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진 기자 onlypen@busan.com | 2025-07-26 15:00:00
Q)퇴직을 앞두고 있는 50대입니다. 한때 잘 나갔고 회사에 큰 기여도 했다고 생각하지만 직장에서 퇴물 취급을 받는 것 같아 씁쓸합니다. 가족들은 언제든 회사를 그만둘 수 있고 또다른 인생을 열면 된다고 하는데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걱정만 앞섭니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퇴직이 가까워서인지 뭔지 모를 섭섭함과 외로움만 커집니다. 정성을 쏟아부은 아이는 타 지역에서 공부하니 자주 볼 수 없어 외로움은 더욱 커집니다.
친구들을 만나면서 외로움을 달래보려 하지만 쉽지 않습니다. 관심사도 다르고 각자 직장도 다르고, 무엇보다 정치 이념이 다르니 만날 때마다 언쟁이 오갑니다. 오랜 친구들과도 이러니 새 친구를 만나기도 두렵습니다. 어떻게 하면 중년의 외로움을 극복할 수 있을까요.
A)이 분의 사연은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겪는 문제입니다. 마치 ‘나이가 들면 어떻게 살아갈까요?’라고 묻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유튜브의 단골 주제이기도 합니다. 전문가들은 여러 가지 도움 되는 조언을 해 줍니다. 모든 조언이 맞으면서 동시에 틀립니다. 각자 처한 상황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사회생활을 지탱하는 3개의 축이 있습니다. 건강, 재정, 지지 체계입니다. 지지 체계는 다시 가족과 친구로 나뉩니다. 건강의 좋고 나쁨, 경제적 풍요와 빈곤, 지지 체계의 강함과 약함에 따라 취해야 할 우선순위가 달라집니다. 게다가 퇴직 후의 삶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한 가지 요인이 더 있습니다. 그것은 삶을 대하는 태도와 시각입니다. 삶과 죽음에 대한 철학이라고 말해도 무방합니다. 이러한 요인들이 상호작용을 일으켜 퇴직 후의 삶을 결정 짓습니다.
오랜 세월 근무한 직장에서의 퇴직은 소속감을 상실한다는 점에서 엄청난 불안을 야기합니다. 어머니의 자궁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것에 비견 될 정도로 커다란 사회적 분리불안을 일으킵니다. 젊은 날, 직장에 삶의 에너지를 쏟아부은 정도가 강할수록, 근무연수가 길수록 여러 가지 감정이 복합적으로 일어납니다. 홀가분함, 아쉬움, 섭섭함, 분노, 불안, 우울 등. 퇴직 후의 삶이 만족스럽지 못할수록 지나간 직장 생활에 대한 기억과 감정은 부정적으로 변하기 쉽습니다.
정신의학적으로, 나이가 들면 걱정, 짜증, 불안, 우울, 불면 등의 증상이 흔히 나타납니다. 감정은 몸에서 생성되기 때문에 육체의 노화는 필연적으로 이러한 감정의 변화를 일으킵니다. 감정을 조절하는 신경전달물질의 분비와 기능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또 시각·청각·후각·미각·촉각 등의 5가지 감각이 둔해지면서 자신감을 잃고 의심이 많아집니다. 이민 간 사람들에게서 의심증이 발병하는 이치와 같습니다. 게다가 고집이 세어지고 자기중심적으로 변합니다. 본래 사람의 자아는 나르시시즘(자기애)에서 생겨나기 때문에 누구나 자기중심적입니다. 그런 이유로 프로이트는 자아를 ‘자아 폐하’라고 부릅니다. 자아가 폐하의 위치에 앉아 있다는 것입니다. 나이가 들면 이러한 자기중심적 성향이 더 심해집니다. 어린아이와 같아집니다.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기 힘들 것 같은 회복탄력성의 저하, 죽음에 대한 두려움, 하루 일과가 사라졌을 때의 당혹감 등이 겹쳐 퇴직 후 중년의 삶은 여러 가지 어려움에 봉착합니다.
또 하나, 외로움의 문제에 직면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친구들과 멀어집니다. 삶의 에너지인 리비도를 모두 자신에게 투여하기 때문에 친구에게 나눠줄 에너지가 더 이상 없기 때문입니다. 외로움은 홀로 남겨졌다는 마음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사랑의 대상’만 옆에 있으면 극복 가능합니다. 사랑의 대상은 사람일 수도 있지만 식물이나 동물, 숲이나 바다와 같은 자연, 문학 음악 미술 조각과 같은 예술, 사상일 수도 있습니다. 반면 그리움은 ‘대상의 죽음’을 전제로 합니다. 어떤 대상이 그리운 이유는 그 대상이 이미 죽었기 때문입니다. 그리움 옆엔 언제나 대상의 죽음이 있기 때문에 극복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퇴직 후의 삶은 이전의 삶과 달라야 합니다. 모으는 삶에서 버리는 삶, 더하는 삶이 아니라 덜어내는 삶, 불필요한 것을 하나하나 버리는 무소유의 삶으로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이때 도움 되는 것은 죽음과 덧없음에 대해 사색하고 성찰하는 것입니다. 퇴직 후에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라는 잘 죽는 방법을 공부해야 합니다. 죽음이 아름다워야 삶이 고귀하고, 죽음을 통해 삶이 완성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