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억 못 받아도 냉가슴만… 건설 하도급업계 ‘죽을 지경’

건설사·시행사 미분양·회생절차
부산 업체 하도급 미수금 급증
대다수 지급보증서 발급 안 해
시 담당 주무관 붙잡고 하소연만

안준영 기자 jyoung@busan.com 2025-04-10 18:13:29

하도급업체들이 건설경기 악화로 대금을 못 받는 일이 늘고 있다. 연합뉴스 하도급업체들이 건설경기 악화로 대금을 못 받는 일이 늘고 있다. 연합뉴스

부산 전문건설업계에서 수십 년 잔뼈가 굵은 정 모(65) 대표는 최근 밤잠을 설친다고 했다. 소방설비 공사를 맡았던 한 오피스텔 현장에서 미수금 30억 원이 발생한 탓이다.

정 씨는 “애초에 부동산 PF로 사업을 일으킨 시행사라 미분양을 대거 떠안게 되자 돈이 없다며 ‘배 째라’는 식으로 나온다”며 “준공을 해서 미분양을 해소해야 돈을 줄 것 아니냐며 적반하장이지만, 우리로서는 다른 도리가 없어 돈 한 푼 못 받고 30억짜리 공사를 마쳤다. 이 적자를 메울 길이 묘연하다”고 하소연했다.

지역 경제의 실핏줄과도 같은 부산 전문건설업체들이 생사의 갈림길에 놓였다. 일한 만큼 대금을 줘야 할 종합 건설사나 시행사가 돈이 없다며 잇따라 기업회생절차에 돌입하거나 모르쇠로 일관하니 당장 빚더미에 앉을 형편이다. 큰 건설사와는 달리 고충을 해소할 창구도 마땅치 않아 시청이나 구청 실무자들을 붙잡고 하소연하는 실정이다.

10일 대한기계설비건설협회 부산시회에 따르면 지난해 부산 지역 협력업체들이 종합 건설사 등과 계약한 공사 금액은 전년 대비 2000억 원가량 감소했다. 2023년 전체 계약 금액이 약 1조 원이었으니 20%가량 준 것이다. 올해는 작년보다 상황이 좋지 않다고 아우성이라 앞으로는 계약 금액이 더 큰 폭으로 감소할 가능성이 높다.

계약 규모만큼이나 협력업체들이 받아야 할 미수금이 급증한다는 게 더 큰 문제다. 특히 최근 삼정기업이나 대저건설 등 지역에서 굵직한 중견업체들이 잇따라 기업회생에 들어가면서 오히려 하도급 업체들이 직격탄을 맞는 형국이다.

협회 조사에 따르면 기업회생 돌입한 건설사 현장 중 다수에서 하도급대금지급보증서가 발급되지 않았다. 보증서 발급은 법적으로 의무화된 절차지만, 다음 발주와 업계 평판을 생각해야 하는 ‘을’의 입장에서는 어디에다 하소연조차 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부산기계설비건설협회 강기윤 사무처장은 “발급 의무를 어기면 대금의 최대 2배를 과징금으로 물어야하지만, 서로 얽히고설킨 지방 현장에서는 종이쪼가리에 불과한 제도”라며 “인허가 권한을 가진 시청이나 구청에서 최소 분기별로 보증서 발급 여부를 확인하는 등 관리 감독을 강화하는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영세 업체들은 협회 차원에서 목소리를 모아 정부나 지자체에 애로사항이 전달되길 바란다. 이런 고충 전달 시스템은 종합 건설사 위주로는 잘 구축돼 있지만, 하도급 업체들에게는 요원하기만 하다.

특히 부산 지역 공직사회에는 건축직과 토목직이라는 두 개의 큰 줄기가 깊게 뿌리내려 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두 분야가 워낙 공고한 탓에 다른 업계 목소리는 전달이 잘 안되고, 기계설비나 전기 등 분야는 부산시청 내 담당 과조차 없어 팀장이나 실무를 담당하는 주무관에게 하소연을 해야하는 판국이다.

부산의 한 기계설비업체 박 모(59) 대표는 “부산시는 그렇지 않다고 얘기하지만, 시청 내부에 우리 목소리를 대변해 줄 서기관 한 명 없는 탓에 협력업체들의 목소리는 자꾸만 뒤로 밀린다”며 “종합 건설사들을 찾아가 사정을 애원해도 바뀌는 건 없다. 1군 건설사들은 그래도 최소한의 규정이라도 지키려 하는데, 지역 중견사들은 오히려 모르쇠로 일관하는 경우가 많아 더욱 답답하다”고 전했다.

또 다른 협력업체 김 모(62) 대표는 “정부가 지방 건설경기 부양책을 내놓고 있지만, 대형 업체들이나 득을 보지 정작 지역 경제의 일꾼인 전문건설업체는 아무런 변화를 느끼지 못한다”며 “하도급 업체 입장에서는 실질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고, 산업 특성이나 지역 건설사의 역량 차이를 고려한 맞춤형 정책은 눈에 띄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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