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훈 기자 leejnghun@busan.com | 2025-11-30 14:00:21
지난 26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의 트레이더. AFP 연합뉴스
올해 국민연금이 개인투자자보다 더욱 공격적으로 해외주식 투자를 늘려왔다. ‘서학개미’의 해외주식 투자 확대가 원달러환율 급등 원인으로 지목된 상황에서 나온 세부 통계다.
30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1~3분기 ‘일반정부’ 해외주식 투자는 총 245억 1400만 달러(한화 약 36조 355억 원)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127억 8500만 달러)보다 92% 증가했다.
같은 기간 ‘비금융기업 등’의 해외주식 투자는 95억 6100만 달러(약 14조 546억 원)에서 166억 2500만 달러(약 24조 4390억 원)로 74% 늘었다. 국제수지 통계상 일반정부는 국민연금, 비금융기업은 개인투자자로 해석해도 무리가 없다는 게 한은의 설명이다.
투자 금액 규모를 놓고 봐도 국민연금이 서학개미를 압도했다. 국민연금의 해외주식 투자 규모는 지난해 1~3분기 서학개미의 1.3배 수준에서 올해 1~3분기 1.5배로 격차를 더욱 벌렸다. 전체 내국인 해외주식 투자에서 국민연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34%로 개인투자자(23%)보다 10%포인트(P) 이상 높았다.
한은은 국민연금이 서학개미보다 외환시장에서 상대적으로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해석했다. 기획재정부가 한은, 보건복지부, 국민연금 등과 4자 협의체를 가동하고 새로운 프레임워크를 논의하겠다고 밝힌 점도 그 연장선으로 풀이된다. 국민연금의 해외투자 규모와 속도를 비교적 유연하게 조절하고 환율 안정과 수익성 제고를 함께 도모하겠다는 의미다.
다만 최근 두 달간 개인투자자의 해외주식 투자 ‘쏠림’이 유독 뚜렷해진 점도 눈에 띈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개인투자자는 10~11월 2개월간 123억 3700만 달러(약 18조 1355억 원)에 달하는 해외주식을 순매수한 것으로 집계됐다. 10월 68억 1300만 달러(약 10조 150억 원)로 역대 최대를 기록한 데 이어 11월(1~28일)에도 55억 2400만 달러(약 8조 1200억 원)로 매수세를 지속했다.
이 수치를 한은 통계와 단순 합산 시 올해 1~11월 개인투자자의 해외주식 투자 규모는 총 289억 6200만 달러(약 42조 5740억 원)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3배 가까운 규모다. 특히 개인투자자 쏠림이 관측된 시기는 10·15 대책으로 수도권 주요 지역에서 ‘갭투자’(전세 낀 주택 매입)가 막히고, 신용대출이 급증하는 시기와 겹친다.
이는 환율 상승 흐름과 시기적으로도 맞물렸다. 지난 8~9월 1400원 선 아래에서 횡보하던 원달러환율이 추석 연휴 이후부터 상승세가 가팔라졌다. 외환당국의 구두 개입조차 힘을 못 쓰고 이달 24일에는 장중 1477.3원까지 치솟아 지난 4월 9일(1487.6원) 이후 7개월여 만에 최고치를 경신했다.
전문가들은 국민연금과 서학개미 등 달러 수급 주체 동향 외에도 대미 투자 부담 등 거시경제 환경 변화가 환율 상승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NH농협은행 이낙원 FX파생전문위원은 “개인투자자의 해외주식 매수세가 수급상으로 부정할 수 없는 상승 동력”이라며 “다만 그것만으로 환율이 올랐다고 해석하는 것은 과도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달러 강세 국면에서 대미 투자 부담을 안은 엔화와 원화 절하 폭이 컸다”며 “외국인의 국내 주식 순매도도 더해졌다”고 덧붙였다.
하나은행 이석진 외환딜러는 “올해 하반기 지속적인 환율 상승세의 가장 큰 원인은 대미 투자 협상 관련 자금 유출 우려”라며 “기업들의 해외투자 확대에 따른 달러 매도 물량 감소가 환율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