무려 20년을 이어갈 대한도기 연구의 출발이었다.

이 박사는 최근 <대한도기:산업과 예술의 조우>라는 책을 출간했다. 지난 20년간 대한도기에 관한 연구 결과를 비롯해 실제 작품 사진들, 대한도기의 엄청난 가치와 앞으로 해야 할 작업에 관한 제안까지 모두 담았다.

일본 가나자와에 본사를 두고 있던 일본경질도기는 1917년 값싼 조선인 노동력과 우수한 교통망, 동아시아 시장 진출의 이점을 고려해 부산 영도에 조선경질도기라는 분공장을 설립한다. 이후 1925년 부산 공장이 일본경질도기의 본사가 된다. 1934년 기준으로 부산공장은 연 매출 350만 엔을 기록할 정도로 생산 규모가 확대되었고, 부산내에서 가장 규모가 큰 기업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1950년 대한도기주식회사(이하 대한도기)로 재출범한 후 한국전쟁시기 부산으로 몰려든 최고 화가들이 대한도기 접시에 그림 그리며 예술적 성취를 이루고 생계를 해결할 수 있었다.

대한도기는 1970년대까지 한국 최대의 도자기 생산기업으로, 고려청자를 현대적으로 재현한 고려진품 시리즈, 조선 말기 백자 양식을 계승한 생활 도자기 등 다양한 제품을 생산했지만, 대한도기의 백미는 한국 근현대 최고 작가들이 직접 그린 핸드페인팅 도자접시이다. 이중섭 변관식 김은호 김학수 황염수 장우성 김세중 서세옥 박노수 장운상 박세원 권영우 문학진 김서봉 이규옥 전혁림 작가가 참여했다.

특히 피난시기 서울대 미대 캠퍼스가 부산에서 임시 강의실을 마련하고 학업을 이어갔고 있었다. 대한도기의 사장이 이 사실을 알고, 대한도기 공장내에 작업 공간과 숙소를 마련해 교수와 학생들이 작업도 하고 임금을 받을 수 있도록 배려했다. 이중섭도 두 달간 대한도기에서 지냈다는 기록이 있으나 아직 이중섭이 그린 도자접시는 발견되지 않아 연구자들을 애타게 하고 있다.

이들이 그린 핸드페인팅 도자접시는 외국 대사를 비롯해 세계 각국의 VIP들이 한국에서 꼭 사야할 상품으로 통할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한국적 정서를 담은 독창적인 색채와 구상과 추상을 넘나드는 조형으로 ‘색채의 마술사’라고 불리는 전혁림 작가. 전 작가는 피난시기가 아니라 1956~1962년까지 7년간 대한도기에서 근무했다. 회사에 별도의 작업실을 제공받으며 도자 연구와 제작 활동을 병행했고 이후 도자회화 작가로서 입지를 확립하는데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그가 보여준 독창적인 도조 작품 세계가 대한도기 재직 시절 만들어진 것이다.

책의 마지막 장 ‘대한도기 사람들: 기억과 증언’은 부산 지역에서 실제 대한도기와 관련된 삶을 살아온 사람들의 기억을 불러낸다. 대한도기에서 일했던 이들의 구술, 대한도기 수집가의 시선, 부산 지역 젊은 문화기획자들과의 대담은 대한도기를 과거의 산업유산으로만 두지 말고, 대한도기가 앞으로 부산의 문화콘텐츠로 어떻게 활용되고 확산될 수 있는지에 적극적으로 고민해야 한다고 외친다.

이 박사는 “전쟁이라는 극한의 현실 속에서 예술가들이 붓을 놓지 않고 그들의 예술혼을 도자기 위에 고스란히 녹여냈다는 것은 놀랍다. 이것이야말로 예술의 본질이자 대한민국 산업과 예술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친 소중한 유산이다. 이 유산을 널리 알리고 가치를 재조명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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