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 | 2025-01-05 14:36:29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소설가’ ‘위대한 거장’으로 불리는 프란츠 카프카의 사후 100년을 맞아 부산 부산진구 KT&G 상상마당 부산 갤러리에선 특별한 전시가 열리고 있다. 거장의 이름을 그대로 옮겨 온 ‘프란츠 카프카’ 기획전. 이 전시의 가장 큰 특징은 단순히 카프카의 책이나 작품 세계를 조명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때 화가를 꿈꿀 정도로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던 카프카의 귀한 드로잉부터 그의 어록, 일기, 그가 좋아한 체코 프라하의 거리, 카프카 작업실까지 복원해 100여 년 전 카프카의 삶을 오롯이 부산 서면으로 불러왔다. KT&G 상상마당 부산 4층과 5층, 2개 층 전관을 5개의 방으로 나누어 관객은 자연스럽게 카프카의 인생을 경험하고 곳곳에 준비된 체험 코너를 통해 카프카와 대화하고 편지를 쓰는 기회도 있다.
한국 현대 미술 작가 3명이 카프카를 오마주하거나 재해석한 신작 작품들을 선보이는 방도 있고, 곳곳에 설치된 포토존은 MZ세대 관객들이 열광하는 인스타그램 셀카 장소로도 이미 소문이 났다. 무엇보다 이 전시가 매력적인 것은 카프카라는 작가를 몰라도 그의 작품을 단 한 번도 읽지 못한 이들도 그저 치열하게 삶을 살았던 한 인간의 고민을 공유하고 공감할 수 있다는 점이다. 두 명의 큐레이터를 비롯해 여러 스태프가 엄청나게 고생하며 준비한 이 전시가 무료라는 것도 반갑다.
5개의 방으로 구성된 카프카 전시는 방마다 관객을 놀라게 할 숨어있는 감동 요소들이 가득하다. 첫 번째 방은 전시 기획자인 KT&G 상상마당 부산 갤러리의 큐레이터들이 준비한 카프카의 인생 이야기이다. SNS와 유튜브에 자주 등장하는 ‘내가 바퀴벌레가 된다면’ 밈의 원작이 바로 프란츠 카프카라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그리고 그의 인생에서 의미 있는 순간과 카프카가 직접 했던 말, 병으로 짧은 생을 마감하는 순간과 이후 그의 가족들(유대인)이 나치 치하에서 안타깝게 사라진 이야기까지 담겨 있다. 연대기 순으로 나열된 인생 요약이 아니라 극적으로 재구성된 이야기로 인해 첫 번째 방부터 관객은 한참이나 서서 전시 벽을 보게 된다.
두 번째 방은 카프카가 직접 그린 드로잉 작품들로 꾸몄다. 카프카는 편지나 노트 여백에 그림을 자주 그렸다고 한다. 그의 친구 막스 브로트가 이 부분들을 오려내 카프카 컬렉션을 만들었고 이 컬렉션은 너무나 귀한 자료로 남아 있다. 이번 전시에선 70여 점의 크고 작은 드로잉을 직접 볼 수 있다.
세 번째 방의 이름은 ‘카프카에스크’이다. 이는 옥스퍼드 사전에 등재된 단어로 직역하면 ‘카프카적인’이라는 뜻의 형용사이다. 카프카 소설에 묘사된 것과 유사한 상황으로 암울하고 부조리하거나 불안하고 소외된 상황을 말하기도 한다. 국내 아티스트인 박소진, 노마, 버터컵 작가가 ‘카프카적’이라는 말을 토대로 작품을 완성했다. 힘든 시대 지독히 암울한 삶을 살았고, 낮에는 일을 하고 프라하의 밤길을 걸으며 글을 썼다는 카프카를 떠올리며 작가들은 카프카에게 전달하고 싶은 위로를 작품에 담아냈다.
네 번째 방은 카프카가 좋아했던 체코 프라하 밤거리로 꾸며져 있다. 눈이 가득한 바닥과 2개의 가로등, 프라하 야경은 카프카가 살았던 시대로, 장소로 관객을 순간 이동시킨다. 특히 주말에는 매일 오후 1~6시 정시마다 5분씩 눈 내리는 이벤트가 열려 인기가 많다. 눈 내리는 프라하의 밤거리를 지나면 다섯 번째 방인 카프카 작업실로 이어진다. 사진으로 남아있는 카프카의 작업실을 그대로 재연한 공간으로 카프카와 대화하기, 카프카 유명 문장 필사하기, 드로잉 체험 공간도 마련돼 있다. 관객들이 진지하게 쓴 작업물을 보는 것도 재미있다.
KT&G 상상마당 부산 갤러리 관계자는 “관람객들이 카프카의 철학과 삶, 상상력을 체험하며 자신만의 내면세계를 탐구할 수 있도록 기획했다”라고 소개했다. 이 전시는 12일까지 이어지며 갤러리 운영 시간은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