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혜랑 기자 rang@busan.com | 2025-04-08 18:13:06
국내 최대 컨테이너 선사인 HMM(옛 현대상선)이 7200억 원 규모의 영구채를 조기 상환할 예정이다. 이는 대주주인 산업은행과 한국해양진흥공사(해진공)가 보유한 마지막 영구채다. 이를 주식으로 전환할 경우 이들 대주주의 HMM 지분율이 약 72%에 육박하고, 지분 가치만 약 11조에 달해 매각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특히, HMM 본사 이전을 바라고 있는 부산의 입장에선 매각이 어려워지면서 본사 이전도 멀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8일 업계에 따르면 산업은행과 해양진흥공사는 이달 중순께 이들이 보유하고 있는 7200억 원 규모 HMM 전환사채를 모두 주식으로 전환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서 두 기관이 보유한 HMM 지분은 67%에서 71%까지 높아진다. 앞서 HMM은 산은과 해진공에 7200억 원 규모의 전환사채(CB)에 대한 조기 상환 의사(콜옵션)를 밝힌 것으로 전해진다.
해당 CB는 2020년 4월 발행한 30년 만기 영구채로, 산은과 해진공이 각각 절반(3600억 원)씩 인수했다. 아직 만기까지 25년이 남았지만 상환을 서두르는 건 금리가 급격히 오르는 ‘스텝업’(Step up) 조항 때문이다. 해당 CB는 발행 5년차에 조기상환청구권이 발동되는데, 이 CB의 금리는 발행일로부터 5년 동안 연 3%지만, 6년 차엔 3%포인트 가산해 연 6%가 된다. 다음 달부터 HMM은 연 6%의 이자를 산업은행과 해진공에 줘야 한다.
유동성이 충분한 HMM 입장에선 굳이 높은 금리를 내면서 해당 CB를 유지할 이유가 없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HMM의 현금, 현금성 자산은 지난해 3분기 기준 14조 3000억 원에 달한다. 지난해 별도 기준 매출은 11조 5134억 원, 영업이익 3조 4897억 원, 당기순이익 3조 6712억 원을 각각 기록했다.
조기상환으로 대주주 산업은행과 해진공의 HMM 지분율이 약 72%까지 높아지면서 매각 금액은 더 올라갈 것으로 예측된다. 현재 산업은행과 해진공이 보유한 HMM 지분율은 67.05%이다. 이번 CB를 주식으로 전환하면 지분율은 71.69%(산은 36.02%, 해진공은 35.67%)까지 뛴다. 두 기관의 지분 가치를 8일 오후 기준 HMM 시가총액으로 계산하면 약 11조 원에 달한다. 매각 작업이 진행됐던 2023~2024년 거래 가격 6조 4000억 원과 비교하면 2배 가까이로 오른 것이다.
해운업계는 국내 기업 중 이 정도 인수대금을 감당할 기업을 찾는 것에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이에 HMM 본사 이전을 바라고 있는 부산 지역의 표정도 어둡다. 부산상의는 지난해 8월 ‘국민의힘 부산지역 국회의원 초청 상공인 간담회’에서 HMM 본사 부산 이전을 5대 지역 현안 중 하나로 포함시키고 정치권의 역할을 촉구한 바 있다. 업계 관계자는 “결국 본사 이전의 선결 조건이 매각을 통한 민영화인데, 매각이 불투명하면 이전도 어려운 것 아니겠냐”며 “지자체 등에서 HMM에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장기적인 매각 로드맵 마련할 필요성이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