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프라이즈' 최운산, 봉오동전투 활약상 소개…독립군 최초승리 어떻게 이끌었나

디지털편성부15 multi@busan.com 2019-07-28 12:35:39


28일 방송된 MBC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는 일분군을 상대로 승리한 봉오동 전투와 독립운동가 최운산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했다.


1920년 10월 독립 투쟁 사상 최대 규모의 승리인 청산리 대첩이 이어졌고, 앞서 산골의 한 마을에서는 봉오동 전투가 펼쳐졌다. 일본은 중국에서 활동하는 조선 독립투사들을 잡는 데 혈안이 돼 있었다. 최명길은 신한촌 건설, 최풍은 군사학교를 세워 사병 양성, 최만익은 막대한 독립 자금 지원, 첩보활동으로 정보 수집한 최복, 외국과의 무기 거래로 독립군 무장시킨 최고려, 무장투쟁에 앞선 최문무, 최빈 등 무수한 이름은 사실 동일인물이었고, 그의 진짜 이름은 최운산이었다.



최운산은 1885년 중국 지린성에서 3남 중 둘째로 태어났다. 성인이 된 후 중국이 토지정리 사업을 시작하자 간도의 황무지를 헐값에 구매했고 조선인들을 위한 신한촌을 세웠다. 그후 생필품 기업을 운영, 간도 제일의 거부로 거듭났다. 그는 재산을 독립운동지원에 썼고 중국군에 들어가 무술과 총술을 익혔다. 또한 자신이 가진 대부분의 땅을 처분해 러시아, 체코군으로부터 신식 무기를 조달했다. 그는 일본의 추격을 피하게 위해 여러가지 이름을 썼다고 알려졌다.


1920년 만주에서 활동하던 독립군 부대가 함경북도에 있는 일본군 순찰 소대를 습격했고, 이에 분노한 일본군이 1개 대대를 최운산의 독립기지가 있는 봉오동으로 보냈다. 봉오동은 최운산이 조직한 자위부대 뿐아니라 대한독립군 등 여러 독립 부대가 합쳐 설립된 통합 부대가 있던 곳이었다. 숫자에서 열세일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이 모여 만든 독립부대가 고도의 훈련을 받은 일본군을 상대하기란 무리였다.


하지만 누구보다도 봉오동 일대를 잘 알고 있던 최운산은 일본군을 봉오동 계곡으로 유인하자고 했다. '죽음의 골짜기'라고 불릴 만큼 산세가 험했기 때문에 적은 인력으로도 일본군을 이길 수 있을 거라 판단한 것. 또 신식 무기를 독립군에게 나눠준 최운산 덕분에 완전 무장한 독립군은 일본군에 격렬히 저항할 수 있었다.

이에 독립군은 역사상 최초의 승리를 거둘 수 있게 됐다. 또 봉오동 전투에서 일본군 전사자는 157명인 반면, 우리 독립군의 피해는 전사자 4명에 그쳤다. 이후로도 독립 운동을 열렬하게 벌인 그는 고문 후유증으로 독립을 40여 일 앞두고 눈을 감고 말았다.


디지털편성부 multi@

지면보기링크

포토뉴스

가장 많이 본 뉴스

  • 사회
  • 스포츠
  • 연예
  • 정치
  • 경제
  • 문화·라이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