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유정 기자 honeybee@busan.com | 2024-12-24 14:32:03
“연민 속에 피어나는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디즈니플러스 시리즈 ‘조명가게’의 각본을 쓴 강풀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이렇게 소개했다. 강 작가는 이 작품의 원작 웹툰을 그린 데 이어 시리즈 각본을 직접 맡아 이야기를 다시 한번 풍성하게 풀어냈다. 2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강 작가는 “가장 힘든 상황에서 나만의 의지가 아닌 옆 사람의 의지가 희망을 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이 작품은 어두운 골목 끝을 밝히는 조명가게에 비밀을 가진 손님들이 찾아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강 작가는 디즈니플러스 최고 흥행 콘텐츠인 ‘무빙’에 이어 다시 한번 자신의 웹툰을 드라마로 풀어냈다. 강 작가는 차기작으로 ‘조명가게’를 꺼낸 이유에 대해 “사람에 대한 좀 더 깊이 있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라고 했다. 그는 “목사였던 아버지가 환자들에게 기도를 드리려 중환자실을 자주 찾았고, 저도 종종 같이 갔었다”며 “조명가게에서 계속 등장하는 대사 ‘환자분이 살고자 하는 의지가 중요하다’는 말도 이때 들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의식도 없는 사람에게 의지가 있을까’란 생각은 이십 대 이후 저를 계속 따라다닌 질문이었다”고 돌아봤다.
‘무빙’에서 작가와 배우로 만났던 김희원과는 이번에 작가와 감독으로 새롭게 호흡을 맞췄다. 강 작가는 “전작을 마치고 ‘조명가게’를 쓸 때쯤 김희원 씨가 연출에 관심 있어 하는 걸 알게 됐다”며 “그래서 내가 먼저 연출 제안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작품은 사람을 중점적으로 다루는 이야기라 연출과 연기가 더 중요했다”면서 “현장 경험도 많고 배우들을 잘 이해하는 분이 작품을 맡아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김희원 감독님은 머릿속에 온통 ‘조명가게’ 생각뿐이더라고요.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를 신뢰하게 됐죠. 그래서 캐스팅 같은 부분도 김 감독님한테 많이 의존했어요.”
강 작가는 갈수록 드라마 극본 작업에 재미를 느낀다고 했다. 여전히 쉽지 않고, 힘든 순간도 있지만 이젠 온전히 자신의 직업으로 받아들여진다고 했다. 그는 “‘무빙’ 각본을 쓸 땐 내가 잠깐 다른 일을 한다고 느꼈다”며 “만화는 내가 언젠가 돌아가야 하는 고향이라고 생각했었다”고 털어놨다. 강 작가는 “여전히 힘들 때마다 만화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만, 지금은 극본을 쓰는 게 너무 재미있다”면서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만화로 돌아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고 했다. “만화를 그릴 땐 결과에 혼자 책임을 지면 돼서 두려움이 없었는데 드라마는 그렇지 않잖아요. 책임감이 더 크게 느껴지더라고요. 그래서 그런지 이번에 더 쉽게 느껴지거나 그렇진 않더라고요.”
시청자 사이에선 강 작가의 여러 작품 세계를 아우르는 이른바 ‘강풀 유니버스’를 기대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강 작가는 “적어도 작품이 대여섯개 정도 나와야 ‘유니버스’라고 할 수 있지 않겠나”라고 웃은 뒤 “좋은 감독, 배우들과 함께 ‘강풀 유니버스’를 오래 쌓아가고 싶은 생각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저는 사람들이 연대하는 이야기를 좋아해요. 이번에도 평범한 사람들이 사랑하는 가족이나 연인을 살리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그리고 싶었어요. 사건보다 사람을 탐구하는 이야기가 많은 분의 기억에 남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