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이강인, 이번 싸움은 다르다 [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8월 14일 PSG와 토트넘 대결 ‘슈퍼컵’
유럽 무대서 펼쳐지는 ‘K-더비’ 기대감
두 팀 첫 우승 도전 뜨거운 맞대결 예고
팀 색깔 선명, 손·이 스타일 완전히 달라
누가, 어느 팀이 이기고 지는 것 넘어
승부 펼치는 모습 또 다른 감응이자 울림
우리 축구, 새 역사 꼭 쓰여지길 기대

정달식 논설위원 dosol@busan.com 2025-07-26 09:00:00

지난해 3월 26일 태국 방콕 라자망갈라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지역 2차 예선 C조 4차전 한국과 태국의 경기. 후반전 골을 넣은 손흥민(오른쪽)이 이강인과 기뻐하고 있다. 부산일보DB 지난해 3월 26일 태국 방콕 라자망갈라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지역 2차 예선 C조 4차전 한국과 태국의 경기. 후반전 골을 넣은 손흥민(오른쪽)이 이강인과 기뻐하고 있다. 부산일보DB

드디어 진짜 승부가 시작된다. 전 세계 축구팬들의 시선이 쏠린 UEFA(유럽축구연맹) 슈퍼컵이 오는 8월 14일 새벽 4시(한국 시간) 이탈리아 작은 도시 우디네의 스타디오 프리울리에서 열린다. 이제 20일도 채 남지 않았다. 단판 승부로 펼쳐지는 이 대결은 특히 한국 팬들에게 각별하다. UEFA 챔피언스리그(UCL) 우승팀 파리 생제르맹(PSG)과 UEFA 유로파리그(UEL) 우승팀 토트넘 홋스퍼가 맞붙는 이번 경기에서 손흥민과 이강인이라는 두 한국 축구의 아이콘이 마주 서기 때문이다. 유럽 무대 한복판에서 펼쳐지는 K-더비다. 이 특별한 맞대결은 이미 한국 축구팬들의 뜨거운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다. 물론 변수도 있다. 손흥민이 이적할 가능성, 혹은 두 선수 중 한 명이라도 주전 명단에서 제외될 가능성이다. 그 불확실성마저 팬들의 심장을 뛰게 만들고 더 기다려지게 한다.


*UEFA 슈퍼컵, 그리고 그 상징

슈퍼컵은 UEFA이 주관하는 클럽 대항전으로 챔피언스리그(UCL) 우승팀과 유로파리그(UEL) 우승팀이 단판 승부로 맞붙는다. 1972년 아약스와 레인저스 간 비공식 경기로 시작돼 이듬해 UEFA 공식 대회로 격상됐고, 매년 유럽 정상의 두 팀이 ‘진짜 유럽 챔피언’을 가리는 무대다. 우승팀은 단순한 트로피가 아닌 유럽 최강 클럽이라는 상징성을 얻는다. 레알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AC 밀란 등 명문 구단들이 이 대회의 역사에 이름을 올렸다.

초기에는 컵위너스컵 우승팀이 참가했으나 1999년 대회 폐지 이후부터는 유로파리그 우승팀이 그 자리를 이어받았다. 2013년까지는 모나코에서 고정 개최됐지만, 이후 각국 주요 도시로 무대를 옮기며 유럽 축구팬들의 기대를 모으고 있다. 시즌 개막을 알리는 전초전이자 클럽의 전력과 전술을 가늠해보는 상징적 경기로 자리매김했다. 상금은 크지 않지만, 팀의 위상과 브랜드 가치를 드러낼 기회라는 점에서 그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지난 5월 22일 유로파리그에서 우승한 손흥민이 트로피를 들고 기뻐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5월 22일 유로파리그에서 우승한 손흥민이 트로피를 들고 기뻐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PSG의 이강인이 지난 5월 24일 프랑스 프로축구 리그1에서 우승한 뒤 메달을 들어 보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PSG의 이강인이 지난 5월 24일 프랑스 프로축구 리그1에서 우승한 뒤 메달을 들어 보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PSG와 토트넘, 팀 전력 분석

PSG와 토트넘 모두 이번 UEFA 슈퍼컵이 첫 출전이자 첫 우승 도전이라는 점에서, 어느 때보다 뜨거운 맞대결이 예고된다. 객관적인 전력에서는 PSG가 한발 앞서 있다. 이번 시즌 챔피언스리그, 쿠프 드 프랑스, FA컵을 모두 휩쓸며 구단 역사상 첫 트레블(3관왕)을 달성했고, UCL 결승에서는 인터 밀란을 5-0으로 대파하며 유럽 정상에 올랐다. 데지레 두에와 뎀벨레를 중심으로 한 빠르고 창의적인 공격진, 안정된 중원과 조직력까지 갖췄다.

하지만 토트넘도 만만치 않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1대 0으로 꺾고 41년 만에 유로파리그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당시 손흥민은 “오늘만은 나를 전설이라 불러라”며 감격을 드러냈다. 손흥민을 중심으로 브레넌 존슨, 제임스 매디슨, 도미닉 솔란케 등이 이끄는 전방 압박과 날카로운 역습은 토트넘만의 색깔을 드러낸다.

