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유정 기자 honeybee@busan.com | 2025-01-13 15:09:54
“저는 마이크를 내려놓겠습니다. 이제 여러분이 대신 노래를 불러주십시오.”
‘가황’ 나훈아가 12일 밤 서울 송파구 올림픽체조경기장 KSPO돔에서 58년 음악 인생을 마무리했다. 지난해 4월부터 시작한 나훈아 은퇴 전국투어 ‘라스트 콘서트-고마웠습니다’의 마지막 서울 공연엔 사흘간 약 7만 명이 몰려 그의 떠나는 모습을 지켜봤다.
나훈아는 끝까지 거침없는 무대를 선보였다. 이날 고별 공연의 문을 자신의 히트곡인 ‘고향역’으로 연 뒤 ‘홍시’ ‘고향으로 가는 배’ ‘18세 순이’ ‘테스형’ ‘기장 갈매기’ 등 23곡을 무려 2시간 30분 동안 불렀다. 농담 섞인 부산 사투리로 시종일관 유쾌한 분위기를 연출한 그는 “꾹꾹 참고 끝까지 울지 않으려 하고 있다”고 했지만, 결국 눈시울을 붉혀 관객의 박수를 받았다.
반세기 동안 함께한 무대를 떠나는 소회도 풀어놨다. 그는 “(나이 들면) 후배 몇몇 불러 노래시키고 쉬면서 공연할 수도 있지만, 죽어도 그건 못 한다”며 “(은퇴는 나의) 마지막 남은 자존심”이라고 했다. 그는 이어 “살면서 결정한 것 중에 마이크를 내려놓는 게 최고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한다”며 “그동안 스타라 구름 위를 걸어 다녀서 애도 많이 먹었는데, 이제는 땅을 걸어 다닐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공연에서 나훈아는 정치권을 향한 작심 발언을 쏟아내 더 주목받았다. 나훈아는 지난 10일 공연에서 자신의 왼팔을 가리키면서 “너는 잘했냐”며 “왼쪽이 오른쪽을 보고 잘못했다고 생난리를 친다”고 말해 논란이 일었다. 그는 이를 의식한 듯 고별 무대에서 “오른쪽이 잘했단 이야기를 한 게 아니다”며 “오른쪽이든 왼쪽이든 다 문제라고 한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1년만 내게 시간을 주면 경상도 출신은 전라도에, 전라도 출신은 경상도에서 국회의원에 나가도록 법으로 정하게 하겠다. 우리 후세에 이런 나라를 물려주면 절대 안 된다. 갈라치기는 안 된다”라고도 했다.
부산 출신인 나훈아는 국내 대중음악 역사에 굵은 획을 그은 인물이다. 1967년 데뷔한 그는 이듬해 ‘내 사랑’ 발표와 함께 정식으로 가수 활동을 시작했다. 히트곡만 해도 ‘무시로’ ‘잡초’ ‘사랑은 눈물의 씨앗’ ‘임 그리워’ ‘물레방아 도는데’ ‘고향역’ ‘홍시’ ‘테스형’ 등 셀 수 없다. 남진과 1970년대 라이벌 구도를 만들어 ‘원조 오빠’ 부대를 몰고 다녔다. 1976년 당대 최고의 배우 김지미와의 결혼, 2008년 테이블 위에 올라가 “바지를 벗어야 믿겠냐”던 기자회견 등은 지금도 회자된다. 58년간 그가 발표한 노래는 1200여 곡이다. 이 중 800여 곡을 직접 작사, 작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