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진 기자 jiny@busan.com | 2025-09-14 14:43:55
포스코그룹이 HMM 인수를 검토한다는 소식에 해운업계 반발이 거세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글로벌 선사인 HMM의 건전한 성장을 위해서는 특정 화주 대기업의 소유로 넘어가는 것보다는 해운 전문 기업의 성격을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한국해운협회는 지난 11일 “포스코의 HMM 인수 강력 반대” 성명을 내고, 포스코가 해운업에 진출하는 것은 해운 생태계를 파괴하는 처사라며 반드시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부산항발전협의회와 부산항을사랑하는시민모임도 같은 날 성명을 내 “포스코의 HMM 인수 재고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포스코는 최근 회계법인, 로펌 등과 계약을 맺어 HMM 인수 타당성 검토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주력 사업인 철강과 이차전지 부문의 성장 정체를 해운업 진출로 돌파해보려는 시도로 관련 업계는 분석하고 있다.
해운협회와 해양 시민단체는 이에 대해 포스코가 HMM을 인수할 경우 해운업이 주력 산업의 보조 기업으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철강산업이 어려워지면 정부와 업계가 어렵게 회생시킨 HMM을 먼저 희생시킬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이들 단체는 이런 주장을 펼치는 근거로 국내외 사례를 들고 있다.
포스코가 1990년 설립한 거양해운은 물류비 절감효과가 미미하고, 수익성이 악화되면서 과도한 투자에 대한 부담을 느껴 1995년 한진해운에 매각됐다. 업계에선 포스코가 본업인 철강에 집중하느라 해운 자회사의 전문성을 살리지 못했고, 비주력 사업인 해운업의 선박 투자에 대한 부담이 커지는 데 대한 부담으로 그룹의 투자 우선순위에서 밀려난 것으로 분석한다. 한진그룹 자회사 한진해운도 그룹의 주력인 항공을 지키느라 유동성 위기 해소를 위해 채권단이 요구한 긴급자금 7000억 원에 한참 못미치는 4000억 원 이상은 내놓을 수 없다고 버티면서 법정 관리와 파산으로 이어졌다. 세계 7위 글로벌 선사 한진해운이 그렇게 공중분해됐다. SK그룹의 SK해운도 그룹 포트폴리오를 정비하면서 2018년 사모펀드 운용사에 지분을 매각했고, 대규모 구조조정과 자산 매각이 이뤄졌다.
반면 해운업을 주력으로 하는 업체가 해운회사를 인수해 성공한 사례도 많다. 세계 선두권 선사인 덴마크 머스크는 독일 해운업체 함부르크수드를 2017년 인수해 ‘규모의경제’를 실현하고, 물류 네트워크를 확장해 시장 지배력을 높였다. 세계 3위 선사인 프랑스 CMA CGM은 싱가포르 해운업체 APL을 인수해 아시아와 미주 노선 경쟁력을 높이고, 통합 물류 네트워크 구축으로 비용 절감 효과를 극대화 했다.독일 최대 선사인 하파그로이드는 2017년 중동 컨테이너 선사인 UASC를 인수해 중동 노선망을 강화하면서 글로벌 5위권 선사로 도약했다.
업계와 시민단체는 또 컨테이너가 주력인 HMM을 인수한다고 해서 포스코의 물류비를 절감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철광석과 철강 제품은 대부분 벌크 형태로 운송되기 때문이다. HMM 인수 후 벌크 선대를 확보해 자사 물량 전체를 스스로 운송하게 될 경우에는 기존 포스코 물량을 담당하는 국내 선사들은 퇴출을 피하기 어렵게 된다며 해운 생태계가 파괴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해운업계 한 관계자는 “산업은행이 보유한 30% 이상의 최대 주주 지분을 특정 대기업 한 곳에 몰아주는 것보다는 국민연금이나 부산시, 부울경 상공계, 국내 해운기업들이 골고루 참여해 공유하는 것이 바람직한 해법”이라며 “HMM의 해운 전문성과 글로벌 얼라이언스를 더 발전시킬 수 있는 방안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해운협회는 법적으로도 ‘대량 화주가 해운업에 진출할 경우 해운 전문 기업들이 도태될 것을 우려해 해수부 장관이 정책자문위원회 의견을 들어 해운업 등록 여부를 결정한다(해운법 제24조)’는 규정과, 화주 기업 자회사가 아닌 물류 전문기업을 육성한다는 ‘제3자 물류 촉진 정책’(물류정책기본법 제37조) 등에 비춰봤을 때 대량 화주 기업의 해운업 진출은 산업계 생태계 유지를 위해서도 지양해야 할 일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