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병진 기자 joyful@busan.com | 2025-10-12 19:30:00
기업의 사업 재편은 늘 ‘난제’로 꼽힌다. 안정적인 기존 수익 구조를 벗어나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일은 그만큼 위험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78년 역사의 부산 대표 향토기업 조광페인트는 최근 지역 경제계에서 과감한 사업 재편 움직임으로 주목받고 있다. 전통적인 페인트 업체인 조광페인트는 이제 ‘설루션 기업’으로 변신 중이다.
조광페인트는 최근 친환경 건축 설루션 스타트업 ‘세라’(SERA)와 손잡고 차세대 스마트 단열 시스템 공동 개발에 착수했다. 세라의 단열재 기술에 조광페인트의 내열 코팅 기술을 접목해 최고의 에너지 효율을 구현하는 것이 목표다. 두 기업은 세라의 단열재 프로토타입 개발 및 시험, 조광페인트의 코팅 소재 제공 및 기술 자문 등을 함께 추진한다. 양사는 또 건설사와 시공사, 설계사무소 등을 대상으로 한 공동 영업과 마케팅도 추진할 예정이다.
조광페인트 양성아 대표는 “한 기업의 힘만으로는 복잡하고 빠른 시장의 속도를 따라가기 어렵다”며 “지역의 다양한 아이디어와 조광페인트가 78년간 쌓아온 노하우가 합쳐진다면 완전히 새로운 시장을 열 수 있으리라고 본다”고 말했다.
‘오픈 이노베이션’에 적극적인 대표 기업 중 하나인 조광페인트는 내부 자원만 고집하지 않고 스타트업, 대학, 연구소 등 외부 기술과 아이디어를 적극 결합하고 있다. 조광페인트 내에서도 ‘어벤저스 작전’이라고 부르며 지역의 유망한 기업들과 연계하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양 대표는 “전통적인 도료 부문은 이미 레드오션”이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영역 도전이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조광페인트는 현재 3세 경영인이 이끌고 있다. 역사가 긴 만큼 관성으로 운영하기 쉽기에 사업 재편 필요성이 큰 기업이었다. 이 기업은 2019년 양 대표가 단독으로 회사를 이끈 후 과감한 투자에 나서기 시작했다. 2021년에는 이차전지 소재 시장에 뛰어들어 자회사 ‘CK이엠솔루션’을 만들기도 했다. CK이엠솔루션은 전기차 배터리의 열을 외부로 빠르게 방출시켜 안정성을 높이는 방열 접착제(TIM)를 주력으로 생산한다. 아직 수익적으로는 성과를 보여준 것은 아니지만 이런 도전은 페인트 기업의 한계를 넘어 미래 먹거리를 찾으려는 조광페인트의 강력한 의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양 대표는 “캐시 카우(기업이 꾸준히 안정적인 수익을 창출하는 상품이나 사업)가 명확하면 할수록 관성이 생기기 마련인데 이를 극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최근 양 대표가 이끄는 조광페인트는 초정밀 기술 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극한의 환경을 견디게 하는 ‘열제어 코팅’, 반도체 제작 등에 필수적으로 사용되는 ‘정전기 방지 코팅’ 등 전량 수입에 의존하는 초정밀 기술 국산화가 그 목표다. 다양한 설루션 사업에 나서겠다는 생각인 셈이다. 또한 조광페인트의 ‘핵심 기술’인 친환경 UV 기술도 더욱 업그레이드하겠다는 계획이다. UV 기술은 자외선(UV)을 쬐어 페인트나 접착제를 순간적으로 굳히는 방식으로, 대기오염의 주범인 휘발성유기화합물(VOCs) 사용을 최소화하는 혁신 공법이다.
최근 조광페인트는 기존 조직을 페인트 부문과 설루션 부문으로 나누고 다양한 설루션 사업 진출을 모색하는 중이다. 이미 내부 변화도 상당 부분 진행됐다. 대표적인 것이 인력 구조 변화로 직원 500여 명 중 R&D 인력만 30% 이상일 정도로 새 분야 진출에 정성을 다하고 있다. 양 대표는 “변화하는 환경에 대응하지 못하면 결국 기업은 도태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