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빈 부산닷컴 기자 suvely@busan.com | 2024-11-15 14:30:29
고기구이가 질리는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음식이 있다. 바로 '생고기'다. 고기를 생으로 먹는 것에 대한 거부감 때문에 쉽게 권하기 힘든 음식이지만 한 번 맛을 보면 그 맛에서 헤어나올 수 없다.
하지만 밀면, 국밥, 회가 익숙한 부산에서는 제대로된 생고기 집을 찾기 쉽지 않다. 그런 부산에 생고기의 본고장 대구에서 올라온 '예랑생고기 해운대점(대표 김명석)'이 도전장을 내밀었다.
생고기는 지역마다 써는 방식에 따라 생고기, 육사시미, 뭉티기 등 다른 이름으로 불리지만 당일 도축한 소고기의 우둔살을 사용한다는 점은 같다. 현행법상 소고기는 도축 후 등급 판정을 받고 경매를 거친 다음에 유통할 수 있지만 생고기는 예외다. 생고기에 사용하는 우둔살은 도축 당일 바로 유통이 가능하다. 예랑생고기 해운대점 김명석 대표는 "김해 주촌에서는 생고기를 취급하지 않아 경북 영주와 안동에서 당일 도축한 생고기를 떼온다"며 "수소보다는 암소가 맛있다"고 설명했다.
'예랑생고기 해운대점'은 대구의 뭉티기 맛집인 '예랑생고기'의 자매 가게다. 대구의 있는 예랑생고기 대표와 김명석 대표의 형수가 자매지간으로 부산에 있는 식당은 김명석 대표와 형수가 같이 운영하고 있다. 김 대표는 "최근 먹방 유튜버들이 생고기를 많이 먹으면서 마니아들이 생겨나고 있다"면서 "그런 분위기 속에 부산에서도 제대로 된 생고기 맛을 보여주고 싶어 가게를 열게 됐다"고 설명했다.
식당을 방문하면 이것도 먹고 싶고, 저것도 먹고 싶어 메뉴 선택에 힘이 든다. 이곳은 두 메뉴를 즐길 수 있는 반반 메뉴가 있어 고민에 대한 부담이 적다. 이날은 둘 다 맛보고 싶어 생고기·육회 반반(대 7만 5000원, 중 6만 5000원) 메뉴를 주문했다.
먼저 하얀 국물의 소고깃국과 잡채, 고구마, 콩나물, 번데기 등 밑반찬이 나왔다. 김 대표는 조미료를 많이 쓰지 않아 심심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조미료를 많이 쓰지 않았다는 말이 사실인지 반찬을 먹은 후에도 입안이 깔끔했다. 특히 담백하면서도 슴슴한 맛의 하얀 소고깃국이 입맛을 사로잡았다.
오늘의 주인공 생고기가 나왔다. 생고기는 암적색을 띨수록 신선하다. 붉은 때깔의 생고기 비주얼에 참지 못하고 젓가락을 집어 들었다. 생고기의 찰기를 확인하기 위해 접시를 뒤집어보는 게 유행이라는 것이 떠올랐다. 트렌드는 놓칠 수 없기에 괜히 한 번 접시를 뒤집어 본다. 신기하게도 찰기 때문에 생고기가 접시에 딱 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생고기는 고기의 질도 중요하지만 맛집을 판가름하는 기준은 양념장이다. 예랑생고기의 양념장은 대구에서 쓰는 양념장을 그대로 가져와 손님상에 내놓는다. 이 집만의 비법 다대기와 마늘, 꿀, 홍고추, 참기름을 넣은 양념장에 생고기를 한 점 찍어 먹으면 입안에 착 감겨 쫀득, 쫄깃한 식감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이곳은 초밥용 밥도 함께 주는데 생고기가 물릴 즈음 생고기 초밥을 만들어 먹으면 그게 또 별미다.
이어 육회가 나왔다. 생고기에 사용한 우둔살을 하루 숙성해 꿀을 베이스로 한 양념에 버무린 육회는 아는 맛이 무섭다고 그냥 맛있다. 생고기는 쫄깃함이 매력이었다면 육회는 숙성한 덕분인지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다. 함께 나온 배를 얹어 육회와 함께 먹으면 시원, 아삭한 식감을 함께 즐길 수 있다.
이곳에 갔다면 오드레기는 꼭 주문해야 한다. 이름도 생소한 오드레기는 소 대동맥에서 나오는 힘줄 부위로 소 한 마리당 200~600g밖에 나오지 않는 특수부위다. 씹을 때 오도독 소리가 난다고 해 붙여진 이름으로 주로 양지(차돌)와 섞어 구워나온다. 그야말로 부산에서는 맛볼 수 없는 대구의 맛이다. 처음 보는 비주얼에 낯설어하던 것도 잠시 김 대표의 안내에 따라 오드레기와 양지를 함께 집어 양념장에 찍어 먹었다. 오드레기의 오도독한 식감과 양지의 고소한 맛이 조화를 이뤄 입안을 더욱 풍성하게 한다. 만약 오드레기를 처음 먹는다면 꼭 양지와 함께 먹기를 권한다. 김 대표는 "대구에서는 오드레기로 건물을 세운 사람이 있을 정도"라고 귀띔하기도 했다.
마무리는 소고기 전골이 딱이다. 소불고기 전골의 비주얼을 예상했으나 빨간 국물의 전골이 담겨 나왔다. 전골이라고 표기되어 있지만 대구에서는 주로 찌개라고 부른단다. 밥 한술을 떠 국물에 적셔 먹으니 배가 부르지만 술술 들어가는 맛이다. 갈빗살을 듬뿍 넣어 고기 국물의 맛이 우러나면서도 고추짱 찌개처럼 칼칼하니 맛나다. 회사를 마치고 집에 오면 저녁 먹을 힘도 없어 가볍게 때우는데, 오랜만에 맛있는 식사를 하니 기분이 좋아진다. 맛있는 음식이 주는 힘을 새삼스레 깨닫는다.
맛있는 음식은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먹으면 기쁨이 배가 된다. 오픈한 지 3개월, 가게 내부는 정갈하고 깔끔하다. 친구들끼리 방문해 생고기에 술 한 잔 곁들이기 최적의 장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