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 시네마운틴 로비. 부산국제연극제(BIPAF) 개막식이 열리는 하늘연극장 입장을 기다리던 관객들이 한 남자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콧수염과 턱수염을 기르고 머리카락을 뒤쪽으로 질끈 묶은 마른 체형의 남자는 2~3m 높이의 폴대 위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당신들은 이렇게 할 수 있어?”라고 묻는 듯 다소 거만한 표정이었지만 관객들은 되레 웃으며 박수를 보냈다. 처음엔 두세 개 연결한 폴대를 입으로 물고 균형을 잡는 등 서커스라고 하기에는 다소 싱거워 보이는 동작을 이어가던 그. 어느덧 구경꾼들의 목을 45도 이상 들어야 볼 수 있는 곳까지 올라가 탄성을 끌어냈다.
연극제 식전 공연으로 마련한 ‘폴로세움’을 선보인 주인공은 현대 서커스 공연가 서남재. 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했지만, 거리 공연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프랑스 스페인 등 유럽에서 유행하던 현대 서커스에 빠졌다. 전통적인 클래식 서커스가 묘기에 가까운 기예 위주의 쇼라면, 현대 서커스는 다양한 창작 오브제를 이용한 메시지 전달과 관객과의 소통에 큰 비중을 둔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고 한다.
사실 이날 서남재를 둘러싼 관객들의 고개를 치켜들게 만든 건 서남재 혼자가 아니었다. 그가 기둥을 오르내리며 ‘고공 쇼’를 하는 동안 바닥에서는 도우미 관객 네 명이 기둥에 연결된 쇠줄을 붙잡고 버티고 있었다. 서커스 도중 반강제로 나선 이들이지만, 4.5m 위에 올라선 공연자가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그의 날개가 되어 준 셈이다.
인간의 욕망은 높은 곳을 향한다지만, 발 디딜 곳이 좁은 상층부는 소수만 겨우 머무를 수 있는 게 현실이다. ‘폴로세움’은 그들의 아래에서 묵묵히 날개가 된 이들을 잊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었을까.