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pressjkk@busan.com | 2025-04-03 16:42:28
“하정우는 감독하지 마라.”
지난 2일 개봉한 영화 ‘로비’의 CGV 실관람평에서 두 번째로 많은 공감을 얻는 글입니다. 잘나가는 배우들이 총출동하는 ‘로비’는 배우 하정우가 ‘허삼관’(2015) 이후 10년 만에 내놓은 연출작인데, 혹평이 만만찮은 상황입니다. 어쩌다 이런 비평을 받는지 극장에서 보고 분석해 봤습니다.
‘로비’는 기술 개발과 연구에 매진하던 창욱(하정우)이 4조 원 규모의 국책 사업을 따내기 위해 접대 골프의 세계에 발을 들이며 벌어지는 일을 다룹니다.
창욱은 로비에 능한 라이벌 회사 대표인 광우(박병은) 때문에 매번 어려움을 겪습니다. 수십 억대 대출마저 떠안고 있는 창욱의 유일한 돌파구는 무선 충전 스마트 주차장 사업입니다. 창욱의 회사는 기술력에서 월등히 앞서기 때문에 공정한 공개입찰로 경쟁하길 바랍니다. 그러나 수의계약으로 정부와 짬짜미하려는 광우의 로비가 또 발목을 잡게 생겼습니다.
광우는 사업을 시행하는 국토교통부의 조 장관(강말금)을 진작에 구워삶았습니다. 이대로 손 놓고 있을 수 없는 창욱은 자신도 로비의 세계에 뛰어들기로 결심합니다. 대상은 국토부 실세로 평가받는 최 실장(김의성)입니다.
광우는 조 장관이 좋아하는 젊은 남자 마 배우(최시원)를 섭외했고, 창욱은 최 실장이 ‘덕질’하는 여성 프로골퍼 진 프로(강해림)와 로비에 능한 박 기자(이동휘)를 어렵사리 동원했습니다.
결국 조 장관 로비팀과 최 실장 로비팀이 같은 날 같은 시각 같은 골프장에서 각각 라운딩을 돌게 되지만…. 상황은 창욱과 광우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습니다.
골프장에서 펼쳐지는 이른바 접대 골프는 인간의 추악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하정우는 실제 골프장에서 관찰한 사람들의 가식적인 모습에 흥미를 느껴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밝혔는데요. 고위공직자들에게 납작 엎드려 비위를 맞춰주는 두 로비팀의 모습은 꽤 풍자적입니다.
문제는 힘 조절입니다. 영화가 처음부터 끝까지 너무 힘이 들어갔습니다. 중불로 적당히 익힐 줄도 알아야 하는데, 내내 강불로 요리하니 까맣게 타버렸습니다.
일단 등장인물이 너무 많습니다. 초반부터 중반까지는 정신이 없을 정도입니다. 시시각각 새로운 인물들이 등장하고, 각 인물의 배경과 설정, 사연 따위를 대사로 줄줄이 쏟아 놓습니다.
그런데 등장하는 캐릭터마다 설정이 ‘투 머치’인 느낌입니다. 캐릭터가 많은데 각각의 개성이 너무 강하니 부담스럽고 몰입을 해칩니다. 비중이 크지 않은 캐릭터까지 특이하면서도 전형적인 설정을 부여한 탓에 작위적인 콩트를 연속으로 보는 것만 같습니다.
조연급 캐릭터들도 평면적이고 틀에 박혀 별로 색다를 게 없습니다. 이동휘는 늘 그렇듯 뺀질뺀질한 촉새 역할이고, 최시원은 자아도취에 빠진 느끼한 4차원 캐릭터를 맡았습니다. 경박하고 무례한 캐릭터인 조 장관이 부산 사투리를 구사하는 설정은 지역에 대한 편견을 강화하는 듯합니다. 마초적인 인상의 골프장 대표 역할인 박해수는 ‘수리남’(2022) 속 모습을 그대로 옮겨온 듯한 기시감이 듭니다.
다만 주연급 캐릭터와 배우들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하정우는 늘 보던 대로 자연스러운 연기를 펼쳤습니다. 김의성은 젊은 여성 앞에서 수시로 선을 넘는 ‘개저씨’를 불쾌할 정도로 완벽하게 그려냈습니다. 하정우는 언론 인터뷰에서 최 실장 캐릭터에 대해 “자신이 나이스하고 세련된 매력적인 남성이라고 생각하지만, 반대 입장에서 보기엔 불편하고 함께 하고 싶지 않은 인물”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영화 속 진 프로는 여성혐오적 시각에 맞서야 하는 인물인데, 현실에 순응하는 듯 보이지만 주체성을 버리지 않는 캐릭터입니다. 배우 강해림이 준수한 연기로 존재감을 드러냈습니다.
빌런 캐릭터를 활용한 블랙코미디에도 아쉬움이 남습니다. 역시 투 머치가 문제입니다. 최 실장의 추태가 장시간 계속되는 탓에 다소 불쾌하고 거북한 느낌이 들 수 있습니다. 현실 ‘개저씨’를 비판적 시각으로 그리려는 의도였겠지만, 정도가 과했고 위트도 없습니다.
영화 홍보 포인트는 ‘말맛’ ‘말장난’ 등인데 타율이 영 좋지 않은 것도 문제입니다. 억지스럽고 작위적인 멘트들에 웃음이 전혀 나지 않았습니다. 객석에서 단 한순간도 웃음소리가 나지 않아 민망할 정도였습니다.
전개 역시 대체로 산만합니다. 이야기에 연속성이 없고, 너무 급하게 흘러갑니다. 연출은 배경 음악 의존도가 지나칩니다. 긴장감이나 유쾌한 감정을 정교한 편집이 아니라 음악으로 만들어내려 합니다. 그리고 제발 한국영화에서 대사가 잘 들리지 않는 문제가 해결됐으면 합니다. ‘로비’ 역시 일부 대사가 정확히 들리지 않는 구간이 적지 않았습니다.
좋은 점을 찾아보자면, 전반적인 메시지는 마냥 나쁘지는 않습니다.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인간들의 추악한 모습을 조명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진흙 밭에 굴러 잔뜩 지저분해진 옷을 메타포로 활용하는 등 인간의 밑바닥을 직격하는 블랙코미디의 장르적 재미에 나름 충실했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설득력 없이 갑작스레 매듭짓는 종반부는 다시 한 번 아쉬움을 남깁니다.
제 점수는요~: 30점(100점 만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