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뉴스요리] 부울경의 미래 ‘반구천 암각화’

유네스코 세계유산 7월 등재 사실상 확정
동남권 세계적 선사유적 관광벨트화 추진
신공항 통해 글로벌 관광객 대거 유치해야
‘신석기 시대 원조 메가시티’ 복원 나서길

천영철 논설위원 cyc@busan.com 2025-06-07 09:00:00


세계유산 등재가 사실상 확정된 울산 반구천 암각화 가운데 반구대 암각화를 입체화한 실측도. 부산일보DB 세계유산 등재가 사실상 확정된 울산 반구천 암각화 가운데 반구대 암각화를 입체화한 실측도. 부산일보DB

선사 문화의 정수를 담은 울산 울주군 반구천 암각화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될 전망이다. 반구천 암각화는 국보로 지정된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와 '울주 천전리 명문과 암각화' 등 2종의 바위그림 유적을 일컫는다. 1971년과 1970년에 각각 발견된 이 암각화 유적들은 국보로 지정됐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했다. 선사인들이 남긴 인류 최고의 걸작이지만 많은 국보 중의 하나로 취급 당하기 일쑤였던 것이다. 심지어 반구대 암각화는 아직까지 언제 또 물에 잠길지 모르는 서러운 세월을 감내하고 있다. 참으로 기가 막힌 일이다. 너무 뒤늦은 감은 있지만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가 사실상 확정됐다는 소식은 정말 환영할 일이다.

반구천 암각화의 세계유산 등재는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반구천 암각화의 진면목을 제대로 알리고,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전략부터 서둘러 수립해야 한다. 반구천 암각화는 울산에 자리하고 있지만 부산, 경남 등 동남권 전체를 세계적인 관광지로 발돋움시킬 수 있는 저력을 갖고 있다. 암반에 새겨진 바위그림들의 미학적 가치와 그 안에 담긴 웅장한 선사 해양 문화 스토리를 세계에 제대로 알리는 것은 물론 동남권 곳곳에 산재한 선사 유적을 하나로 묶어 글로벌 선사유적 관광벨트로 조성해야 한다. 세계유산에 걸맞은 종합적인 보전 대책과 스토리텔링, 세밀한 관광자원화 작업도 시급하다. 또 어딘가에 존재할 것으로 추정되는 제2의 반구대 암각화를 찾는 작업도 박차를 가해야 한다. 선사인들이 남긴 걸작이 빛을 보지도 못하고 사라지는 것은 인류에게도 큰 손실이기 때문이다.

특히 반구천 암각화 중에서도 반구대 암각화는 동남권이 신석기시대 강력한 해양문화 중심지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당시 동남권이 해양을 매개로 활발하게 교류하던 초광역 생활권역이었다는 점도 알려준다. 반구대 암각화는 동남권 800만 시민들에게 역사적 동질성과 메가시티화의 당위성을 부여하는 귀중한 선물인 셈이다. 반구천 암각화의 세계유산 사실상 등재를 계기로 동남권을 진정한 메가시티로 발돋움 시키는 논의도 다시 이어져야 할 것이다.

울산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 전경. 물에 잠겼다가 다시 드러나는 일이 반복되면서 암각화 문양이 갈수록 희미해졌다는 지적이다.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현재는 정면 관측 장소의 망원경을 이용해 암각화를 볼 수 있다. 부산일보DB 울산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 전경. 물에 잠겼다가 다시 드러나는 일이 반복되면서 암각화 문양이 갈수록 희미해졌다는 지적이다.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현재는 정면 관측 장소의 망원경을 이용해 암각화를 볼 수 있다. 부산일보DB

■ 인류 최고 걸작…너무 뒤늦은 가치 인정

국가유산청에 따르면 세계유산 분야 자문·심사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이코모스)는 한국 정부가 세계유산으로 등재 신청한 반구천의 암각화에 대해 지난달 등재 권고 판단을 내렸다. 이코모스는 유산을 조사한 뒤 등재, 보류, 반려, 등재 불가 등 4가지로 분류해 세계유산센터에 권고한다. 등재는 최고 수준 권고에 해당한다. 등재 권고를 한 유산은 이변이 없는 한 오는 7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제47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세계유산으로 등재된다. 이번 등재 권고로 반구천의 암각화의 세계유산 등재가 사실상 확정된 셈이다.

