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성 기자 paperk@busan.com | 2025-02-04 18:04:16
뜻하지 않은 행운이란 없다. 얼마나 간절히, 얼마나 묵묵히 준비하며 기다려 오느냐에 ‘뜻하지 않는 행운’이란 게 찾아온다.
지난 시즌 ‘윤·고·나·황’이라는 야구 신조어까지 만들어내며 맹활약한 롯데 자이언츠의 젊은 4인방이 뜻하지 않는 행운의 사나이로 인식되고 있다.
4일(한국 시간) 오후 롯데의 스프링캠프인 대만 타이난의 아시아태평양국제야구장에서 만난 윤동희(22), 고승민(25), 나승엽(23), 황성빈(28) 등 주인공들은 뜻하지 않는 행운의 사나이들이 아니었다. 누구보다 간절한 마음으로 훈련에 임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쌓아갔다.
롯데는 지난해 7위로 시즌을 마감하며 가을야구 진출은 실패했지만, 팀 타율은 0.285로 정규시즌 전체 2위를 차지했다.
100안타 고지를 밟은 선수도 8명이나 나왔다. KBO리그 한 시즌 최다 안타 신기록을 쓴 빅터 레이예스(202안타)를 비롯해 윤동희(156안타), 고승민(148안타), 나승엽(127안타), 손호영(126안타), 전준우(124안타), 황성빈(117안타), 박승욱(106안타)이 세 자릿수 안타를 기록했다. 롯데가 무려 8명의 100안타 선수를 배출한 건 구단 역사상 가장 강력한 타선을 구축했던 2010년 이후 14년 만이다.
그 중심에 ‘윤·고·나·황’이 있었다. 이들의 상승세가 이어지면서 팀 전체의 타격 분위기는 상승했고 공격 지표는 올라갔다. 무엇보다 ‘윤·고·나·황’의 성장은 세대교체를 의미한다. 롯데 타선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강민호(2017년·삼성 라이온즈)와 손아섭(2021년·NC 다이노스)이 팀을 떠난 뒤 ‘조선의 4번 타자’인 이대호마저 2022시즌을 끝으로 은퇴하면서 사살상 롯데를 대표하는 타자가 거의 없었다.
롯데는 이들의 ‘화려한 등장’을 억대 연봉으로 화답했다. 이들은 올해 전원 억대 연봉에 인상률 100% 이상을 받았다. 윤동희가 9000만 원에서 2억 원, 고승민이 8000만 원에서 1억 8500만 원, 나승엽이 4000만 원에서 1억 2000만 원, 황성빈이 7600만 원에서 1억 5500만 원을 받았다.
이들 4인방은 올 시즌 각오로 “팀이 위기를 맞을 때마다 한 방씩 터뜨려주는 해결사 역할을 하겠다”고 입을 모았다.
윤동희는 데뷔 3년 차 외야수로 ‘윤·고·나·황’의 막내다. 이들 중 유일하게 2023시즌에 이어 2시즌 연속 풀타임을 뛴 선수다. 2023년 107경기에서 타율 0.287, 2홈런, 41타점을 기록했고, 그 해 열린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 따내며 군 특례 혜택도 받았다. 단숨에 팀의 주전으로 떠오른 윤동희는 지난해 기량이 급성장해 141경기에 출전해 타율 0.293, 14홈런, 85타점을 작성했다. 시즌을 마치고 열린 프리미어12에도 발탁돼 대표팀 4번 타자로 이름을 올릴 정도였다.
윤동희는 올 시즌 느낌이 더 좋다. 그는 “작년 이맘 때에 비해 힘이 더 생긴 것 같고, 몸 상태가 더 올라올 거라 생각돼 재미있게 훈련하고 있다”면서 “매년 성장하는 게 가장 큰 목표이고, 팀 성적이 올라가야지 개인 성적이 좋아진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2019년 롯데에 입단한 고승민은 2023시즌까지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했다. 2022시즌 0.316의 타율을 보였지만 규정타석을 채우지 못해 잠재력을 보여준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하지만 고승민은 지난해 김태형 감독의 결단으로 붙박이 2루수가 된 이후 규정타석을 채우며 120경기 타율 0.308(481타수 148안타), 14홈런, 87타점, OPS 0.834로 맹타를 휘둘렀다. 유망주 껍질을 깨뜨리고 나온 것이다. 스프링캠프에서 만난 김 감독은 “고승민을 주전 2루수로 기용한 것은 일종의 모험이었는데, 고승민이 너무 잘 해줘서 흐뭇했다”고 털어놨다.
고승민은 “시즌 풀타임을 처음으로 소화했는데 느끼고 배운 것이 많다”면서 “힘들게 주전 2루수가 된 만큼 수비에 좀 더 주력해 팀이 승리할 수 있도록 도움이 되겠다”고 밝혔다.
나승엽은 군 복무를 마치고 복귀한 지난해 레전드 이대호의 상징인 롯데 1루수를 물려받았다. 시즌 초반 부진으로 2군으로 잠시 내려가긴 했지만, 지난해 타율 0.312, 7홈런, 66타점, OPS 0.880으로 활약하며 새로운 핵심 선수로 자리매김했다. 규정타석을 채운 선수 중 팀 내 두 번째로 놓은 타율이다. 2루타(35개)도 윤동희와 함께 공동 2위다.
나승엽은 “이제부터 시작이라 생각하고 지난해 했던 건 다 잊고 또 초심으로 돌아가서 더 열심히 팬들의 기대에 부응하시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마황’ 황성빈은 입단 3년 차였던 2022시즌 1군에 데뷔했다. 근성 넘치는 플레이로 주목받았고, 준수한 성적(타율 0.294)을 남기며 이름을 알렸다. 하지만 2023시즌은 부진했고, 지난 시즌 초반까지도 백업 외야수였다. 4월 끈끈한 승부와 악착같은 플레이로 팀에 활력을 불어 넣으며 주전으로 자리매김했다.
황성빈은 지난해 125경기에 출전해 타율 0.320, 4홈런, 26타점, 94득점, OPS 0.812로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특히 51개의 도루를 성공시키며 2010년 김주찬 이후 14년 만에 롯데 선수 최초로 50도루를 달성했다.
황성빈은 “작년에 의미있는 한 해를 보냈지만, 수비에서 다소 부족하다고 생각이 들어 보완하고 있다”면서 “선수들이나 팬들이나 모두 가을야구를 원하고 있어 열심히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윤·고·나·황’ 젊은 거인들이 있어 올 시즌이 매우 기대된다.
대만/타이난=김진성 기자 pape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