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클래스 손흥민 등 코리안 빅리거의 활약으로 유럽 축구를 실시간으로 즐기는 시대이다. 선수들은 대개 겨울, 여름에 천문학적인 이적시장이 열린다. 그 시장의 주인공은 선수들이지만, 거대한 빙산 아래엔 선수보다 더 치열한 에이전트들이 뛰고 있다.
카탈리나 김, 한국 이름 김나나(39) 카탈리나앤파트너스 대표는 그 에이전트 업계에 9년째 몸담고 있다.
김 대표는 얼마 전 에이전트가 되는 법 등 생존 노하우와 경험담을 담은 <나는 런던의 에이전트 레이디(브레인스토어)>라는 책을 냈다.
첫 한국인 여성 축구 에이전트
쟁쟁한 빅 클럽 대리 ‘맹활약’
“유소년 선수 발굴 시스템 필요
한국 축구는 아직 걸음마 단계
레알 마드리드 아카데미 설립”
에이전트 하면 영화 <제리 맥과이어>에서 나온 톰 크루즈가 떠오른다. 선수를 대신해 연봉을 협상하고 이적을 대리하는…. 그러나 수십조 원이 움직이는 유럽 축구판에서 이외에도 구단 인수·합병, 스폰서십·중계권·상업적 라이선스·초상권 계약 등 범위가 다양하다.
예를 들어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유벤투스) 같은 '월클 스타'는 이적은 A 사, 스폰서십은 B 사, 초상권은 C 사가 맡는 식으로 분야마다 에이전트를 둔다.
현재 김 대표는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 시티(맨시티), 아스널·토트넘, 스페인 프로축구 레알 마드리드, 이탈리아 프로축구 유벤투스·AC밀란, 프랑스 프로축구 파리 생제르맹 등 유럽 빅클럽을 대리하는 에이전트이다.
9년 전만 해도 그는 한국에서 스페인어와 법학을 전공한 뒤 이탈리아로 건너가 브랜드 마케팅을 하던 컨설턴트였다. 그러다 억만장자인 UAE 셰이크 만수르가 소유한 맨시티 모기업인 시티풋볼그룹 수뇌부의 제안을 받고 유럽 축구계에 입문했다. 당시 만수르는 '주요 국가에 비행기가 착륙할 때 자기 팀 스타디움을 보고 싶다'고 할 정도로 나라마다 축구 구단을 갖고자 했다.
그의 책에도 언급되지만 흔히 '유럽 축구는 유럽 백인 남자들의 스포츠'라고 한다. 이런 맥락에서 에이전트업계도 유럽 백인들과 그들이 가진 유럽 내 인맥·배경·신분의 힘으로 돌아간다. 이런 환경에서 그는 날마다 유리천장을 깨는 심정으로 이겨냈다.
그 싸움 끝에 그는 유럽 축구 첫 한국인 여성 에이전트가 됐다. 사람들은 김나나를 '에이전트 레이디'로 부른다.
그의 활약상에 로첸초 조르제티 AC밀란 최고책임자는 "김나나는 국가 간의 문화적, 경제적 차이를 극복하고 글로벌 비즈니스를 할 수 있게 해주는 에이전트다. 그는 업계 최고의 글로벌 축구 마케팅 전문가 중 한 명이다"고 추켜세웠다.
에이전트 업무의 8할은 협상이다. 이적시장에는 선수를 사려는 구단과 팔려는 구단 간의 가격을 조율하는 것 이상의 그 무엇이 있단다.
김 대표는 "'Burn the Bridge(되돌아 갈 다리를 태운다·영국 군에서 유래한 표현)'를 좌우명으로 삼아, 협상에서 여러 옵션을 저울질하기보다는 '이것 아니면 안 된다'는 자세로 임한다"며 "에이전트끼리 '내 밥상이 아니면 엎어버려야 내 것이 될 수 있는 새 밥상이 차려진다'는 속설이 돌 만큰 자기 협상이 아니면 파투 내는 에이전트도 많다. 이런 방해 공작도 방어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 측면에서 한국프로축구 K리그의 에이전트 시장은 아직 걸음마 단계에 머물러 있다. 심지어 가장 기본인 선수 에이전트 시장조차 제대로 없다. 그 탓에 선수나 가족의 학연·혈연 등 친분을 이용한 브로커들이 에이전트 행세를 하는 실정이다.
김 대표는 "유럽 진출 시스템이 정착된 브라질·포르투갈·일본 등에서는 유럽 인맥·경력을 갖춘 에이전트 시장이 있다. 아울러 유럽 구단들은 이 나라에 있는 유명 유소년 클럽·학교에 정기적으로 '재능검증팀'을 보내 유망 선수를 발굴하고 기량을 높여 유럽에 보낸다"며 "하지만 손흥민은 이런 시스템이 아닌 자생적으로 유럽에 진출한 선수이다. 굉장히 힘들었을 것이다"고 평가했다.
그런 전철을 밟지 않는 '제2의 손흥민'을 배출하려면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
김 대표는 "우리나라에도 축구 재능이 탁월한 유망 유소년을 모아 정기적으로 테스트하고 양성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 대표는 이런 소신과 철학을 한국에서 실현하고자 레알 마드리드의 한국 유소년 아카데미(http://catalina-and-partners.com/ko/)를 설립한다. 오는 3월 1일 사인식을 시작으로 본격 활동에 들어간다.
유럽 축구도 코로나19 탓에 무관중 경기와 경기 취소 등 전대미문의 시즌을 보내고 있다. 김 대표는 "두 차례 세계대전을 겪은 유럽은 '전쟁 속에도 삶은 계속돼야 한다'는 정신으로 일한다. 위기를 위기로 인정하면 정말 위기가 된다"며 "유럽 축구계는 일부 집합금지 명령으로 금지된 영역만 빼곤 비즈니스를 예년처럼 수행한다. 코로나는 그저 하프타임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올여름 이적시장에서 벌어질 '별들의 전쟁'을 벌써 준비하고 있다.
리오넬 메시(FC 바르셀로나), 개러스 베일(토트넘) 등 '축구 셀럽'들의 대이동이 예상되는 만큼 기대가 크단다. 그가 성사시킬 협상들이 벌써 궁금해진다.
전대식 기자 pro@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