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소비지’에서 ‘생산지’로… 지역 뮤지컬, 생태계를 바꾸다

올해 10~11월 창작뮤지컬 ‘다시, 봄-아지매들의 이야기’
원작은 보존한 채, 부산·경남 지역 배우로 새롭게
‘지역 정서’ 입힌 작품으로 새로운 도전에서 의의

김준현 기자 joon@busan.com 2026-06-22 10:32:49

뮤지컬 ‘다시, 봄-아지매들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배우들이 참여한 지난 4월 워크숍 모습. 영화의전당 제공 뮤지컬 ‘다시, 봄-아지매들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배우들이 참여한 지난 4월 워크숍 모습. 영화의전당 제공
뮤지컬 ‘다시, 봄-아지매들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배우들이 참여한 지난 4월 워크숍 모습. 영화의전당 제공 뮤지컬 ‘다시, 봄-아지매들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배우들이 참여한 지난 4월 워크숍 모습. 영화의전당 제공

대부분의 예술 장르가 그러하듯, 뮤지컬 역시 서울 중심으로 재편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는 단순 공연 횟수나 극장 인프라의 격차를 넘어 뮤지컬 배우들이 얻는 기회의 불균형으로 이어진다. 대중의 관심을 받는 대형 뮤지컬과 라이선스 공연의 주역은 늘 서울에서 활동하는 배우들의 몫이다. 지역 순회 공연조차 지역 배우들은 그저 앙상블 역할로 소모되기 일쑤고, 이마저도 기회가 적은 탓에 많은 이들이 무대를 떠나거나 지역을 떠나는 고민과 마주한다.

이러한 현실을 인식한 영화의전당은 김해문화관광재단, 밀양문화관광재단, 창원문화재단, 세종문화회관과 힘을 합쳐 ‘지역의 자원’으로 지역만의 색채를 담은 콘텐츠를 만들고자 했다. 단순히 좋은 공연을 수입하는 게 아니라 지역의 자원으로 만들어진 작품을 지역 관객에게 선보이자는 것이다.

그 결실이 바로 올해 10월부터 11월까지 경남 창원, 밀양, 김해와 부산 순회 공연에 들어가는 창작 뮤지컬 ‘다시, 봄-아지매들의 이야기’다. 2022년 서울시뮤지컬단이 초연한 작품이나, 이번 순회공연의 알맹이인 배우들은 부산과 경남 출신으로 채워졌다. 이기쁨 연출가 등 초연 당시 창작진이 합류해 공연의 완성도를 높인다.

작품은 중년의 여고 동창들이 여행길에 버스 사고를 당한 뒤 인생 2막이라는 화두를 생각한다는 내용이다. 보편적 메시지와 더불어 커리어우먼, 전업주부 등 다양한 삶의 궤적을 그려온 7명의 중년 여성이 나와 관객들로부터 큰 공감과 호평을 얻었다. 2024년 서울에서의 세 번째 재공연에서는 총 31회 공연 중 무려 24회가 매진되기도 했다.이 작품의 큰 특징은 중년 여배우들이 주역을 맡은 점이다. 통상 뮤지컬은 20~30대가 주역을 맡는다. 무용과 노래를 부르는 등 신체적 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특히 부산의 경우 20~30대 여성이 관객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이들의 선호에 맞는 스토리가 주로 사랑, 연애, 청춘에 대한 소재여서 중년 배우들의 설 자리가 마땅치 않은 현실이다.

이번 오디션은 공고 단계부터 지원 자격을 37세 이상으로 명시해 연령대 제한을 확실히 했다. 아울러 부산·경남 지역 거주자 혹은 출신자로 지원 자격을 한정하고 경력 단절 여부와는 무관함을 강조했다. 지역 배우들이 주축이 되는 이례적인 시도에 관심도 뜨거웠다. 남자 배역 1명을 포함해 총 8명의 배우를 뽑는 경쟁률은 3대 1을 상회했다. 최종 선발된 배우는 김보현(경아 역), 김진주(은옥 역), 박유진(성애 역), 이지혜(진숙 역), 전자연(승희 역), 정정아(연미 역), 황수연(수현 역), 김인하(백작·가이드·버스기사 역) 등 8명이다.


지난 15일 영화의전당에서 만난 뮤지컬 ‘다시, 봄-아지매들의 이야기’ 배우들. 왼쪽 뒤에서부터 시계 방향으로 정정아·전자연·김진주·김보현·황수연·이지혜 배우. 김준현 기자 joon@ 지난 15일 영화의전당에서 만난 뮤지컬 ‘다시, 봄-아지매들의 이야기’ 배우들. 왼쪽 뒤에서부터 시계 방향으로 정정아·전자연·김진주·김보현·황수연·이지혜 배우. 김준현 기자 joon@

지난 17일 영화의전당에서 만난 박유진 배우(성애 역). 김준현 기자 joon@ 지난 17일 영화의전당에서 만난 박유진 배우(성애 역). 김준현 기자 joon@

취재진과 만난 배우들은 육아와 생계 등 다양한 사정으로 뮤지컬계를 떠나 있었던 이들이었다. 11년 만의 복귀라는 배우도 있었으나, 그들의 눈빛에는 불안 대신 기대와 설렘이 가득했다. 무대에 대한 갈증은 모두가 하나였다.

정정아 배우는 “20대 때 뮤지컬 배우를 하다가 생계 때문에 그만뒀다. 그러나 무대 갈증으로 단역 등 다양한 배역에 시도했으나, 나이 등 여러 조건으로 쉽지는 않았다”며 “이번에는 중년 여성과 경력 단절도 환영한다고 해서 냉큼 지원했다”고 말했다.

공연에 대한 자신감도 과감하게 드러냈다. 김보현 배우는 “살아가다 보면 ‘내가 잘 살고 있나’라는 의문점이 들 때가 있다”며 “공연을 보고 나면, 내가 살고 있는 삶도 틀리지 않았다는 위로를 받을 것이라 자신한다”고 말했다.

첫 공연은 오는 10월 17일 창원 3·15아트홀에서 열린다. 이어 밀양아리랑아트센터(10월 24일), 김해서부문화센터(10월 31일) 공연을 이어간다. 부산에는 11월 7일 영화의전당에서 공연이 이뤄진다.

이번 공연을 기점으로 지역 정서와 역사에 뿌리를 둔 창작 뮤지컬을 지속할 수 있는 제작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지역 고유의 서사를 담은 공연은 그 지역만이 만들 수 있고, 이러한 독창성이야말로 다른 뮤지컬 작품과 차별성을 보장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거제 지역 극단 예도의 창작 뮤지컬 ‘거제도’는 이러한 가능성을 증명한 대표적 사례다. 한국전쟁 당시 포로수용소 설치로 인해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지역 주민들의 아픔을 다룬 이 작품은 거제도만이 만들 수 있는 이야기다.

영화의전당 관계자는 “서울의 유명 뮤지컬이 내려오면 아무래도 남의 집에 가는 것처럼 소홀해지지 않겠느냐. 우리 지역에서 만드는 것이기에 우리 사람에게 맞는 이야기를 더욱 세심하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지역의 정체성을 담은 공연이기에 더 많은 관심과 응원, 격려를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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