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현 기자 joon@busan.com | 2026-09-16 14:36:22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애니메이션 특별전 부문 영화 ‘백사전’ ‘왕과 새’ ‘메모리즈’. BIFF 제공
세계적 영화제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부산국제영화제(BIFF)가 올해 전면에 내세운 또 하나의 화두는 바로 ‘애니메이션’이다. 신인 감독들과 거장들의 화제작이 포진한 여러 섹션 중에서도 단연 가장 돋보이는 기획으로 ‘애니메이션 특별전’을 꼽는 데는 이견이 없을 터다.
BIFF가 올해 이토록 애니메이션 장르에 힘을 준 이유는 무엇이며, 관객들은 이번 특별전에서 어떤 수확을 얻어갈 수 있을까. 그 해답을 세 가지 질문을 통해 풀어본다.
■왜 애니메이션인가?
아동용 장르. 대중들이 갖고 있는 애니메이션에 대한 흔한 오해다. 그러나 BIFF는 이러한 편견을 단호히 거부한다. ‘아동용’이라는 인식과 달리 애니메이션은 현재 전 세계 영화계를 이끌고 있는 대표적 장르라는 분석이다. 대표적 예시가 지난해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뒤 전 세계에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킨 ‘케이팝 데몬 헌터스’다.
지난해 중국과 일본 영화 시장을 살펴보면 애니메이션의 강세는 더욱 확실하다. 지난해 1월 중국에서 개봉한 애니메이션 영화 ‘너자 2’는 지난해 중국 전체 극장 매출액의 약 30%를 차지하며 시장을 견인했고, 중국 영화 사상 처음으로 3억 명이 넘는 관객(3억 2328만 명)을 기록했다. 지난해 중국 박스오피스 상위 10편 중 3편이 애니메이션이다.
전통적 애니메이션 강국 일본에서도 지난해 로컬 IP 기반 애니메이션 영화인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2662만 명), ‘명탐정 코난: 척안의 잔상’(1012만 명), ‘극장판 체인소 맨: 레제편’(572만 명)이 흥행을 기록했다. 박스오피스 상위 10편 중 애니메이션이 무려 5편에 달했다. 이 외에도 인도네시아에서 애니메이션 두 편이 천만 영화로 등극하며 자국 영화의 성장을 주도했다.
단순히 대중적 인기만이 이번 특별전의 바탕이 된 것은 아니다. BIFF는 애니메이션의 관람 형태도 변화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애니메이션 장르의 관객 연령대가 20~30대로 확장되는 추세를 보였다는 것이다. 영화계에서 애니메이션 팬층이 더욱 공고해지고 넓어지고 있는 셈이다.
정한석 집행위원장은 “지난해 BIFF가 끝나고 프로그래머 등과의 회의에서 ‘애니메이션’ 키워드가 가장 많이 나왔다”며 “애니메이션으로 무엇을 할까라는 고민이 지금의 특별전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왜 일본인가?
애니메이션 특별전 작품 리스트를 잘 살펴보면 한 작품을 제외하고는 모두 일본에서 제작된 애니메이션이다. 이는 일본이 전 세계를 통틀어 대표적인 애니메이션 전통 국가이기 때문이다. 애니메이션을 주제로 특별전을 개최하는 만큼 그 원류를 깊고 좁게 파고들자는 의도가 묻어있다.
BIFF는 그중에서도 일종의 예술적 소란을 일으킨 작품을 위주로 리스트를 꾸렸다. 예술적·기술적 측면에서 애니메이션의 진일보를 이뤄낸 작품을 중심으로 구성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지브리 스튜디오 애니메이션은 대중에게 너무 친숙하다는 이유로 제외됐다.
■관객이 얻어갈 것은?
“이제는 극장에서 만나기 힘든 작품들을 온전한 감동으로 즐길 수 있는 아주 귀한 기회다.” 정 집행위원장은 이번 특별전을 강력히 추천하며 이같이 말했다. 1950년대부터 2020년대까지 70년의 애니메이션 역사를 관통하는 작품들을 한눈에 관람할 수 있는 다시 없을 기회라는 것이다. 특히 최초 기획 당시 원했던 작품들을 그대로 초청할 수 있어서 상영 리스트의 수준도 굉장히 높다고 강조했다.
특별전에서 소개되는 13편의 애니메이션 중 주목할 만한 주요 작품은 다음과 같다. 우선 야부시타 다이지 감독의 ‘백사전’(1958)은 중국 설화를 바탕으로 한 일본 최초의 장편 컬러 애니메이션이다. 이어 일본 미디어 예술 100선에 손꼽히는 ‘아키라(AKIRA)’(1988)의 감독 오토모 가쓰히로가 선보인 ‘메모리즈’(1995) 등이 눈에 띈다.
정 집행위원장이 추천한 작품은 리스트 중 유일하게 일본이 아닌 프랑스에서 만들어진 ‘왕과 새’(1952, 1980)다. 시인이자 영화감독인 자크 프레베르가 각본에 참여한 이 작품은 1952년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특별상을 수상할 정도로 영화사에 굵직한 족적을 남겼다.
특히 작품에 나타나는 ‘수직성’은 현대 애니메이션의 개척자라 불리는 미야자키 하야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으며, 그의 작품 ‘루팡 3세: 칼리오스트로의 성’(1979)에서 그러한 특징이 재현되기도 했다. 정 집행위원장은 “‘루팡 3세’ 작품 전체가 사실상 ‘왕과 새’의 오마주라며, 미야자키 팬들이 이 영화를 보면 ‘이렇게 대비되는구나’ 하고 큰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게스트 라인업도 화려하다. ‘극장판 은하철도 999’를 연출한 린 타로 감독이 한국을 방문하고, 2015년 방영된 애니메이션 ‘원펀맨’의 나츠메 신고 감독도 한국을 찾는다. 대부분 흔쾌히 내한에 응한 반면 오시이 마모루 감독은 신작 준비로 일정이 바빠 초청이 불발돼 BIFF 내부에서도 아쉬움을 삼켰다고 한다.
정 집행위원장은 “한국과 아시아의 애니메이터들이 애니메이션의 정수를 보고 창작의 영감을 얻었으면 한다”며 “애니메이션에 관심이 없던 관객들에게도 깊은 영화적 감흥을 선사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