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우리, 시에서 위로 받다

손음 시인, 신작 ‘고독한 건물’ 출간
시 쓰기부터 책 제작까지 손수 진행
불안·권태에서 끌어올린 시어들
5년째 만드는 웹진, 10만 명 구독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 2025-04-09 09:36:02

세 번째 시집 <고독한 건물>을 출간한 손음 시인. 김효정 기자 세 번째 시집 <고독한 건물>을 출간한 손음 시인. 김효정 기자

손음 시인의 세 번째 시집 <고독한 건물>은 디자인과 제작까지 모두 손 시인이 혼자서 완성했다. 김효정 기자 손음 시인의 세 번째 시집 <고독한 건물>은 디자인과 제작까지 모두 손 시인이 혼자서 완성했다. 김효정 기자

주택을 활용한 ‘카페 영도일보’의 첫 인상은 아름다운 정원이었다. 햇살에 반짝이는 꽃과 풀의 환대에 방문객은 마음이 열린다. 앤티크 가구로 꾸며진 내부 곳곳은 주인장의 손길이 묻어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특별한 건 수백 권의 시집이 있는 서가와 책 읽는 공간이 있다는 점이다. 누구라도 주인장에게 “뭐 하는 분이세요?”라고 물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곳을 운영하는 손음 시인은 1997년 <부산일보> 신춘문예와 <현대시학>으로 등단했다. 첫 응모에 바로 당선되었다니 글쓰기 내공은 짐작이 된다. 2010년 <칸나의 저녁>, 2021년 <누가 밤의 머릿결을 빗질하고 있나> 등 두 권의 시집을 냈다.

누구보다 바쁘게 사는 그는 혼자 광고기획사를 운영하며 수많은 인쇄물을 제작했고, 밤에는 문예창작과 지망생을 위한 글쓰기 학원 ‘칸나샘교실’에서 20년째 강의 중이다. 5년 전부터는 시 웹진 <같이 가는 기분>을 계간으로 발행하고 있다. 외부의 지원이나 광고를 받지 않고 자비로 제작과 원고료를 충당했다. 그 정성이 통했는지 <같이 가는 기분>은 5년 만에 구독자 10만 명이 넘었고, 전국 3대 웹진으로 꼽힌다. 3년 전 시작한 ‘카페 영도일보’는 시를 즐겁게 만날 수 있는 카페이자 책방이다. 동시에 시 낭송회, 시집 출판 기념회, 시 쓰기 교실, 시 치유 프로그램 등 시와 관련된 행사를 진행하는 문화공간이기도 하다.

손음 시인이 5년째 자비로 제작하는 시 웹진 <같이 가는 기분>. 2025년 봄호. 손음 시인이 5년째 자비로 제작하는 시 웹진 <같이 가는 기분>. 2025년 봄호.

손음 시인이 운영하는 카페 영도일보는 시를 읽을 수 있는 책방이자 카페이며 시 행사가 열리는 문화공간이기도 하다. 김효정 기자 손음 시인이 운영하는 카페 영도일보는 시를 읽을 수 있는 책방이자 카페이며 시 행사가 열리는 문화공간이기도 하다. 김효정 기자

카페 영도일보에서 자신의 세 번째 시집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손음 시인. 김효정 기자 카페 영도일보에서 자신의 세 번째 시집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손음 시인. 김효정 기자

이렇게 많은 일을 하지만, 손 시인의 중심은 시 쓰기였다. 지난해는 시 전문 출판사 ‘같이 가는 기분’도 설립했다. 몇몇 출판사에서 세 번째 시집 출간을 의뢰 받고 진행하던 중 출판사의 틀에 박힌 제작 스타일이 답답해 유명 출판사의 혜택을 포기하고 직접 출판사를 차려 시집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최근 출간한 손음 시인의 시집 <고독한 건물>이 그 결과물이다. 표지 디자인부터 판형, 종이 선택, 대형 서점 등록까지 고생한 사연은 끝도 없지만, ‘부산에서 이렇게 공을 들인 시집은 드물다’는 말 한마디면 충분했다. 깊어진 시 세계와 뛰어난 상상력이 돋보인다는 평론 글 역시 기쁜 대목이다.

시집 제목 <고독한 건물>은 시인이 20년째 운영하는 글쓰기 학원이 있는 상가(부산 해운대구 좌동 화목상가)를 말한다. 매일 보이는 창밖 벚나무와 상가 화분, 지나가는 사람과 자동차를 보며 떠오른 단상이다.

‘여름, 폭염 속 멈춰진 차량 행렬 속에서 흐르듯 움직이는 사람을 본다/검은 가로수와 혓바닥을 할할거리며 끌려가는 개들과 열기를 뿜어내는 자동차들과 열락의 숫자 0 그 속에 갇힌 진공관/…/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늪 하나를 가지게 되는 여름, 계속해서 발랄한 권태가 밀려온다’. (‘파상’)

‘불안이 창문을 열고 들어와 내 곁에 드러눕는다/나는 가난한 불안을 꼬옥 껴안아준다/많이 힘들었구나…’(‘환몽’)

‘화분이라는 이름을 뒤집어쓰고 종일 비를 맞는 저’(‘화분’)

‘나는 미리 불안이다 불안이 없어서 불안이다 불안은 나의 몸에서 여관처럼 잠을 자고 커피를 마신다. 불안은 예쁘고 젊다 늙지 않는다/…/불안은 밥도 먹고 살이 찐다/…/내가 늙어 아줌마가 되었는데도 불안은 엄마처럼 찾아와 불안을 젖 먹인다/…/불안은 나를 끌어안는다 꽉 끌어안는다 온 몸으로 들어와 증상을 만든다/…/나는 머잖아 내 몸으로부터 쫓겨나게 될 것이다’ (‘내 곁의 더운 혓바닥’)

작가로서 삶에 대한 예민함은 불안과 권태로 다가왔다. 손 시인은 “불안은 삶 전체에 포진돼 있다. 불안이 시 쓰기의 동력이며 시 쓰기를 통해 불안을 껴안고 위로한다”라고 말한다. 매일 만나는 상가의 사물과 자신을 동일시하기도 한다. 어두운 상가에서 혼자 무너져가던 시인을 지켜본 것은 창밖 벚나무이다. 그래서 ‘벚꽃은 왜 피어서 지랄인가’라고 푸념하기도 하고 ‘누와르 흰빛’이라는 시 언어로 표현하기도 했다.

손 시인은 올해도 시를 가지고 얼마나 재미있게 놀 수 있는지 여러 기획을 준비하고 있다. ‘카페 영도일보’는 늘 시로 가득 차 있다.

지면보기링크

포토뉴스

가장 많이 본 뉴스

  • 사회
  • 스포츠
  • 연예
  • 정치
  • 경제
  • 문화·라이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