반구천의 암각화는 세계유산 사실상 등재 이전에도 인류 최고의 유산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과정은 순탄치 못했다. 2010년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오른 이후 벌써 15년이 흘렀다. 오죽하면 ‘비운의 세계유산’이라는 말까지 생겨났을까. 이것은 반구천 암각화의 가치에 대한 정확한 평가가 아직까지 이뤄지지 않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수몰 악순환 우려에 노출된 반구대 암각화의 참담한 현실은 또 어떤가. 늦깎이 등재는 우리 스스로가 이 귀중한 문화유산을 푸대접한 데 따른 당연한 결과였지 않을까. 오는 7월 정식 등재를 통해 반구대 암각화의 위대한 진면목이 세계에 널리 알려지길 기대하는 것도 이런 맥락 때문이다.

울주군 대곡천(옛 이름은 반구천)에 위치한 반구대 암각화는 높이 약 5m, 너비 약 8m인 ‘ㄱ’자 모양으로 꺾인 절벽 암반에 다양한 고래, 고래잡이 모습, 거북 등 296점의 그림이 새겨진 선사 유적이다. 반구대 암각화가 조성된 시기는 3500~7000여 년 전 신석기시대인 것으로 추정된다. 지구에서 가장 오래된 포경 유적으로 평가 받는다. 즉, 인류 포경 문화를 알려주는 최초의 유산인 것이다.

특히 한반도가 접한 북태평양 연안의 독특한 해양 어로 문화를 대표하는 문화유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더욱이 작살 맞은 고래, 어린 새끼를 데리고 있는 어미 고래 등 암각된 다양한 바위그림들의 아름다움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는다. 형상을 단순화하면서도 특징을 세밀하게 포착한 절제된 미학의 세계는 선사 시대 작품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다. 암반을 빼곡하게 메운 바위그림들은 당시 대곡천에서 집단생활을 하며 가축을 기르고 바다로 나가 고래 등을 집단 사냥했던 신석기인들의 강인한 생활상을 세세하게 알려준다. 수천 년에 걸친 자신들의 삶을 문자가 아닌 바위그림으로 보여주는 반구대 암각화의 장엄함은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선사 시대에 온 듯한 감동을 선사한다.

천전리 명문과 암각화는 반구대 암각화에서 700m 정도 떨어진 대곡천 상류에 자리하고 있다. 높이 약 2.7m, 너비 9.8m 바위 면에 각종 도형과 글, 그림 등 620여 점이 새겨져 있다. 신석기 시대부터 신라에 이르기까지 여러 시대에 걸쳐 새겨진 암각화 군락인 셈이다. 신라 법흥왕(재위 514~540) 시기에 왕과 왕비의 행차를 묘사한 글도 남아 있어 역사적 가치가 뛰어나다. 인위적으로 다듬은 듯한 바위면은 아래를 향하여 약 15도 각도로 절묘하게 기울어져 햇볕이 잘 들지 않는다. 이런 조건 때문에 자연적인 풍화 과정을 비교적 잘 피해 현재까지 보전될 수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유적에 접한 하천 바위 곳곳은 천전리공룡발자국화석을 간직한 유적지다. 공룡발자국화석은 대곡천 암각화를 한층 특별한 유적으로 자리매김시킨다.

울산 울주 천전리 명문과 암각화 전경. 바위면이 아래를 향해 15도 정도 기울어져 풍화 현상을 비교적 덜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부산일보DB 울산 울주 천전리 명문과 암각화 전경. 바위면이 아래를 향해 15도 정도 기울어져 풍화 현상을 비교적 덜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부산일보DB

