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국 소설가가 본 이창동 감독] 가능한 사랑, 48년 전 그의 치열함에서 가능성 엿봤다

대학 시절 함께 교지 만들 때도
한 달 넘게 밤새며 집요한 창작열
‘초록물고기’부터 ‘가능한 사랑’까지
영화 작가로 평생 일관된 주제는
타인의 고통에 대한 올곧은 정신

2026-09-14 17:22:41

‘가능한 사랑’ 스틸 컷. 넷플릭스 제공 ‘가능한 사랑’ 스틸 컷. 넷플릭스 제공
이창동(가운데) 감독과 신종국(왼쪽) 소설가, 임철우(오른쪽) 소설가. 신종국 제공 이창동(가운데) 감독과 신종국(왼쪽) 소설가, 임철우(오른쪽) 소설가. 신종국 제공

제83회 베네치아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한 영화 ‘가능한 사랑’의 이창동 감독과 대학 동창으로 오랜 교분을 가져온 신종국 소설가가 이창동 감독과 ‘가능한 사랑’에 대한 글을 보내 왔다.


정확히 말해 지난 13일 오전 3시 35분, 챗GPT를 통해(AP통신을 주로 분석한) 이번 83회 베네치아국제영화제에서 이창동 감독의 영화 ‘가능한 사랑’이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했다는 뉴스를 처음 접했다. 그랑프리인 황금사자상 다음의 은사자상인데 참으로 큰 상이다. 동시에 국제영화비평가연맹상까지 받았다. 2관왕인 셈이다. 5분 뒤 한국 JTBC가 전한 속보로 나는 그 사실을 재확인했다. 기쁜 뉴스가 아닐 수 없다. 세계 3대 영화제나 미국 아카데미에서 한국 영화의 주요 부문 수상이 최근엔 전무한 상황이 아니었던가. 같은 영화제에서 2012년 김기덕 감독 ‘피에타’의 황금사자상 수상 이후 수상 소식은 처음이라고 한다. 다시 해낸 것이다. 이창동 감독이!

2018년 1월 ‘버닝’ 촬영 막바지 단계에, 해운대 달맞이의 내 작은 집필실로 공동 각본가인 오정미(이번 영화도 그러함) 씨랑 그가 방문 왔던 기억이 난다. 스티븐 연과 유아인이 카페에서 조우하는 3분 정도 분량을 찍어도 될 만한 업소를 좀 찾아보자고 했다. 주 촬영지인 경기도가 지금 강설량이 많아 그 장면 계절과 맞지 않기에 부산 달맞이까지 남하한 것이다. 친한, 대학 졸업 동기로서 나는 결연히 일어나 집필실 부근 달맞이 언덕에서 그가 원하는 카페를 바로 찾아 주었다. 그런데 전관을 빌린 카페에서의 3분 장면을 무려 이틀 동안 수십 번이나 찍었다. 쉬는 시간에 스티브 연이 울상이기에, “내가 보기엔 당신은 연기를 참 잘합니다”라고 영어로 더듬자, 그는 한국어로 더듬으며 “아, 감독님은, 그런 말, 너무, 안, 해줍니다!”라면서 얼굴이 활짝 핀다. 유아인은 촬영지 밖에서 마냥 즐겁게 뛰어다니고 있고.

이번 베네치아 영화제 경쟁작 리스트를 사전에 접하고 나는 대경실색했다. 지난봄 칸 영화제와는 비교가 되지 않게 엄청난 거장들이 몰렸기 때문이다. 대니 보일(영국), 고레에다 히로카즈(일본), 베르너 헤어조크(독일), 메이 엘투기(덴마크), 유발 아브라함(이스라엘), 케이시 애플렉(미국)까지. 8년 만에 겨우 영화를 만든 이창동 감독이 빈손으로 귀국하는 건 아닐까 겁이 났다. 그러나 그가 얼마나 영화를 치밀히, 정교히, 고통으로 직조하는지 잘 알기에 경쟁작 21편의 리스트를 다 본 후 나조차 격려의 투지로 타올랐다.

