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부자(父子) 인연 못 잇는 운명적 이야기 (리뷰)

2015-09-10 09:01:38

아버지와 아들이 대화를 나눈다. 학문과 예법을 중시하는 아버지가 말문을 연다. "잘하자. 자식이 잘해야 애비가 산다." 하지만 자유분방한 아들의 생각은 달랐다. "언제부터 나를 세자로 생각하고 또 자식으로 생각했소." 서먹한 대화를 주고 받은 아버지는 조선 21대왕 영조이고, 아들은 뒤주에 갇혀 죽은 그의 아들 세자 사도다.

■부자의 연 잇지 못한 '비극적 가족사'

'왕의 남자'로 천만관객을 호령했던 이준익 감독의 '사도'는 왕과 세자로 만나 아버지와 아들의 연을 잇지 못한 비극적인 가족사를 스크린에 녹여낸다.영조는 1762년 기행을 일삼는 둘째 아들 이선(사도세자)을 뒤주에 가둬 8일 만에 굶어 죽게 만든다. 이렇듯 영화는 조선 역사 중 가장 비참한 사건으로 기록된 '임오화변'을 소재로 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가운데 영조(송강호)와의 갈등을 참지 못한 사도세자(유아인)가 칼을 들고 경희궁으로 향하면서 영화는 서막을 올린다. 사도세자의 아내 혜경궁 홍씨(문근영)는 남편의 생모인 영빈(전혜진)에게 이를 고하고, 영빈은 아들과 손자인 세손 이산(이효제), 즉 훗날의 정조(소지섭)를 살리고자 영조에게 위험을 알린다.

이후 영조는 사도의 세자 직위를 해제하고 뒤주에 아들을 가둬 죽게 한다. "이건 나랏일이 아니라 집안일"이라며 대신들의 조언도 외면한다. 이후 혜경궁은 영조의 편애를 받던 화완 옹주(진지희)의 조언에 따라 영조의 계비 정순왕후(서예지)에게 아들 이산을 양자로 보내는데….

■엄한 아버지와 자유분망한 아들의 대립

'역시 이준익'이란 탄성이 나올만큼 그의 빼어난 연출력이 돋보인다. 숱한 방송과 소설 등을 통해 모두가 알고 있는 이 역사적 사건을 그 누구도 제대로 알지 못한 사도의 가족사에 초점을 맞췄다. 그리고 감독은 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음을 맞이했던 8일간의 기록을 현재로 두고 과거 사건을 나열하는 방식으로 사도의 가족사를 들려준다.

"허구는 10% 정도"라는 감독의 말처럼 실화를 토대로 한 드라마의 구성도 흥미롭다. 재위 기간 내내 왕위 정통성 논란과 형인 경종의 독살 의혹에 시달린 영조. 그는 학문과 예법에 있어서 완벽을 추구하며 콤플렉스 극복에 나선다. 그리고 이 엄격한 잣대는 자신을 넘어 아들에게까지 이어진다.

반면 자유분방하고 예술가적 기질을 가진 세자는 달랐다. 뒤늦게 얻은 귀한 아들로 영조는 일찌감치 그를 세자로 책봉해 모두가 인정받는 왕이 되길 바랐다. 하지만 호통과 폭언으로 발현된 영조의 과도한 기대에 그는 지치고 점차 난폭하게 변해간다. 자신의 진심을 몰라주고 다그치기만 하는 아버지를 점점 원망하게 된다. 감독은 엇갈린 운명의 두 사람의 모습을 절묘하게 대비해 나간다. 이를 통해 영조, 사도세자, 정조로 이어지는 56년간, 3대에 걸친 방대한 이야기는 2시간 남짓의 러닝타임으로 효과적으로 요약됐다.

■250년 전 역사와 오늘의 시대상 '절묘한 대비'

이 작품을 통해 처음 호흡을 맞춘 송강호와 유아인. 송강호는 '괴물' '설국열차' '관상' '변호인' 등 출연작마다 흥행과 작품성에서 호평을 받고 있고, 유아인 역시 '완득이' '베테랑' 등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확실하게 쌓아가고 있어 두 사람의 만남은 캐스팅 단계서부터 많은 기대를 모아왔다. 송강호는 콤플렉스로 가득 찬 영조의 보이지 않는 감정까지 전하려고 공을 들였으며, 유아인은 건장한 한 청년이 변해가는 과정이자 소년에서 성인으로 변화하는 과정들을 세밀하게 그려냈다.

여기에 조연 군단의 연기도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다. '깡철이'에서 유아인의 엄마로 등장했던 김해숙은 인원왕후로 변신했고, 점차 변해가는 남편의 곁에서 아들을 지키기 위해 비정한 모습을 보이는 혜경궁 홍씨 역의 문근영의 연기도 흠잡기 어렵다. 아울러 영조의 후궁이자 사도의 생모인 영빈 역의 전혜진과 사도의 장인인 홍봉한의 묵직한 모습을 그려낸 박원상의 열연은 이야기를 한층 탄탄하게 만든다.

아무튼 영화는 약 250년 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오늘날에도 시사하는 대목이 적지 않다. 자식의 재능을 따지지 않고 공부만 강요하며 기대에 부응하기를 바라는 아버지와 이에 반항하는 아들의 모습은 어쩌면 일그러진 요즘의 부자관계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탓에 시공을 초월한 기성과 신세대의 갈등을 담은 사도 가족사는 영화를 보는 내내 가슴 뭉클해진다. '이준익표 영화'를 대표하는 근사한 수작이다. 16일 개봉.

사진=타이거픽쳐스 제공

비에스투데이 김호일 선임기자  tok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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