■ ‘제2 반구대 암각화’ 찾아야 한다

반구대 암각화가 자리한 반구대 골짜기의 맑은 물은 대곡천을 따라 태화강에 합류, 동해로 흘러나간다. 강물이 동해와 맞닿는 지점 왼쪽에는 HD현대중공업과 HD현대미포가 자리한 울산 동구 방어진이, 오른쪽에는 남구 장생포가 위치해있다. 장생포는 근대 포경산업의 중심지였다. 장생포 앞바다는 예로부터 밍크고래와 참고래 등 다양한 고래들이 회유하는 장소였다. 특히 이 일대는 귀신고래가 많이 유영하는 지리적 특성에 따라 ‘귀신고래회유해면’이라는 이름의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신석기 시대의 지형은 현재와 달랐다. 울산 내륙에 자리한 대곡천이 현재보다 바다에 훨씬 인접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집단으로 고래를 사냥할 만큼 강력한 해양문화를 가졌던 대곡천 신석기인들이 반구대 암각화에 고래 그림 58점을 새긴 것도 이런 연유일 것이다. 여기서 드는 의문점은 반구대 암각화 유적지가 과연 한곳에 그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정답은 현재 누구도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곡천 암각화의 세계유산 등재에 발맞춰 이제는 한층 정밀한 추가 작업이 이뤄져야 한다. 실제로 1965년 사연댐 준공으로 반구대 암각화가 수몰되기 전에 다른 바위그림을 봤다는 이야기들이 지금도 전해진다. 특히 현재 반구대 암각화가 바위면을 사실상 거의 빽빽하게 채운 점으로 미뤄볼 때 다른 장소의 바위면에 암각화를 추가로 새겼을 가능성도 적지 않다. 더욱이 암각화가 한 세대에 걸쳐 조성된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 동안 여러 세대를 거쳐 조성된 데다 당시엔 종교적인 목적을 띤 점 등을 감안할 때 이런 추정은 설득력을 갖는다. 특히 당시 대곡천 신석기인 집단은 배를 타고 나가 함께 고래를 사냥할 정도로 인원 수도 많고 강력한 데다 식량을 많이 확보할 수 있었다는 점으로 미뤄 여러 곳에 암각화를 남길 충분한 여력을 가졌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먼저 대곡천 일원의 물을 빼는 게 시급하다. 사연댐 건설 이후 수몰을 반복하는 반구대 암각화부터 구한 뒤 대곡천과 주변 지역에 대한 전면적인 재조사를 실시해야 한다. 여건이 허락한다면 사연댐 물을 일시적으로 줄이거나 잠수 전문가를 동원해 수중 조사를 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제2 반구대 암각화 발견 소식은 그 자체로 인류에 대한 큰 선물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이와 함께 반구대 암각화에 대한 영구적인 보전 대책을 서두르는 등 반구천 암각화에 대한 대대적인 기반 확충 사업도 추진되어야 한다. 반구천 암각화의 진면목에 걸맞은 대우가 절실한 상황이다.



2020년 7월 장마로 반구대 암각화 유적이 물에 완전히 잠긴 모습. 1975년 식수원인 사연댐 준공 이후 이런 일이 반복되고 있다. 오는 7월 세계유산 등재를 앞두고 있는 인류 최고의 문화 유적이지만 수몰 악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연합뉴스 2020년 7월 장마로 반구대 암각화 유적이 물에 완전히 잠긴 모습. 1975년 식수원인 사연댐 준공 이후 이런 일이 반복되고 있다. 오는 7월 세계유산 등재를 앞두고 있는 인류 최고의 문화 유적이지만 수몰 악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연합뉴스

