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영 기자 key66@busan.com | 2025-11-30 14:56:39
다원예술 그룹 ‘단잠’(DANJAM)이 25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부산영화촬영스튜디오 1층 XR테크랩에서 ‘슈퍼포지션’(SuperPosition) 쇼케이스를 열고 있다. 손몽주 작가가 설명하는 화면을 참석자들이 선 채 지켜보고 있다. 손창안 작가 제공
손몽주 작가. 배경엔 손 작가의 스윙 시리즈 작품이 보인다. 손창안 작가 제공
“20년 넘도록 대형 설치 작업을 했지만, 그것들이 철거되고 나면 전시 당시 찍은 동영상이나 전시 컷 정도로는 제 작업을 전달하기에 부족하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보여준 스케일이나 고무줄이 갖고 있는 탄력, 긴장감, 그리고 그림자 사이를 걷는 몰입감을 기록으로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손몽주 설치미술 작가만의 고민은 아니다. 전시가 끝나면 사라지거나 해체되는 작품을 기록한다는 건 또 다른 차원이다. 오랜 시간 고민을 거듭하던 손 작가가 메타버스 아티스트 이동재, 생성형 AI를 이용한 실감콘텐츠 작업을 하는 김문정 작가를 만나면서 새로운 실험에 적극 나서고 있다. 입체예술과 뉴미디어를 다루는 세 명의 작가가 결성한 다원예술 그룹 ‘단잠’(DANJAM)이 26일 부산 해운대구 부산영화촬영스튜디오 1층 XR테크랩에서 ‘슈퍼포지션’(SuperPosition) 쇼케이스를 개최했다. 전문가 초청 쇼케이스는 하루 전인 25일 오후에 열렸다. 25일은 이들이 함께 작업하기로 마음먹은 지 꼭 1년이 되는 날이기도 했다. ‘공간 경험’을 실험 중인 이 작가의 모두 발언이 있었다.
왼쪽부터 손몽주 작가, 이동재 작가, 김문정 작가. 손창안 작가 제공
“세 명의 작가가 각자의 세계에서 축적해 온 감각을 교차시키며 예술적 공명체 ‘단잠’으로 모였습니다. 서로 다른 기술과 매체를 유기적으로 결합해 가상과 현실, 물질과 비물질을 넘나드는 공감각적 실험을 선보이고자 합니다. 이번 쇼케이스는 각자의 연구가 서로에게 영감이 되어 새로운 진동으로 이어지는, 단잠의 ‘첫걸음’을 공식적으로 알리는 자리입니다.”
김문정 작가. 손창안 작가 제공
생성형 AI를 활용하는 김 작가는 오리지널 판화 이미지를 기반으로, 불가산 프롬프트에서 발생하는 AI 이미지의 오역을 심미적 영상으로 재구성하고 이를 다시 3D 공간으로 치환해 초현실적인 가상 환경을 구축했다. 이번 쇼케이스에서는 이러한 변환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가상공간을 실감콘텐츠 형태로 상영했다.
이 작가는 부산영상위원회의 광대역 3D 스캐너 기술 지원을 통해 탄생한 ‘아보카도 프로젝트: 메타버스 부산’을 선보였다. 이 작가는 도시의 현실 풍경을 정밀하게 스캔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익숙한 부산의 모습을 전혀 새로운 시점과 감각으로 재해석한다. 현실과 가상이 교차하는 독특한 몰입감을 만들어냈다.
손몽주 작가가 설명하는 화면을 참석자들이 선 채 지켜보고 있다. 손창안 작가 제공
손 작가의 작업은 디지털 아카이빙의 중요성을 새삼 확인한 기회였다. 그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ARKO, 아르코) 지원으로 3차원 아카이빙(공간 설계와 미학적 요소를 디지털화해 장소성과 함께 기록한 작업)을 협력제작한다. 실시간 3D 제작 도구이자 게임 엔진으로 알려진 언리얼을 통해 인터랙티브 형식으로 선보였다. 손 작가는 지난해 부산문화재단이 다년, 집중 지원 사업으로 신설한 ‘올해의 포커스온’ 시각예술 분야 지원 대상에 선정돼 1년 차 리서치를 진행했다. 올해는 광역 문화재단(부산문화재단)이 1차 발굴·지원한 우수 작품을 아르코가 후속 지원해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고 전국과 해외 유통을 지원하는 ‘지역-중앙 연계 사업’에도 선정되면서 디지털 아카이빙 ‘몽주버스’ 작업에 가속도를 붙일 수 있게 된 경우다.
왼쪽부터 손몽주 작가, 이동재 작가, 김문정 작가. 손창안 작가 제공
손몽주 작가가 홍티아트센터에서 개최한 '표류로' 전시를 설명하고 있다. 손창안 작가 제공
특히 단잠 팀으로 뭉친 이들이 부산의 대표적인 레지던시 공간인 홍티아트센터 내외부를 3D 스캔한 뒤 여기에 2014~2015년으로 이어지는 시기에 입주 작가로서 선보인 ‘표류로’(漂流路)라는 전시 내용을 결합해 메타버스 환경으로 구축한다. 이날은 쇼케이스였지만, ‘표류로’ 전시에서 사용한 표류목(고사목), 합성고무밴드, 와이어 등이 마치 눈앞에 있는 것처럼 펼쳐져 놀라웠다.
이 작가는 “조금은 거칠지만 메타버스라는 공간이 어느 정도까지 수용할 수 있는지 보여주고 싶어서 마련한 자리”라면서 “나중에는 관객이 마치 실제 공간처럼 거닐며 체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 작가는 “손 작가의 ‘스윙 시리즈’도 바람에 의해서 안쪽 그물이 흔들리거나 그네를 타거나 하는 것들을 경험할 수 있도록 작업 중”이라고 전했다.
한편, 김 작가는 홍익대 판화과와 일본 타마미술대 미술연구과 석사과정을 졸업했고, 손 작가는 부산대 학사·석사·박사과정을 마쳤다. 이 작가는 서울대 조소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미술이론을 전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