PSG가 정제된 예술이라면, 토트넘은 날것의 에너지 속에서 질서를 만들어가는 팀이다. 축구 스타일에서도 두 팀은 선명하게 대비된다. PSG는 속도와 창의성, 토트넘은 절제된 리듬과 직선적인 돌파가 강점이다. 하지만 단판 승부는 오롯이 전력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간절함과 집중력, 그날의 흐름이 판도를 가른다. 결국 이 경기도, 한순간의 집중력과 실수가 운명을 가를 가능성이 높다.


지난 5월 23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 앞에서 열린 토트넘의 유럽축구연맹(UEFA) 유로파리그 우승 기념 퍼레이드에서 손흥민이 손을 들어 올려 팬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5월 23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 앞에서 열린 토트넘의 유럽축구연맹(UEFA) 유로파리그 우승 기념 퍼레이드에서 손흥민이 손을 들어 올려 팬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손흥민과 이강인, 결이 만든 한판 승부

손흥민과 이강인. 한국 축구의 현재이자 미래다. 손흥민은 이미 하나의 장르다. 한국 축구를 그 이전과 이후로 나눌 정도다. 유럽 무대에서 쌓아올린 기록들은 물론이고, 팀을 위해 포지션을 바꾸고 자신을 던지는 플레이가 그를 특별하게 만든다. 말없이 책임지는 토트넘의 주장, 침묵 속에 일을 내는 해결사. 그의 경기는 늘 드라마다.

이강인은 더 이상 유망주가 아니다. PSG의 10번이자 중심을 책임지는 플레이 메이커. 감각적인 왼발, 공간을 읽는 눈, 경기의 리듬을 조율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마요르카의 눈물과 발렌시아의 외로움을 거쳐 파리에서 정교하게 성장 중이다.

두 선수는 대비되는 성장 배경을 지녔다. 손흥민은 아버지 손웅정 씨의 철저한 기본기 훈련 속에서 절제와 희생을 배웠다. 이강인은 어린 시절부터 스페인 무대에서 경쟁하며 창의성과 공격성을 키웠고, 1대 1 돌파와 기싸움에서 밀리지 않는 싸움닭 기질이 자연스럽게 체화됐다. 손흥민이 성실함의 결정체라면, 이강인은 감각의 총아다. 같은 한국인이지만 다른 환경과 문화 속에서 자란 두 선수는 오늘날 전혀 다른 색깔의 축구로 만개했다.

지난해 아시안컵 준결승을 앞두고 두 선수는 잠시 신경전을 벌인 바 있다. 하지만 이번엔 다른 의미의 충돌이다. 슈퍼컵은 손흥민의 돌파와 이강인의 패스가 충돌하는 무대다. 빌드업과 창조, 완결의 미학이 이들의 발끝에서 교차한다. 광고 문구처럼, 진짜 싸움은 이제부터다.


파리 생제르맹의 이강인이 지난 6월 1일(한국 시간) 독일 뮌헨의 알리안츠 아레나에서 열린 2024-2025 UCL 결승에서 우승을 차지한 뒤 동료 선수들과 함께 우승 트로피를 들고 기뻐하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파리 생제르맹의 이강인이 지난 6월 1일(한국 시간) 독일 뮌헨의 알리안츠 아레나에서 열린 2024-2025 UCL 결승에서 우승을 차지한 뒤 동료 선수들과 함께 우승 트로피를 들고 기뻐하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한국 축구 새 역사 보고 싶어

대한민국 축구의 시작은 1882년, 제물포(인천)에서 영국 선원들이 공을 차던 날로 거슬러 올라간다. 1905년에는 첫 공식 축구 경기가, 1921년에는 전국 규모 대회가 열렸으며, 1933년엔 조선축구협회가 창립됐다. 이후 FIFA 가입(1948), 월드컵 본선 진출(1954), K리그 창설(1983), 한일 월드컵 4강(2002)까지, 짧지만 치열했던 축구의 여정을 함께 걸어왔다.

그리고 이제 유럽 클럽 축구의 정점인 슈퍼컵 무대에 손흥민과 이강인이 나란히 선다. 이날 이들이 경기에 뛰는 것만으로도 한국 축구사에 있어 전례 없는 장면이다. 유럽 무대 한복판에서 한국 선수 두 명이 ‘유럽 최강’을 놓고 맞붙는 것은 그 자체로 시대적 상징이 된다. 경기 내용이나 결과를 떠나 손흥민과 이강인의 존재 자체가 한국 축구 팬들과 미래의 꿈나무들에게 오래도록 남을 울림이 될 것이다. 아직 이적이나 부상 등 변수는 남아 있지만, 국내 팬들과 언론은 벌써 ‘K-더비의 정점’이라며 기대를 쏟아내고 있다.

전문가와 도박사들은 PSG의 우세를 점친다. 특히 도박사들은 토트넘의 승리 가능성을 15% 내외로 낮게 평가한다. 그러나 숫자는 중요하지 않다. 승부의 향방과 관계없이, 팬들이 응원하는 진짜 주인공은 ‘우리’이기 때문이다. 이날 밤 우리는 TV 앞에 앉아 “저들이 바로 우리나라 선수야”라고 중얼거릴 것이다. 경기 후 유니폼을 맞바꾸고, 서로 어깨를 두드리는 두 사람의 모습. 그 순간이야말로 한국 축구의 또 다른 역사가 될 것이다. 그 장면을 애타게 기다려 본다.

정달식 부산일보 논설위원. 부산일보DB 정달식 부산일보 논설위원. 부산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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