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매 에세이스트’의 직설, 청년들 울고 웃겼다

부산 출신 77세 이옥선 작가
‘즐거운 어른’ 서점가에 돌풍
통쾌한 북토크 젊은층 몰려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2025-01-19 14:06:09

18일 부산 수영구 예스24 수영점에서 <즐거운 어른> 저자 이옥선 작가(왼쪽) 북토크가 열리고 있다. 18일 부산 수영구 예스24 수영점에서 <즐거운 어른> 저자 이옥선 작가(왼쪽) 북토크가 열리고 있다.

‘나는 남편 제사를 지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다소 도발적인 제목을 달고 나간 출판 기사(<부산일보> 2024년 9월 6일 자 17면)에서 이미 메이드 인 부산 ‘할매 에세이스트’의 탄생을 예견했다. 하지만 반응이 이 정도로 폭발적일지는 미처 몰랐다. 18일 부산 수영구 예스24 수영점에서 열린 <즐거운 어른>(이야기장수) 이옥선(77) 작가 북토크는 선착순 100명 모집이 순식간에 마감됐고, 20~40대 청년 독자들로 빈자리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해 8월 말에 나온 이 책은 지금까지 19쇄를 찍으며 벌써 4만 5000부가 넘게 판매됐다. 예스24는 2024 올해의 책, 알라딘은 2024 올해의 신인상(76세에 신인상이라니!)으로 선정했다. 그 밖에도 지난해 많은 곳에서 올해의 작가로 뽑혔다.

<즐거운 어른>의 인기를 체감하게 하는 사례는 점점 늘고 있다. 이 책에서 언급한 클래식 곡이 잇따라 다시 방송을 타고, 써보니 좋더라고 칭찬한 물걸레 청소기 업체에서 협업 제의가 왔으며, 매일 가는 목욕탕에서도 사람들이 알아봐서 민망할 정도란다. 50년 세월을 전업주부로만 산 70대 무명 여성 작가의 글에 사람들은 왜 이렇게 열광하는지 궁금해서 북토크에 독자로서 참여했다.

“내가 1948년 정부 수립부터, 4·19, 5·16, 광주 사태를 지나 대통령이 계엄을 선언하는 것까지 볼 꼴 안 볼 꼴을 다 보고 살았다. 지나고 보니 인생이라는 게 완전히 운빨이더라.” 작가의 첫 마디에 바로 웃음이 터졌다. 출판사 ‘이야기장수’ 이연실 대표는 자신과 세 바퀴 띠동갑인 작가에게 올해 계획부터 물었다. 이 작가는 “뭔가 계획을 세우면 계획대로 안 되는 게 인생이더라. 그래서 흘러가는 대로, 그냥 되는 대로 지내볼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젊은이들에게는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일단 해 봐라. 해 보고 안 되면 말지, 굳이 처음부터 느긋하게 살기 위한 자세를 취할 필요는 없다”라고 조언했다. 별 이야기가 아닌 것 같지만 젊은 세대 가치관의 변화를 따라잡지 않으면 할 수 없는 말이었다.


18일 부산 수영구 예스24 수영점에서 <즐거운 어른> 저자 이옥선 작가가 예스24 2024 올해의 책 상패를 받고 있다. 18일 부산 수영구 예스24 수영점에서 <즐거운 어른> 저자 이옥선 작가가 예스24 2024 올해의 책 상패를 받고 있다.

이 대표는 이 책의 마지막 챕터 ‘심란하고 난감하고 왕짜증 났을 때’가 특히 좋았다고 했다. ‘기후위기나 자연재해, 대형 산불, 큰 교통사고나 심각한 질병에 비하면 심란하거나 난감하거나 왕짜증이 나는 정도는 어찌어찌 해결할 수 있는 좀 불편한 일들에 불과하다’는 이야기였다.

이 책을 읽고서 우리 엄마의 삶을 이해하게 되었다는 반응이 많이 나왔다. 한 여성 독자는 “시어머니와 나이가 같은데 저의 시어머니였으면 좋겠다. 혹시 언니나 누나라도 불러도 괜찮겠느냐”라고 물어 환호가 터졌다. 또 다른 남성 독자는 “이렇게 멋진 할매들이 계신데, 일부 할배들은 도대체 왜 그런 걸까요”라고 질문을 던졌다. 이 작가는 “남자들은 유연하지 못해 자기를 바꾸려는 생각을 잘 하지 않는 것 같다. 귀가 먹어도 보청기도 잘 안 끼려고 하는 식이다. 노력하지 않으면 절대로 유연해지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이 작가는 예스24 올해의 책 선정 기념 스페셜 양장본에 ‘2025년 저는 77세가 되었습니다. 이 책 읽으시는 독자님들도 희망을 가지세요. 70세가 넘어도 무엇이라도 될 수 있을 테니’라는 자필 서명을 남겼다. 그래서 이날 멀리는 강원도에서까지 청년들이 찾아온 모양이다. 무엇이라도 될 수 있음을 직접 보여 주니까. 글·사진=박종호 기자


18일 부산 수영구 예스24 수영점에서 <즐거운 어른> 저자 이옥선 작가 사인회가 열리고 있다. 18일 부산 수영구 예스24 수영점에서 <즐거운 어른> 저자 이옥선 작가 사인회가 열리고 있다.

<즐거운 어른> 표지. <즐거운 어른>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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