소설도 그랬다. 대학생 시절에 함께 대학 교지를 만드는 5명의 편집위원 때부터 그랬다. 간단한 특집 구성에도 그는 혈투를 펼쳤다. 그의 단편소설도 하나 실어야 하는데, 교정지가 나와야 할 순간까지 추운 편집실에서 한 달 이상 밤새워 쓰고 지우고 또다시 쓰는, 지난한 피의 창작을 곁에서 봤다. 사람이 견딜 수준이 아니었다. 아직 대학생인지라 습작 수준만 보여도 되는데, 완전품을 발표했다. 그 단편이 〈문학과지성사〉 출간의 이창동 소설집에 들어 있다. 그의 처절한 창작에의 집요한 노력과 노동은 48년 전부터 그랬다. 내가 증인이다.

수상자 공식 기자회견에서 타인의 고통을 영화에 어떻게 담을 수 있는가 하는 의문으로 본 영화 만들기가 출발했음을 그가 언급했다. 이 발언은 현실의 고통을 영화로 직접 재현하든, 다큐 형식의 영화 속 영화로 표현하든, 그가 영화 작가로서 생애에 걸쳐 천착해 온 주제가 타인의 고통에 대한 올곧은 정신임을 말해준 중요한 발언이다.

첫 영화 ‘초록물고기’가 변두리로 밀려난 개발지 원주민의 애환과 얼치기 인생들에게 비춘 따뜻한 시선이었다면, ‘박하사탕’은 5·18 민주화운동 과정의 속죄 의식, ‘오아시스’에 이르러서는 타인의 육체적인 고통, 가지지 못한 자에 대한 애린과 그 어루만짐으로 깊어진다. ‘밀양’은 그 속죄들의 가벼움을 날카롭게 경계하면서도 타인과 개인 간의 상처가 무심한 햇살 아래 재생되는 희망을 보여 주었고, ‘시’에 이르러 참된 속죄와 애도를 위해 자신을 제물로까지 던지는 경지로 진입한다. 그러다가 영화 ‘버닝’은 타인의 고통에 대한 모멸, 부의 계급적 대립을 통한 힘겨운 싸움이 제대로 수행되기 어려운, 같은 세대 내에서도 옳고 그름의 가치 전복을 보여 줌으로써 그의 영화 세계는 보다 강력해졌다. 올해 ‘가능한 사랑’에서는 그런 타자 고통을 직대면 방식의 재현이 아니라, 타인의 고통과 잠재된 욕망의 이해나 공존이 어디까지 서로 가능한지, 차원을 새롭게 구축한 뛰어난 영화로 보인다.

그가, 노쇠하여 치매 상태로 세상을 뜬 배우 윤정희의 장례를 위해 파리까지 갔던 행적은 뉴스로 그나마 보도되었지만, 많은 사람의 비난 속에 먼 타국 라트비아에서 코로나로 객사한, 2012년 영화 ‘피에타’로 베네치아 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김기덕 감독 유골을, 공항으로 마중 나가 저세상 길로 송별한 유일한 감독이 이창동임을 사람들은 거의 모를 것이다. 그만큼 그는 고통받은 타인에게 마지막 온기가 되어 고요히 지켜주곤 하는 특별한 인품의 사람이다. 물론 김 감독에게 상처를 입은 분들을 위한 지지와 애정 역시 분명했던 이창동 감독이다.

그렇다. 감독 이전에 이창동은 우리 곁에 아직 머물러 있는 큰 그릇의 어른이다. 나의 영화적 소망은 그의 다음 영화도 꼭 만나보는 일이다. 나만의 소망은 아니기에 너무 늦지 않았으면 좋겠다.

신종국 소설가 신종국 소설가

1987년 1월 부산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 35년간 교사, 장학사, 학교장, 부산학생예술문화회관장 역임. 소설집으로 〈마애암 골짜기〉, 〈말하는 여자〉, 〈잔류족 서식지대〉, 〈그 섬의 별들에게〉와 시나리오 ‘미친 사랑의 시간’, ‘뇌우만리’는 각각 다른 제명으로 영화화 됨. 여타 영화칼럼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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