■ 동남권이 함께 꾸는 꿈…세계적 바위그림 관광벨트

인류의 소중한 보물인 두 개의 바위그림 유적을 품은 대곡천 일원은 그 자체로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을 만큼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한다. 특히 예전부터 신라 시대 화랑들을 비롯해 고려와 조선 시대에도 많은 사회 지도층들이 이곳을 찾았다. 그들은 이곳의 수려한 풍광을 시와 글에 담았다. 반구대 일원엔 포은 정몽주를 기리는 모은정을 비롯해 반구서원, 집청정 등 다양한 역사 유적들도 공존한다. 또 반구대 초입에서 암각화에 이르는 오솔길의 고즈넉한 아름다움은 그 자체로 이미 보탤 것도 뺄 것도 없는 완벽에 가까운 정취를 선물한다. 더욱이 울산엔 반구대 입구에 조성된 암각화박물관, 고래문화특구인 장생포의 고래박물관과 고래체험관 등 대곡천의 암각화와 관련된 문화 인프라가 상당수 조성됐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이제 암각화 소재지인 울산뿐만 아니라 부산, 경남 등 동남권 3개 지자체가 함께 나서야 한다. 세계유산인 반구천의 암각화를 단순히 울산 지역의 유적으로 한정 짓는 것은 너무도 좁은 안목이다. 협소한 안목으로는 인류 최고의 유산인 반구천 암각화의 진면목을 세계에 널리 알릴 수 없다. 억지스러운 주장이 아니다. 사실상 동남권은 선사 시대부터 하나의 생활권이었다. 즉, 세계유산 등재 의미를 반구천 암각화라는 걸작을 탄생시킨 선사 시대 동남권의 초광역적 생활 문화, 탁월한 문화적 가치 등을 포괄하는 쪽으로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더욱이 반구천의 암각화 이외에도 다양한 선사 유적들이 동남권 곳곳에 존재한다. 따라서 그 유적들의 정점인 반구천 암각화의 세계유산 등재는 동남권이 보유한 선사 유적들의 가치까지 함께 세계에 널리 알려야 할 때가 도래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한다.

역사의 시계를 기원전 1만여 년부터 부족국가가 생겨난 청동기시대 전까지로 돌려보면 신석기시대의 부산, 울산, 경남은 해양을 매개로 한 초광역권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진 사슴 그림과 부산 동삼동 패총 토기에 그려진 사슴 그림이 양식상 동일하다고 한다. 울산 대곡천 거주 집단이 반구대에 고래 사냥 장면을 담은 암각화를 새긴 것과 관련해 동삼동 패총 신석기 문화층위에서도 다양한 고래 뼈들이 대량 출토됐다. 이 사슴 그림과 고래 뼈 등을 감안할 때 부울경은 신석기시대부터 같은 문화를 공유한 동일 생활권역이었다는 추정도 가능할 것이다.

한반도 남부 지역에서 발견된 신석기시대 유적 가운데 가장 오래된 부산 영도구 동삼동패총에서 출토된 사슴선각문토기편. 가로 12.9cm 세로 8,7cm의 조각에 사슴이 그려져 있다. 아래는 사슴선각문토기 실측 그림. 부산일보DB 한반도 남부 지역에서 발견된 신석기시대 유적 가운데 가장 오래된 부산 영도구 동삼동패총에서 출토된 사슴선각문토기편. 가로 12.9cm 세로 8,7cm의 조각에 사슴이 그려져 있다. 아래는 사슴선각문토기 실측 그림. 부산일보DB
반구대 암각화 유적에 새겨진 사슴 문양. 동삼동패총에서 나온 사슴선각문토기의 사슴 그림과 양식이 동일하다. 이는 신석기시대 부산과 울산에 거주했던 신석기인들이 문화와 생활양식을 공유하는 메가시티적 삶을 살았다는 것을 추정케 한다. 부산일보DB 반구대 암각화 유적에 새겨진 사슴 문양. 동삼동패총에서 나온 사슴선각문토기의 사슴 그림과 양식이 동일하다. 이는 신석기시대 부산과 울산에 거주했던 신석기인들이 문화와 생활양식을 공유하는 메가시티적 삶을 살았다는 것을 추정케 한다. 부산일보DB

더욱이 동남권은 반구대 암각화를 비롯해 부산 복천동 고분 출토 암각화, 경남 함안 도항리 유적, 밀양 살내 유적과 의령 마쌍리 유적 출토 암각화, 사천 본촌리 유적 출토 암각화, 남해 양아리 서불과차 암각문 유적 등 풍부한 암각화 유산을 갖고 있다. 패총 등 선사 유적도 많다. 반구천 암각화 유적지에서 발견된 공룡발자국화석은 부산과 경남 곳곳에서도 다수 발견됐다. 반구대 암각화 세계유산 등재를 계기로 동남권 전체를 세계적인 바위그림 유적 문화권, 해양선사 유적 문화권으로 묶어 초광역권 문화 관광 벨트를 조성해야 마땅할 것이다. 즉, 바위그림과 공룡 등 선사유적을 핵심 콘텐츠로 삼으면서 부산, 울산, 경남의 기존 관광 자원과 결합시키는 방식으로 동남권 글로벌 관광메카화를 꾀해야 한다. 이와 관련,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이탈리아 발카모니카 암각화, 스페인 동부 지중해 연안에 남겨진 선사 시대 후기의 암각화와 벽화군 등은 이미 세계적 관광지로 자리매김했다.


경남 고성군 상족암 주변의 공룡발자국들. 부산일보DB 경남 고성군 상족암 주변의 공룡발자국들. 부산일보DB

이제 동남권이 함께 머리를 맞대야 한다. 서둘러 반구천 암각화를 중심으로 한 다채로운 선사 유적 관광 로드맵과 스토리텔링 추진, 캐릭터 등 관광 상품 고안, 글로벌 관광객 유치 전략 구축, 세계적인 암각화 도시와의 교류, 글로벌 학술 세미나, 반구천 암각화에 대한 세계사적 관점의 정밀한 추가 연구 등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 초광역권 관광 벨트를 매개로 한 컨벤션 산업 등의 활성화를 위한 장기적인 계획 수립도 시급하다.

특히 반구천 암각화의 진정한 가치에 대한 동남권 주민들의 자각도 시급하다. 반구천 암각화는 그 가치를 환산할 수 없을 만큼 귀중한 유산이자 이 땅에 살았던 선사인들이 후대에 전하는 뜻깊은 선물이다. 대한민국이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진정한 ‘K문화’의 정수인 것이다. 반구천 암각화가 글로벌 관광 수요를 촉발시키는 등 동남권 경제를 지탱하는 미래 동력 역할을 충분히 할 것이라는 기대를 품는 것도 이런 이유다. 동남권은 이제 전 세계 사람들이 반구천의 암각화 등 선사유적을 보기 위해 울산과 부산, 경남으로 몰려오는 꿈을 꿔야 한다. 그리고 그들이 동남권에 머무르고, 개발된 암각화 마스코트 등 관광 상품을 앞다퉈 구매하는 그런 날을 만들어야 한다.

더욱이 2029년 동남권 관문공항인 가덕신공항이 개항한다. 지구촌 곳곳에서 이제 곧장 동남권을 찾을 수 있다. 신공항을 계기로 부산과 울산, 경남 3개 도시의 교통 인프라도 대거 확충된다. 1시간 내외면 어디든지 도착할 수 있는 동일 생활권역으로 발돋움한다. 동남권이 반구천의 암각화를 매개로 함께 같은 꿈을 꾸고, 그 미래를 현실화할 시기가 드디어 도래했다는 생각이다.


■ 반구천 암각화와 동남권 메가시티


부산 영도구 동삼동 패총 유적지에서 나온 흑요석. 이 흑요석은 일본에서 온 것으로 확인됐다. 부산과 울산, 경남에 거주한 신석기인들이 일본 등 먼 거리까지 오가며 활발한 교류 활동을 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부산일보DB 부산 영도구 동삼동 패총 유적지에서 나온 흑요석. 이 흑요석은 일본에서 온 것으로 확인됐다. 부산과 울산, 경남에 거주한 신석기인들이 일본 등 먼 거리까지 오가며 활발한 교류 활동을 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부산일보DB

현재까지의 연구 결과를 종합하면 신석기 시대 한반도 남부는 동북지방, 서북지방, 중·서부지방, 중부 동해지방, 남해안지방 등 5개 권역으로 분류할 수 있다. 남해안지방은 나머지 4개 권역과 확연하게 구별되는 사회문화적 동질성을 지녔다. 바다에 접해 살았던 이곳의 거주민들은 농업보다는 바다를 생계 기반으로 삼으며 신석기시대 해양문화시대를 주도했다. 남해안지방은 현재로 보면 부산, 울산, 경남, 전남 등과 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 부산 동삼동 패총 유적지를 비롯해 암남동, 영선동 다대포패총과 울산 신암리, 경남 진해 안골포, 통영 연대도와 욕지도, 하동 목도, 창녕 비봉리 등에서 발견되는 다수의 패총과 주거 유적 등은 신석기시대 남해안지방이라는 초광역권의 존재를 입증한다.

반구대 암각화와 동삼동 패총 등 신석기시대 다양한 유물들은 당시 한반도 남부와 동북아시아의 강력한 해양문화 중심지가 남해안지방이라는 점을 뒷받침한다고 한다. 당시 사람들이 미개한 원시인일 것이라는 일반의 오해와 달리 동삼동 패총 등을 남긴 신석기인들은 일본은 물론 한반도 서해안과 내륙 집단 등과 활발히 교류한 선진 해양문화인들이었다. 이들이 부울경에 남긴 조개 팔찌, 흑요석 등은 당시 한반도 남해안지방 거주 신석기인들이 먼바다를 자유롭게 넘나든 강력한 해양문화를 가졌다는 것을 알려준다. 창녕 비봉리 패총 유적지에서 출토된 8000년 전의 목선 유적 등은 당시 동남권 신석기인들의 첨단 기술과 문화를 엿보게 한다. 동남권의 신석기 시대는 용광로처럼 뜨거웠던 진정한 ‘해양문화의 시대’였던 것이다.


부산 동삼동 패총 유적지에서 발견된 조개 팔찌. 완성된 팔찌뿐만 아니라 완성되지 않거나 부서진 조개팔찌도 다량으로 확인됐다. 동삼동 거주 신석기인들은 뛰어난 기술로 팔찌를 대거 제작, 일본 등에 수출한 것으로 추정된다. 부산일보DB 부산 동삼동 패총 유적지에서 발견된 조개 팔찌. 완성된 팔찌뿐만 아니라 완성되지 않거나 부서진 조개팔찌도 다량으로 확인됐다. 동삼동 거주 신석기인들은 뛰어난 기술로 팔찌를 대거 제작, 일본 등에 수출한 것으로 추정된다. 부산일보DB

이런 점에서 동남권 선사 유적의 정점인 반구천 암각화 중에서도 반구대 암각화는 동남권의 정체성에 동질성을 부여한다는 생각이다. 특히 반구대 암각화를 비롯해 부울경에 산재한 수많은 선사 유적은 신석기시대의 부울경이 이미 해양을 매개로 한 초광역권이었다는 것을 알려준다고 생각한다. 결국 신석기시대 동남권은 바다를 매개로 함께 교류하고, 동질적 문화를 향유했던 메가시티였다는 게 기자의 견해이기도 하다.

현재 삐걱거리고 있지만 부울경을 하나로 묶는 초광역권화 또는 메가시티화는 예정된 미래다. 메가시티화 과정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800만 명에 육박하는 동남권 주민들에게 자긍심과 동질성을 부여할 역사 스토리를 발굴하는 것이다. 메가시티화가 부울경 3개 도시의 혼인이라면, 사랑의 역사가 없는 형식적 결합은 파국을 맞을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더욱이 부울경의 역사엔 크고 작은 애증이 교차한다. 신석기시대 이후 부족국가 등을 거친 이후에도 신라와 백제, 가야 등으로 나뉘어 끊임없이 다툼을 벌였다. 고려와 조선 때도 부울경 내에선 문화적 중심과 변방이라는 논리가 작용하면서 진정한 통합을 이뤄내지 못했다. 그렇다면 현재 부울경 메가시티의 정체성을 신석기시대에 존재했다고 볼 수 있는 원조 메가시티에서 찾는 것은 어떨까.

반구천의 암각화는 신석기시대 이 땅에 살았던 사람들의 원조 메가시티적 삶을 보여줌으로써 미래 동남권 메가시티가 단순한 행정적 결합에 그쳐서는 안 된다고 주문하는 듯하다. 반구천 암각화를 중심으로 동남권 문화권을 하나로 엮어내는 고도의 역사 복원과 발굴, 스토리텔링 작업이 3개 도시 공동 주도로 빠른 시간 안에 반드시 추진되어야 한다. 부울경의 잊힌 정체성을 되찾아 이제 진정한 동남권 메가시티를 탄생시켜야 한다는 반구천 암각화의 주문에 귀를 기울이길 기대한다.


반구대 암각화 탁본을 복원한 모습. 반구대 암각화 발견 이후 무분별한 탁본이 진행되면서 암각화 훼손도 부추겼다는 지적이다. 부산일보DB 반구대 암각화 탁본을 복원한 모습. 반구대 암각화 발견 이후 무분별한 탁본이 진행되면서 암각화 훼손도 부추겼다는 지적이다. 부산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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